'타샤의 집' 타샤 튜더, 토바 마틴 지음 리처드 브라운 사진 / 공경희 옮김 / 윌북 펴냄
'탸샤 튜더 ' 다큐멘터리 / 마츠타니 미츠에 감독 / 타샤 튜더 출연
우연찮게 도서관 책꽂이에 꽂혀있는 '타샤의 집'에 눈길이 갔다. 아마도 롯데 뮤지엄에서 진행되고 있는 <스틸, 타샤 튜더 : 행복의 아이콘, 탸샤 튜더의 삶> 전시를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3월 15일까지 진행되는 전시는 보러 갈 수 없지만 '타샤의 집'을 읽고 그녀의 마지막 일 년을 다룬 다큐멘터리까지 봤으니 요 며칠은 타샤 튜더와 함께 보낸 기분이다.
1915년 보스턴에서 태어난 타샤는 화가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일찌감치 그림을 그렸다. 일명 양키라고 하는 뉴잉글랜드 명문가 자제였던 탸샤는 사교계에 꽃이 되길 바라는 어머니의 바람과 다르게 살림을 좋아하는 소녀였다. 23세에 결혼하며 첫 그림책을 출간한 타샤는 이후 네 아이들을 키우며 생활력 없는 남편까지 부양했다. 그림을 그리고 가축을 키우며 농사를 짓고 아이들을 보살폈다. 그렇게 살면서도 힘든 줄 모르고 언제나 즐겁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았다.
56세가 되던 해 타샤는 드디어 자신이 꿈에 그리던 버몬트주의 산골에 18세기 풍 농가를 짓고 생활하기 시작했다. 그 집은 아들 세스가 삼 년에 걸쳐 지었다. (어느 순간 남편의 이야기가 사라졌다. 찾아보니 버몬트로 가기 십 년 전에 이혼했다. 이후 아이들도 그녀의 성인 튜더로 바꿨다. ) 그녀는 아흔두 살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그 집에 살면서 부지런하고 살뜰하게 집과 정원을 꾸미고 그림을 그리며 살았다. 영화에서 아들이 다시 태어나면 어떤 삶을 살고 싶냐고 물으니 타샤는 이번 생에 더는 바랄 것이 없이 하고 싶은 걸 모두 하며 살았다고 했다.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타샤의 모습에서 생명의 기운이 조금씩 스러지고 있는 게 보였다. 그럼에도 타샤는 흐트러짐 없는 태도로 삶의 방식에 대해 또박또박 자신의 생각을 전한다.
책 속에 타샤는 영화의 타샤보다 조금 더 젊어 보였다. 그런데 책을 자세히 보니 1995년에 발행된 책이다. 그러니까 책 속에서도 이미 노인인 타샤 튜더는 일흔 살이다. 영화 속의 아흔한 살 타샤와는 이십 년의 시간 차가 있다. 그래서 책 속의 타샤는 손수 하는 일이 엄청나게 많다. 바구니를 만들고 아마로 실을 잣고 염색해서 리넨을 짜고 비누와 양초를 만든다. 염소젖을 짜서 버터와 치즈를 만들고 양털을 깎아 모직을 짜고 장작에 무쇠 난로를 올려 수프를 끓이고 애플 사이다를 만든다. 그런데 영화 속 타샤는 이제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정원에서 잡초 한두 포기 뽑는 것도 벅차 보인다. 그녀의 곁에는 아들 세스와 손자 부부가 시중을 들고 있었다. 이십 년의 세월을 건너뛴 타샤 튜더의 마른 얼굴에서 곧 닥쳐올 끝이 보인다.
삶을 마무리 지으며 타샤는 자신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았다고 행복하였노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원하는 삶을 살라고 말해준다. 어떤 작가는 자신의 삶과 작품을 분리해야 한다고 하는데 타샤 튜더는 자신이 만든 그림책 속의 삶과 실제 삶을 일치시켜 살았다. 아름다운 정원과 자신이 사랑하는 1830년대 풍의 세간들 인형과 소품들은 모두 그림책을 실사화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 어머니의 삶에 동의하지 못한 딸 에프네 튜더 홈즈는 어른이 되어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으려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환상 속에 산 어머니라고 타샤를 비난하고 연을 끊었다고 한다.
