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두 오라버니

타향보다 낯선 고향의 이방인

by 은예진

“그럼 수호 오라버니는 어떻게 살아요?”


본이가 둘째 오라비인 수호에 관해서 묻자마자 큰오라버니 수일이는 주먹을 불끈 쥐고 방바닥을 내리쳤다.


“그 자식은 이제 우리 식구 아니다. 그 자식 이야기는 내 앞에서 꺼내지도 마라.”


무슨 소리인지 영문을 모르는 본이가 올케를 쳐다보았다. 분노를 터트리는 오라버니를 곁눈질로 바라보는 올케의 얼굴에는 몹시 답답하고 한심하다는 표정이 어렸다.


“수호 서방님은 기차역 근처에서 왜인들을 상대로 장사하세요. 서방님이 장사 수완이 그리 좋으신 줄 몰랐어요. 서방님이 조치원 부근에서 조선 사람으로는 제일 큰 부자가 되었다는 소문이 파다해요. 그 때문에 이양반이 수호 서방님을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이곳에는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하셨어요. 수호 서방님은 어떻게든 우리를 도와주고 싶어 하는데 이양반은 절대 용납하지 않으세요.”


올케언니는 그 말을 다 끝내지도 않은 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라버니의 오기 때문에 우리 식구는 결국 다 굶어 죽고 말 거예요.”


“시끄러워! 어디서 아녀자가 함부로 지껄이는 거야. 그럼 내가 수호처럼 왜놈들의 똥구멍을 핥으며 살아야 한다는 거야? 그렇게 하고 돌아가신 할아버님, 아버님을 무슨 낯으로 뵙고 자식들 앞에서 떳떳한 애비 노릇을 할 수 있겠어?”


“자식들을 굶겨 죽이면서까지 떳떳한 아비 노릇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은 당신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입니다.”

“아니, 정말 이 여자가!”


오라버니가 벌떡 일어나 방을 나섰다. 문을 열던 오라버니가 갑자기 뒤돌아보더니 내뱉듯이 보리쌀 한 자루 가져왔으니 본이에게 밥을 해먹이라고 말했다.


본이는 눈앞이 흐려지는 것을 언니 앞에서 티 내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눈을 깜빡였다. 누구보다 사이가 좋던 오라버니 부부였지만 굶주림 앞에서 부부간의 정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를 보여준다.


“아이들은 어디 갔어요?”


오라버니가 나가자 풀 곳 없는 설움을 털어놓으며 눈물짓는 올케언니에게 물었다. 언니는 입술을 꽉 깨물더니 오라버니가 나간 문 쪽을 다시 한 번 노려보았다.


“여기서 데리고 있다가는 모두 굶겨 죽일 것만 같아서 친정에 보내 놓았어요. 그곳에서 농사일을 도우며 살길을 찾기 바라고 있어요. 서방님은 반대했지만 제가 듣지 않고 보냈어요. 이제 마지막으로 이 집이라도 팔아 보려고 하지만 살 사람이 없네요. 모두 먹고살 궁리를 하려고 역이 있는 조치원으로 나가는 바람에 빈집이 많아서 집도 팔리지 않아요.”


본이는 그제야 동네가 썰렁했던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동네는 그저 썰렁하기만 했지만 사람인 올케의 모습은 황폐해져 있었다. 양 볼은 움푹 들어가고 눈 밑에는 자글자글한 주름이 겹겹이 새겨져 있었으며 눈빛은 누구에게 향한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적의로 탁하게 흐려져 있었다.


올케보다 더 망가진 것은 집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무너진 담벼락도 다정하게 보였으나 실상 안에 들어와 보니 을씨년스럽게 변한 집의 모습에 기가 막혔다. 구멍이 뚫려 발이 빠질 것만 같은 마루에서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누군가 비명을 지르는 것만 같은 소리가 났다.


마당에는 잡풀이 우거지고 예전에 어머니가 애지중지하던 장독은 뚜껑이 깨진 채로 나동그라져 있었다. 가까이 가면 구렁이가 발목을 휘감을 것만 같아 등골이 오싹한 풍경이었다. 부엌엘 들어가 본 시월이가 허물어져 가는 집이 내려앉도록 큰 한숨을 쉬었다.


“아씨, 솥에 먼지가 소복해요. 밥을 언제 지어봤는지 알 수가 없는 형편이에요. 온기라고는 없는 부엌을 보니 도대체 아씨와 서방님이 굶어 죽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 계신 것이 용해요.”


본이는 거미줄이 사방을 뒤덮은 부엌의 천정을 올려다보면서 어쩌면 자신이 이곳에 온 것은 오라버니 내외를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돌아가신 부모님께서 장손이 굶어 죽는 것을 볼 수 없어서 본이가 그들을 살리게 하려고 보낸 것만 같았다.





형형색색 아름다운 비단들이 가득한 포목점 안에서 수호는 연신 이랏샤이마세, 곤니찌와,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를 외쳐대며 두 손바닥을 싹싹 비벼대고 있다. 벽에는 커다란 꽃무늬가 화려한 기모노와 유카타가 걸려 있고 게다를 신을 수 있는 버선 타비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수호는 포마드를 발라서 넘긴 머리와 줄무늬 와이셔츠에 조끼를 갖추어 입고 손님들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다. 손님은 대부분 일본인이다. 가게에서는 비단만 파는 것이 아니라 기모노와 유카타를 제작하기도 하는데 솜씨 좋은 장인들을 데리고 있어서 인기가 좋았다.


일본에서도 아무나 만들지 못한다는 기모노를 만드느라 바느질 솜씨가 빼어난 여자들을 수소문해서 가르쳤다. 섬세한 깨끼적삼 바느질을 하던 솜씨 좋은 여자들이 비싼 기모노를 여러 벌 뜯어가며 익힌 덕분에 본토의 명품 기모노보다도 선이 맵시 있게 나왔다.


조치원역에 형성된 왜인촌이 번성할수록 이수호의 포목점은 규모가 커졌고 이제는 한강 이남에서 가장 질 좋은 기모노와 유카타를 맞출 수 있는 가게로 소문이 났다.


수호는 일본인을 상대로 장사하는 일이 왜 그렇게 비난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라를 팔아먹은 놈들도 떳떳한 이 마당에 먹고 살기 위해 장사를 하는 것은 죄책감을 느낄만한 일이 아니었다.


수호는 형이 자신을 매국노 이완용보다도 못한 놈 취급하며 도움마저 거절하는 것에 대해 야속하기만 하다. 나라를 빼앗고 황후를 시해한 놈들은 죽일 놈들이지만 자신이 상대하는 일본인들은 신용이 철저하며 손님이라고 무례하게 굴지 않는 소박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굳이 미워하며 굶어 죽을 지경까지 고집을 부리는 형은 바뀐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낙오자 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전 01화1. 친정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