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두려움의 근원

검은 나비

by 은예진

대정 권번 기생들을 통해 행수가 검은 나비에게 시험을 낸 것을 아는 지배인과 보이들은 싱글거리고 웃으며 걱정하지 말라는 말로 이종구를 달랬다.


손님들도 술을 마실 생각을 하지 않고, 보이들도 술을 나를 생각하지 않았으며, 기생들조차 가무로 흥을 돋을 생각을 하지 않으며 기다렸다. 명월관 개장 이래로 이토록 조용한 날이 또 있었을까 싶은 시간이 계속되었다.


얼마나 되었을까 선생과 본이가 들어간 방에서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건 선생이 아주 유쾌한 일이 있을 때만 웃는 웃음이요, 좀처럼 들을 수 없던 웃음이었다. 다들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고 선생이 나왔다.


문 앞에 몰려있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한꺼번에 몰려나가고 그들을 본 선생이 흠칫 놀랐다. 본이는 그러한 선생의 뒷모습에다 대고 진심으로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절을 올렸다.


“어찌 되었소?”


지배인이 본이를 향해 큰 소리로 물었다.


“궁금하시면 다음에 선생이 명월관에 나오시거든 그때 보시구려.”

“이거 너무한 거 아니오. 궁금해 죽겠는데.”


“그게 지금 내가 선생님이 기생을 부를 것이라 해도, 부르지 않을 것이라 해도 그때 되면 또 마음이 바뀌실 수 있으니 장담할 수 없는 일 아닙니까.”


“그렇더라도 지금 당장 선생님 마음은 또 중요한 것 아니오?”


궁금증을 참을 수 없던 명월관 사장이 끼어들었다. 그러자 본이는 두 손을 앞에 모으고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은 을사오적의 우두머리 이지용이 첩으로 삼으려 하자 역적의 첩이 될 수 없다 하여 거절한 진주 기생 산홍의 이야기를 하시며 이러한 기생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술자리에서는 가무보다는 기생들이 보는 민중들의 삶에 대해 듣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기생이었는지 아니면 손님이었는지 그도 아니면 보이였는지 모를 누군가 손뼉을 쳤다. 그러자 명월관 전체에 박수가 가득 찼다. 본이는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에 어리둥절했다.


선생과 방에 들어간 본이는 자신이 이천의 만석꾼 시댁에서 쫓겨난 이야기부터 조치원에서 겪은 이야기 그리고 경성에서의 일들을 이야기했다.


검은 나비가 될 수밖에 없었던 사연과 조원구를 돌려보낸 이야기, 소향을 일으켜 세운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마지막 시험이 선생이 기생을 부를 수 있게 하는 것이라는 말까지 모두 했다.


선생은 자신을 상대로 기생들이 내기와 같은 일을 벌인 것에 대해 당혹스러워했다. 하지만 이러한 일이 생기도록 한 것은 결국 자신의 지나친 금기 때문이라며 반성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부터 죽이고 시작하라는 말이 있는데 자신이 기생에 대해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자네의 말마따나 기생이 두려운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선생은 서화담이 되고자 하나 지족선사가 될까 봐 두려워 기생을 멀리하는 그 마음 한구석에는 오히려 기생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선생의 솔직한 태도를 보면서 본이는 선생이 왜 그렇게 많은 존경을 받는지 알 수 있었다.


선생은 연암이 북경에서 깨진 기와 조각과 똥거름에서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비천하다고 여겼던 기생과의 대화를 통해서도 자기 생각을 고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김석중 선생이 술자리에 기생을 들였다는 소식이 명월관을 통해서 나온 날 이미 검은 나비를 요릿집으로 부르고자 하는 예약이 석 달 치가 가득 찼다. 행수 기생과 홍란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마주 보았다. 홍란이는 이로써 대정 권번 다음 행수 자리는 자신의 것이 되었다는 확신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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