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나비
권번에서 연락이 왔다. 명월관에서 선생이 모임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본이는 조치원에서 처음 입고 온 물들이지 않은 치마저고리를 입고 머리를 단정하게 올렸다. 그런 차림에 검은 나비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은 알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명월관은 태화관보다 훨씬 화려하고 소란스러운 분위기였다. 조명은 현란했고 쇼를 위해 다니는 기생들의 옷차림은 치마저고리가 아니라 서양식 옷차림이었다. 본이가 들어서자 사람들이 검은 나비라며 수군거렸다.
지배인이 재빨리 달려와 혹시 태화관 조원구 나리를 평양으로 돌려보낸 검은 나비가 아니냐고 묻는다. 기껏 기명을 소설이라 지었지만 그건 별 소용없었다.
조원구의 이야기에 소향 이야기까지 덧붙여져 경성 바닥에 소문이 파다하게 났다. 그들은 본이의 기명은 알지도 못할뿐더러 검은 나비 가면 이야기만 들었기에 다들 검은 나비라고 불렀다.
기생은 어떤 방식으로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궁금증을 불러일으킬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일부 기생은 양산에 자신의 이름을 붙여서 다니기도 한다.
행수의 예상대로 본이는 감추는 것으로 도리어 더 드러내는 효과를 얻게 되었다. 행수는 본이가 시험을 통과하건 하지 못하건 관심이 없었다. 그 시험을 소문내고 이야깃거리로 만들어 대정 권번 검은 나비를 사람들이 궁금하게 하도록 만들 생각이었다.
궁금하면 불러야 할 테니까 말이다. 이미 검은 나비를 보내달라는 술꾼들이 제법 있었지만 행수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최대치까지 올리기 위해 시간을 끌고 있다. 본이가 훗날 이본느가 되어서 남자들을 쥐락펴락할 수 있게 된 것은 이러한 행수 기생의 기교를 빨리 배웠기 때문이다.
“행수 기생의 연락받았습니다. 김석중 선생님은 지금 동백실에 계십니다. 다른 손님들과 함께 계시는데 들어가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잠시 기다릴 테니 나오실 때쯤 저를 불러주시면 안 될까요?”
지배인은 알겠다며 기대에 찬 얼굴로 사라졌다. 여기저기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검은 나비를 향해 다가서는 것을 보이가 막아섰다.
“대정 권번의 특별한 부탁이 있었습니다. 누구도 검은 나비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죄송합니다. 비켜주세요.”
“얼마면 되기에 이렇게 비싸게 굴어? 검은 나비하고 술 한 번 마시려면 십 원은 줘야 하는 건가?”
소란스러운 탓이었을까 동백실 문이 열리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왔다. 제일 앞에 김석중 선생이 있었다. 선생을 보더니 검은 나비에게 시비를 걸던 자가 꼬리를 내리고 재빨리 사람들 틈으로 사라졌다. 본이는 선생이 명월관 밖으로 나가기 전에 따라잡기 위해 급하게 일어섰다.
“무슨 일이시오?”
본이가 그의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자 당황한 김석중 선생이 발을 멈추었다.
“선생님께 꼭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선생을 따라 나오던 사람들은 검은 나비를 보더니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자기들끼리 검은 나비라며 소곤거렸다. 하지만 검은 나비가 누구인지 알 턱없는 선생은 괴상한 가면을 쓴 여자가 자기 앞에 무릎을 꿇은 것에 그저 놀랄 뿐이다.
“무슨 일인 줄은 모르나 나는 요릿집에서 여성과 이야기할 일이 없습니다.”
남들 입에 오르내리고 싶지 않은 선생이 본이를 외면하고 걸음을 서두르자 본이자 외쳤다.
“선생님, 지족선사가 될까 봐 두려우십니까?”
본이 앞을 가로질러 지나가던 김석중 선생이 발길을 멈추었다. 그가 돌아서서 본이를 바라보자 본이는 일어서서 고개를 다시 한번 숙였다.
“뭐라고 하셨소?”
“지족선사처럼 될까 봐 두려우시냐고 물었습니다.”
“허허, 이 처자가 보통 맹랑한 사람이 아니네? 기생인가?”
“그렇습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싫어하시는 기생입니다. 감히 기생 주제에 선생님을 뵙고 싶어 이렇게 기다렸습니다.”
김석중 선생은 잠시 고민하는 듯 명월관 천장을 한 번 올려다보더니 지배인을 향해 물었다.
“이보게 여기 좀 조용한 방으로 남아 있는 것이 있나?”
“네, 선생님이 쓰신다면 당연히 없는 방도 만들 수 있습니다. 방 준비시킬까요?”
“그래 주면 고맙겠네.”
김석중 선생과 동행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눈이 죄다 휘둥그레졌다. 선생이 기생과 독대를 한다는 것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며 민족지도자인 그에게 위험천만한 소문이 날 수 있는 일이다. 더군다나 어용신문들은 걸핏하면 김석중 선생의 흠을 잡고 싶어 안달인 상황이었다.
선생이 기생과 한방에 있었다는 것이 알려지면 그가 평소에 하는 말과 행동이 다르다며 벌떼처럼 달려들어 공격하려 들 것이 틀림없다.
“선생님, 지금 보는 눈이 이렇게 많은데 기생과 단둘이 방에 드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습니다.”
선생의 뒤에 서 있던 사람이 선생을 만류했다. 그러자 김석중 선생은 미소를 지었다.
“이보게 보는 눈이 많으니 내가 들어가는 것이지 보는 눈이 없으면 내가 저렇게 당돌한 처자가 무서워서 어디 들어가겠나? 걱정하지 마시게. 내 신경 쓰지 말고 볼일들 보러 돌아가시게.”
본이와 같이 방에 들어간 김석중 선생은 그 방에서 세 시간 이상을 머물렀다. 처음에 술과 간단한 요리가 들어간 이후로는 더 시키는 것도 없이 오랜 시간을 머무르자 밖에서는 명월관 장사가 중단될 정도로 관심이 쏠려있었다.
명월관 사장인 이종구가 선생이 검은 나비와 방에 들어갔다는 말에 눈에 불을 켜고 달려왔다. 평소 선생을 존경하던 이종구는 혹시 대정 권번에서 선생을 상대로 장난질하는 것은 아닐까 싶어 행수를 부르라고 야단을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