그림책 속의 삶을 사는 타샤 튜더를 보며 나는 계속 현실적인 생각만 했다. 친구네 집 텃밭에서 고구마 세 개 캐고 다음날 전정신경염이 재발해 대리기사 불러서 십만 원 들여 집에 온 나는 그녀의 어마어마한 노동량에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결국 혼자 할 수 없는 일들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고 그게 자식들 아닐까 하며 의구심 어린 눈길로 바라봤다. 또 그녀의 인기로 봤을 때 인세 수입이 많을 텐데 나중에 그게 문제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역시나 타샤의 사후 자식들이 소송 전을 벌였다는 글을 봤다. 타샤의 삶은 그림책 속 삽화처럼 예쁘지만 현실은 결코 그렇게 아름답기만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재주가 많고 부지런한 여인네가 자신이 가진 재능을 마음껏 발휘해 유명인이 되고 원하는 삶을 살았으며 그런 삶이 많은 이들에게 워너비가 된 이야기가 타샤 튜더의 스토리다. 타샤 튜더가 이 시대를 살았다면 인플루언서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누구의 삶도 옳고 그른 것은 없는 듯하다. 그냥 자기가 살고 싶은 대로 살면 그게 정답 아닐까. 타샤가 무병장수하며 살 수 있었던 것은 적절한 노동과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한때는 햇살 잘 드는 편백나무로 지은 작업실이 갖고 싶었다. 책상에서도 벽에서도 편백나무 향기가 나는 곳에서 글을 쓰고 싶었다. 요즘은 마음이 바뀌어 우리나라 방방곡곡 안 가본 곳에 가서 한 달 살기 하며 책도 읽고 글도 쓰는 삶을 살고 싶다. 한 달 사는 숙소에 형제자매나 친구들을 불러 대접하고 싶다. 바닷가 아름다운 집에서 문어를 넣은 뽈뽀 샐러드도 만들고 해물을 잔뜩 넣은 칼국수도 끓여 먹고 싶다. 그러려면 돈이 많아야 하는데 아, 갑자기 꿈을 이루려면 타샤처럼 돈을 잘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돈이 필요 없는 자급자족의 삶을 산 것 같지만 실제로 그녀의 삶은 대단히 돈이 많이 필요한 삶으로 보인다. (그녀의 아름다운 옛 물건 들은 비쌀 것이 틀림없으므로 ) 역시 나는 꽃이 가득한 정원을 보면서 구근 값을 생각하는 아주 세속적인 사람이다. 꿈을 꾸려면 먼저 뒷받침해 줄 돈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타샤는 평생 백여 권의 그림책을 그렸다. 열심히 돈을 번 사람이다.) 나란 사람 예쁜 것을 예쁘게만 보기는 어렵다. 예쁜 것은 비싸다.
직장생활에 치이는 중년의 남자들이 티브이 프로그램 자연인을 보며 야생의 생활을 꿈꾸는 것처럼 여자들은 타샤의 작약꽃 피는 정원과 리넨 속치마와 주름 잡힌 체크무늬 드레스와 벌겋게 타고 있는 장작 난로와 그 옆에 엎드린 강아지 코기를 꿈꾸기도 한다. 생각만 해도 눈빛이 몽롱해지는 것만 같은 풍경이다. 현실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와장창 깨지기 쉬운 꿈이지만 가상현실 속에서 구현한다면 나는 타샤의 집에서 양초를 만들고 물레를 돌려보고 싶다. 비현실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어가 보고 싶은 곳이 타샤의 집이다. 그토록 비현실적인 삶을 현실로 만들어 살아낸 타샤 튜더의 고집은 대단히 성공적이었으니 하고 싶은 일을 꾸준히 하는 것은 결국 옳은 일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