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중년 여성들이 주로 모이는 커뮤니티 사이트에 누군가 ‘님들은 몇 살까지 예뻤나요?’라는 질문을 올렸다. 지금도 예쁘다는 사람, 육십이지만 아직 남편이 예쁘다고 해준다는 사람 등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마흔다섯 살 전후를 꼽았다. 사십 대 중반까지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여성으로 대우해 주는 무언가가 있었는데 오십 대가 되자 그게 말끔하게 사라진 걸 나도 느끼던 참이었다. 나름 신경 써서 차려입으면 같은 여자들에게 예쁘다고 칭찬을 듣는데 그건 언제까지나 사회적 스킨십에 불과하다. 영장류가 서로의 몸을 훑으며 이를 잡아주는 것처럼 여성들은 상대방의 외모를 칭찬하며 적의가 없음을 드러낸다.
우리나라는 유독 심하게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외모 품평을 많이 하는 편이다. 덕분에 뷰티 산업이 발달하고 우리나라 여성들의 외모가 월등하다고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기는 한다. 하지만 더는 예쁘다는 소리를 듣기 어려운 나이로 접어들면서 소외감에 발버둥을 치게 된다. 거상을 하고 실리프팅을 하는가 하면 보톡스에 필러에 이름도 어려운 시술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렇게 돈을 써서 가꾸면 자연스럽게 노화 과정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며 비난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외모를 방치한다고 흉 잡힌다.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 그레이의 친구 헨리경은 다음과 같은 모습으로 젊은 그레이를 묘사한다.
-세심하게 굽어진 주홍빛 입술, 해맑은 파란 눈동자, 곱슬곱슬한 금발 머리카락의 그는 확실히 잘생긴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는 상대가 즉시 그를 신뢰하게 할 만한 뭔가가 있었다. 젊음의 모든 정열적인 청순함뿐만 아니라 청춘의 모든 순결함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가 세상에 물들지 않게 자신을 지켜왔음을 누구라도 느낄법했다.-
헨리경은 그레이에게 ‘당신에게는 가장 멋진 젊음이 있으니까. 젊음이란 간직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것 중 하나라오.’라고 말하며 젊음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찬미한다. 이렇게 젊음에 대한 찬미에 그치지 않고 늙음의 추함에 대해 강조하는데 ‘장차 나이가 더 들어 주름이 지고 추해지면 당신의 생각이 이마에 선을 그어놓고 당신의 열정이 추악한 불길로 입술에 낙인을 찍어 놓으면 느끼게 될 거요. 끔찍하게 절감하게 될 테지. 젊음을 읽어버리면 당신은 더는 미소를 짓지 않을 테지’
이러한 헨리경에게 영향받은 그레이는 늙는다는 것에 대한 공포를 느끼게 된다.
-언젠가는 그의 얼굴이 주름이 져서 쭈글쭈글해지고, 눈이 침침해지며 색을 잃고, 우아한 모습도 허물어지고 일그러질 날이 올 것이다. 입술의 진홍빛이 사라지고 머리카락의 황금빛도 지워질 것이다. 그의 영혼을 형성한 인생이라는 것이 그의 육체를 망쳐놓는 날이 올 것이다. 얼마나 슬픈 일인가! 난 늙고 끔찍하고 흉해지겠지.-
늙는다는 것에 대한 공포로 가득 찬 그레이는 결국 자신은 젊음을 간직하고 바질 홀워드가 그린 그의 초상화가 대신 늙었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빈다. 어찌 된 일인지 그 터무니없어 보이는 소원이 이루어지고 그레이는 영혼마저 초상화에게 빼앗긴 것처럼 영원히 아름답지만 사악한 인물이 되어간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는 정말이지 가차 없이 젊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리고 늙음이 얼마나 추한지 적나라하게 이야기한다. 오스카 와일드는 육십이 넘도록 아직 남편에게 예쁘다는 소리를 듣는다며 자랑하던 누군가를 비웃듯 늙는 것은 끔찍하고 흉한 일이라고 말한다.
정말 오스카 와일드 말대로 젊음은 찬란하게 아름답고 그 빛이 스러진 늙음은 추하기만 한 걸까? 한때 유행하던 우스갯소리에서 오십 대는 배운 년이나 못 배운 년이나 똑같고 육십 대는 예쁜 년이나 못생긴 년이나 똑같으며 칠십 대는 남편 있는 년이나 없는 년이나, 팔십 대는 자식 있는 년이나 없는 년이나 구십 대는 산에 있는 년이나 안방에 있는 년이나 똑같다는 말이 있었다. 결국, 육십 대면 미모도 다 스러진다는 말이다.
그런데 정말 도리어 그레이의 걱정만큼 나이 드는 것이 추하기만 한 것일까? 여성으로 어필할 수 없다면 그게 추한 것일까? 어쩌면 그에 대한 답은 각자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노년의 얼굴은 그동안 살아온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에 감추기가 쉽지 않다. 도리언 그레이가 악인이 되어갈수록 그의 초상화가 일그러진 것처럼 나이 든 이의 얼굴은 어지간해서 내면을 감추기 쉽지 않다.
비록 젊음의 예쁨은 잃어버렸지만 노년의 추함은 피하고 싶은 마음에 오늘도 입 밖으로 내놓을 말을 고르고 고른다. 입꼬리를 올리며 조금이라도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다 보면 혹시 고운 할머니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