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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예진 Mar 11. 2024

염소



2027년부터 개 식용을 위한 사육, 도살, 유통, 판매등이 법으로 금지된다. 이제 보기 어려워졌지만 그래도 가끔씩 눈에 띄는 보신탕, 영양탕집이 2027년이면 사라진다는 것이다. 


육견 사육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은 업자들도 알고 있어서 조금씩 줄어들었고 최근에는 거의 사라져서 종합백신 수요가 확실하게 감소했다. 내가 이십여 년 전 동물병원에 근무하기 시작했을 때는 한 달에 못팔아도 오백 개가 넘게 팔리던 종합백신이 지금은 일 년에도 오백 개를 팔 수 없다. 물론 종합백신이 처방약이 된 영향도 무시하지 못하지만 그만큼 다량으로 백신을 하는 집단 사육이 사라진 것만은 틀림없다. 먹기 위해 개를 키우는 시대는 끝났다.


영양이 넘쳐나는 이 시대 굳이 보신을 해야 여름을 날 수 있을 것 같지 않지만 사람들은 삼복더위에 탕으로 이열치열을 하지 않으면 섭섭한 모양이다. 그런데 삼계탕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보신탕 대신 눈을 돌린 것이 염소탕이다. 


보신탕, 영양탕 간판을 달고 있던 식당들이 슬그머니 흑염소탕집으로 바뀌는 것뿐만 아니라 새롭게 염소탕집이 생긴 곳도 꽤나 눈에 뜨인다. 그러면서 염소를 사육하는 농가들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보어 염소는 흑염소에 비해 1.5배 정도 성장이 빠르고 성체 수컷은 150kg에 이른다. 처음에는 흑염소를 키우던 농가들도 보어 염소나 보어 염소 교배종을 키우고 있다.  


소를 키우다 그만둔 농장에서 빈 축사가 보기 싫어 보어 염소를 키우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보어 염소는 강아지처럼 귀엽다는 말을 듣고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다. 


처음에 염소 치료 문의가 들어왔을 때 나는 "그냥 잡아 드세요."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아마 말은 하지 않았어도 표정에 드러났을 것이다. 염소가(마당에 한 두마리 키우는 염소) 소처럼 경제 동물도 아니고 개처럼 반려동물도 아니니 애매한 구석이 있었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염미정이 구 씨에게 염소 잡아먹은 이야기를 할 때 구 씨  표정이 뭐 저런 여자가 다 있나 싶었다. 염미정은 잡아먹을 것에는 이름을 붙여주지 않는다고 했는데 구 씨는 염소를 잡아먹을 것으로 보지 않았다.


염소 축주들도 애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정 치료를 하고 싶으시다면 수의사가 갈 수 있는데 송아지 진료비를 내셔야 합니다. 그래도 진료받으실 수 있으시겠어요? 하면 또 뒤로 물러선다. 치료비가 염소 새끼 값을 넘어 설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염소 새끼 값이 젖소 송아지 값을 훌쩍 뛰어넘는 시대가 되었다. 얼마 전 흑염소 새끼 두 마리를 80만 원에 샀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검색해 보니 85만 원 분양완료 글이 보였다. 나는 이제 염소 치료를 문의하는 분들에게 잡아먹으라는 말을 꺼낼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느낌이 온다. 이거 과열이다. 집에서 한두 마리씩 염소를 키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지고 있다. 지금 거세 숫염소 kg당 가격이 2만 1500원 수준이라고 하는데 더 이상 올라가면 오히려 소비가 위축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에 비해 새끼 염소 가격이 지나치게 올랐다.  염소 대량 사육이 쉽지 않다고 하지만 염소는 생후 오 개월이면 성숙하고 임신 기간이 오 개월이라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날 수 있다. 


동물병원에 염소 관련 문의를 해오는 손님들이 갑자기 늘어났고 어린 염소 가격은 너무 비싸졌으니 지금 염소 사육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대단히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주식이나 코인은 투자해도 관리비용이 들지 않지만(물론 신용을 쓰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말이다. ㅠㅠ) 염소는 계속 먹는다. 그것도 아주 열심히 먹는다. 그 비용을 추가로 들이고 공급 과잉을 맞이하게 되면 자칫 낭패를 보는 거 아닐까 걱정스럽다.   


염소 약을 사러 오는 분들에게 아무리봐도 올해 말쯤이면 공급과잉이 될 것 같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괜한 오지랍이다 싶어 입을 다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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