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기모노를 입은 아이

타향보다 낯선 고향의 이방인

by 은예진

손님을 상대하느라 점심도 먹지 못하고 동분서주하던 수호는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시집간 여동생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시집가서 사 년 동안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갑작스럽게 눈앞에 나타나자 좋은 일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쳐갔다.


“어이쿠, 이게 누구야? 본이 아니냐? 어서 오너라. 그동안 시집살이에 고생 많았지. 어서 들어와라.”


수호는 여동생을 붙들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손님이 계속 몰려들어 정신이 없었다. 우선은 가게 안쪽에 있는 아내를 불렀다. 아내가 나오는 것을 본 수호가 본이를 가게 안쪽으로 떠밀었다.


본이는 떠밀려 들어가면서 눈에 보이는 현란한 풍경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올케의 차림새였다. 커다란 목단 꽃무늬가 새겨진 기모노에 장연수가 데려왔던 여자처럼 머리를 둥그렇게 말아 올리고 꽃을 꽂았다. 누가 봐도 조선 여자라고 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너무 말라서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던 큰 올케도 놀라웠지만 일본 여자처럼 꾸민 둘째 올케는 더욱 큰 충격을 주었다.


“어, 언니…….”


본이가 말을 잇지 못한다. 그러자 올케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호호거리고 웃는다. 웃는 모습마저 낯설다.


“아가씨, 뭘 그렇게 놀라세요. 이 장사를 하려면 이렇게 하지 않고는 할 수가 없어요. 지금 한창 바쁜 시간이니까 여기 앉아서 구경하세요.”


본이 뒤에 바짝 붙어서 두리번거리던 시월이가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손으로 안쪽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나이가 마흔은 되었을 법한 중년 남자가 흰색 속치마를 걸친 계집아이 앞에서 팔짱을 끼고 있었다.


여자는 시월이 보다도 훨씬 어려 보인다.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고 손으로 앞가슴을 가린 채 어깨를 옹송그리고 있는 것이 어쩐지 겁먹어 떨고 있는 아기 고양이처럼 보였다.


올케는 고개를 연신 숙여가며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한다. 올케는 계집아이에게 옷을 입히던 중이었나 보다.


“먼저 나가쥬반을 입히겠습니다. 나가쥬반도 주문하신 대로 최고급 비단을 사용했습니다. 에리를 가운데서 겹치고 다떼지메를 이렇게 겹쳐서 묶고 주름을 펴주면 되지요.”


올케는 누구에게 하는 이야기일까. 남자일까 아니면 계집아이일까. 계속해서 떠들지만 누구도 올케의 말을 귀담아듣는 것 같지는 않다. 올케가 들어 올린 기모노는 반짝거리는 작은 꽃이 수놓아진 분홍색이다. 계집아이에게 분홍색 기모노를 걸쳐주자 얼굴이 잘 익은 복숭아처럼 발그스름해 보인다.


올케가 코시히모를 이렇게 돌려 감으면 완성된다고 말하는 사이 남자가 침을 삼키는 것이 보인다. 번질거리는 남자의 눈을 본 사람은 누구나 그 계집아이가 어떤 처지에 있는 것인지 눈치챌 것이다.


“아주머니, 저 이거 안 입으면 안 되나요. 저 그냥 집에 가게 해주세요.”


계집아이가 올케의 기모노 소맷자락을 부여잡고 사정한다. 순간 올케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진다.


“닥쳐라. 네가 저 사람한테 가는 조건으로 너희 가족이 받은 것이 얼마나 되는 줄 아니. 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 네 가족은 다 굶어 죽고 말 거다.”


올케가 기모노를 모두 입은 계집아이에게 타비를 신기려 하자 갑자기 남자가 무어라 이야기를 하며 나선다. 아마도 계집아이에게 타비를 직접 신기려고 하는 모양이다. 남자가 무릎을 꿇고 아이의 발을 들어 올린다. 조그맣고 흰 발이 기모노 밖으로 나오자 남자의 입에서 신음 같은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건 말건 그는 아이의 발등을 쓰다듬더니 천천히 종아리까지 쓸어 올린다. 그 손이 종아리의 동그란 근육 부분을 꽉 움켜쥐자 아이가 울상을 지으며 어쩔 줄 몰라 한다.


남자는 뭐가 재미있는지 킬킬거리며 웃는다. 올케가 눈을 부릅뜨고 아이를 노려본다. 올케는 작은 목소리로 여기서 판을 깨면 너는 이곳을 걸어서 나갈 수 없을 줄 알라며 윽박지른다.


남자는 아이의 가느다란 발목을 쥐고 자기 무릎 위에 발을 올려놓은 채 타비를 신긴다. 그가 버선의 엄지발가락과 검지 발가락 사이 갈라진 부분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눌러주자 타비가 제자리를 잡았다. 올케가 옆에서 어머 타비를 정말 잘 신기시네요! 하고 외치며 호들갑을 떤다. 본이는 남자의 손이 마치 자신의 다리를 훑어 내린 것만 같은 느낌에 진저리를 쳤다.


분홍색 기모노를 다 차려입고 게다까지 신은 아이는 고개를 약간 숙인 채 인형처럼 서 있었다. 남자 입에서 ‘기레이다나’라는 말이 연속해서 나온다. 시월이가 본이의 옆구리를 치며 무슨 소리냐고 묻는다. 본이는 그 말이 예쁘다는 소리라는 것을 차마 알려주지 못하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남자의 만족한 웃음을 본 올케가 주판을 들고 계산을 시작한다. 속치마며 나가쥬반과 기모노를 중얼거리며 계속해서 주판알이 올라간다. 오십육 원 나왔지만 오십오 원만 달라는 올케의 목소리가 아이들이 차고 노는 돼지 염통처럼 통통 튄다.


남자는 만족한 웃음을 띠고 지갑을 꺼내 돈을 낸다. 시월이는 기모노 가격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한다. 남자 손에 이끌려 나가는 아이의 손등에 굵은 빗방울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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