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딸, 딸의 엄마인 나

H마트에서 울다

by 은예진

미셸 자우너의 ‘H마트에서 울다’를 펼치며 나는 약간 오해를 하고 있었다. 백인과 결혼해 미국에서 살던 엄마의 죽음을 애도하는 딸의 이야기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딸의 입장에 감정 이입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치매를 앓기 시작한 엄마를 보면서 내가 아는 엄마를 반쯤은 잃었다는 생각에 슬퍼하던 나는 엄마를 잃은 딸의 입장이었던 거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나서 보니 나는 딸이 아니라 엄마의 처지에 있었다. 암에 걸려 죽어가는 미셸의 엄마는 겨우 쉰여섯이었고 미셸은 스물다섯이었다. 나는 쉰다섯이고 내 딸은 스물아홉이다.


자주 앓아눕고 하루에도 두세 군데 병원을 도는 날이 부지기수인 나는 종종 지금 죽어도 큰 미련이 없다고 말한다. 쉰다섯이라는 나이에 죽는 것이 호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요절도 아니니 늙어서 추한 꼴 보이지 않고 지금 죽으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하나뿐인 딸은 결혼해서 잘살고 있고 손이 많이 가는 남편은 좀 불편은 하겠지만 사실 부모님이나 자식보다 덜 슬퍼할 거라고 생각한다. 물리적인 타격은 남편이 제일 크게 받을 건데 심리적인 타격은 혈연관계인 부모나 자식보다 덜 할 거라고 여겨지는 게 맞는 건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 생각이 그렇다는 것을 보면 나는 그의 사랑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 것 같다.


잔병치레에 지친 요즘 참으려고 했음에도 죽고 싶다는 소리가 모공에서 새어 나왔다. 어차피 삶의 질은 바닥이고 이렇게 살 바에는 지금 죽는 게 깔끔하겠다 싶었다. 그렇다고 죽지도 못할 거면서 죽고 싶었다. 그건 어찌 보면 나 이렇게 힘들어요라고 투덜대는 어리광이었다. 진짜 죽음이 뭔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미셸 자우너는 엄마와 함께 즐기던 한국의 음식과 문화에 대해서 대단히 꼼꼼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 묘사는 죽어가는 엄마 모습을 그리는 데 있어서도 일관적이었다. 아파서 출근도 하지 못하는 상태에 침대에 등을 기대고 앉아 읽는 환자가 보기에는 다소 힘겨운 묘사였다. 그리고 죽고 싶다고 생각한 스스로에 대해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미셸의 엄마처럼 그렇게 죽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미셸이 엄마의 죽음을 겪는 과정의 슬픔을 내 딸에게 주고 싶지도 않았다.


딸의 삶에 끊임없이 개입하고 싶어 하던 미셸의 엄마와 다르게 나는 자유를 주는 것이 지나쳐 거의 방관하는 엄마였다. 어릴 때부터 엄마 말 잘 듣는 아이로 살지 말고 네가 올바른 선택을 하는 사람으로 자라는 게 나의 희망이라고 말하곤 했다. 나의 희망은 이루어졌지만, 그 이상을 넘어설 만큼 딸은 자기 주도로 살았고 내가 끼어들 틈을 주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고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나름의 사랑을 한다. 하지만 내 마음 한구석에는 내가 그 아이를 믿는다는 핑계로 너무 무심했다는 죄책감이 있다. 더군다나 경제적으로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무능한 부모였다. 해준 게 없으면 최소한 상처는 되지 말아야 할 노릇 아닌가. 그 순간 나의 어리광도 끝이 났다. 죽어가는 미셸 엄마의 고통이 너무 리얼하게 느껴져 내 몸이 더 아파 왔지만 나는 ‘H마트에서 울다’를 읽어야 할 시기에 읽은 것이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나는 H마트에만 가면 운다

‘H마트에서 울다’ 첫 문장을 보며 나는 올여름 내내 엄마 때문에 울고 다녔던 날들을 떠올렸다. 비교적 젊은 나이인 일흔여섯 살에 인지장애를 넘어서 치매로 진입한 엄마를 보면 자꾸만 눈물이 났다. 연세에 비해 건강했던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척추 골절과 장염, 길랑바레 증후군으로 입퇴원을 반복했고 그사이에 치매 걸린 엄마를 혼자 둘 수 없어 친정에 내려가 있었다. 아이처럼 순하게 눈만 끔벅이는 엄마 곁에서 평소 엄마가 즐겨 부르던 ‘어부의 노래’를 재생해 놓고 있으려니 참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내가 울자 엄마는 노래가 슬퍼서 우는 거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눈을 훔쳤다. 그 와중에도 엄마는 당신을 닮아 걸핏하면 병이 나는 내가 아픈 손가락이라고 걱정이었다. 미셸이 H마트에만 가면 울 듯이 아마 나는 푸른 물결 춤추고 갈매기 떼 넘나들던 곳 내 고향집 오막살이가 황혼빛에 물들어간다는 ‘어부의 노래’를 들으면 아니 생각만 하면 울음을 터트릴 것이다.


나는 그렇게 엄마의 딸로, 또 딸의 엄마로 만들어진 관계의 지지대에 몸을 기대고 이 고비를 넘긴다. 계속해서 통증을 호소하자 이차 병원에서 소견서를 써줘서 서울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방광 내시경까지 했지만 특별한 이상이 없다는 의사는 이유 없는 방광 통증에 우울증 약인 센시발정을 처방했다. 약사인 올케가 전부터 나처럼 만성 통증에 시달리는 사람은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가 효과를 볼 수 있다며 정신과 진료를 권하기도 했었다.

우울증 약의 부작용인 졸음과 나른함이 걱정스러웠다. 기존에 먹고 있던 전정신경염약에 신경안정제인 다이아제팜이 들어 있는데 우울증 약까지 먹으면 정말 정신 못 차리는 거 아닌가 싶었다. 다행히도 센시발정은 특별한 부작용 없이 적응했고 통증이 훨씬 줄어들었다. 그동안 엄청나게 먹어댄 항생제 때문에 염증이 가라앉은 건지 아니면 센시발정이 효과를 본 건인지 모르지만 어려운 시기를 무사히 넘겼다.

욕심을 내면 한도 끝도 없다. 좋아지면 좋아지는 대로 여행 다닐 만큼 회복하고 싶고 여행 다닐만하면 비행기도 탈만큼 좋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저 아침에 일어나 출근을 하고 퇴근 후 저녁 식사 준비를 할 수 있을 만큼만의 체력만 돼도 감사할 따름이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는 건 그만큼 좋아졌다는 것이다.

이전 07화어떻게든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