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를 나갔던 수의사가 씩씩거리면서 들어왔다.
'도대체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한 거야. 내가 그렇게 함부로 주사질 하지 말라고 했는데......'
수의사가 병원까지 와서 저 정도로 화를 낼 정도면 목장에서는 어지간히 짜증을 냈을 것이다. 우리 수의사가 열심히는 하는데 좀..... 짜증이 많은 편이다. 반려동물 수의사들의 친절함을 보고 배워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을 때가 가끔 있는데 이번에는 수의사의 짜증이 이해가 가는 상황이었다.
수소는 비육을 하기 위해 6개월령 전에 거세를 한다. 거세 비육우는 육질이 좋아 가장 등급을 잘 받는 편이다. 전에는 선택 사항이었지만 지금은 거세를 하지 않은 수소를 찾는 것이 더 어렵다. 거세를 해 놓으면 암소처럼 순해지고 발정이 오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데 단점이 있다. 바로 생식기가 발달을 하지 않은 탓에 자칫 요석증에 걸릴 수 있다.
요석증에 걸려 소변을 보지 못하는 소는 고통스러우니 당연히 사료를 먹지 못한다. 그런데 축주가 생각 없이 사료를 먹지 않으니 병이 난 모양이라고 항생제를 주사해 버린 것이다. 산업동물은 치료를 하는 것보다 도축을 하는 것이 더 경제적인 경우가 많다.
고칠 수는 있지만 고치는 비용이 너무 과다하면 손해를 보고서라도 도축을 해야 하는 것이 경제동물이다. 그런데 함부로 주사질을 해 놓았으니 그 소는 이제 도축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항생제는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페니실린 계통은 보통 90일 출하금지 품목이다.
축주는 한 달짜리도 아니고 90일짜리 항생제를 놓고 그래도 소가 사료를 먹지 않으니 수의사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수의사가 보기에 그 소는 치료를 하기에는 너무 늦을 정도로 요석이 심해서 당장 출하를 해야 하는데 항생제를 놓아 버렸으니 꼼짝없이 버리게 되었다며 화를 낸 것이다.
소 한 마리를 잃게 된 축주는 수의사가 그렇게 하지 말라는 짓을 한 탓에 혼이 나고 속상해서 담배만 피워 댔을 것이다. 주사질 한 번으로 몇백만 원의 손해를 봤으니 할 말이 없었다.
모든 동물용 항생제에는 도축 제한 일수가 있는데 보통 28일에서 90일이다. 그렇다 보니 성우에는 거의 항생제를 쓰지 않고 송아지가 설사를 하는 경우에만 항생제를 쓴다. 고기나 우유에서 성장 촉진제나 항생제를 걱정하는 경우가 있는데 실제로 현장에서는 항생제를 거의 쓰지 않는다.
우유의 경우에는 날마다 집유차에서 항생제 검사를 하고 성분이 검출되면 그 차에 들어 있는 우유를 모두 폐기처분한다. 그리고 항생제가 나온 목장을 조사해 삼일 간 집유를 하지 않는다. 그럼 폐기한 우유값과 납유 하지 못하는 우유 값을 계산하면 그 피해가 어마어마하다. 뿐만 아니라 항생제 우유를 납유 했다는 소문이 나면 목장 이미지에도 치명타를 입는다.
그러니 우유에서 항생제를 걱정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내가 이렇게 이미 우리나라 우유와 소고기는 무항생제라고 이야기하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럼 어째서 무항생제 인증 마크를 가진 소고기가 따로 있느냐고 말이다.
그건 '인증'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쉽다. 우리나라 우유나 소고기는 이미 무항생제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만 그걸 증명해서 홍보하는 것은 또 다른 것이다. 그러니까 정부에서 인증을 할 수 있는 기관에 외주를 주고 그 기관이 기준을 만드는 것이다.(그런데 그 기준은 이미 지켜지고 있는 기준이다. ) 그 기준에 맞는 서류 작업을 해서 인증을 받으면 무항생제 마크를 달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서류다.)
목장주들은 그래서 무항생제 인증에 대해 냉소적이다. 이미 다 하고 있는 것을 서류에 꿰어 맞추고 무항생제 마크를 다는 것이 얼마나 웃기는 일이냐고 말이다. 그럼에도 급식이나 공식적인 사용을 위해서는 인증을 받는 것이 유리하므로 HACCP, 무항생제, 행복농장 등의 명목으로 컨설팅을 받고 마크를 얻는다.
세상 어디나 그렇지만 결국 무항생제는 서류다.
몇 년 전부터 동물약품도 항생제나 호르몬제는 처방전을 발급받아야 한다. 축주들도 이제 함부로 항생제를 쓰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이렇게 난처한 일을 겪는 경우가 훨씬 줄어들었다. 우유의 경우에는 항생제뿐만 아니라 소염진통제 계열도 금지 품목으로 들어가기 시작해서 점점 축주들의 약품 사용 범위가 줄어들고 있다.
축주들은 그럼 아픈 소는 이제 그냥 치료하지 말고 죽여야 하느냐고 원성이 자자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조금 더 안전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부디 우유에 항생제 어쩌고 하는 말씀은 하지 마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