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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예진 Apr 15. 2024

벚꽃둥이를 기억하며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벚꽃 잎이 하늘거리며 허공을 휘돌고 그 사이 손톱처럼 작은 잎들이 뾰족하게 올라온 은행나무를 보고 있으려니 어린것들은 어째서 이렇게 하나같이 예쁠까 싶다. 


  예쁜 어린것들 중에서도 으뜸이라고 할 수 있는 어린것은 강아지다. 물론 사람 아기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지만 나는 개 이야기가 하고 싶으니 강아지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벚꽃이 피는 이맘때쯤이면 내가 이름 지어주었던 그 강아지들이 떠오른다. 


  병원이 지금 자리로 이사오기 전 화담숲 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제는 도로 공사 때문에 헐리고 없지만 그곳에서 십오 년 이상을 보냈으니 오래도 있었다. 같은 건물에 부동산과 국숫집 그리고 카센터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이웃집 카센터에는 풀어놓고 끼우는 개 한 마리가 있는데 어릴 적 철수와 영희가 등장하는 교과서에 나올법한 바둑이 만한 크기였다. 


  온몸이 까매서 깜순이, 작아서 미니라고 부르기도 하던 녀석은 카센터의 마스코트 노릇을 톡톡히 했다. 어쩌다 주차장에 쥐라도 나타나면 이 녀석이 흥분해서 뛰고 그럼 카센터에 모여있던  남자들은 더 흥분해서 깜순이를 응원했다. 액션이라면 사족을 쓰지 못하는 이 남자들은 개와 쥐의 쫓고 쫓기는 액션에도 미친 듯이 열광해서 보는 내가 혀를 차게 만들었다.


 그 깜순이가 2월 즈음 제 덩치의 서너 배는 됨직한 남자친구를 데리고 나타났다. 날씨가 아직 쌀쌀했지만 개가 춘정에 휩싸이기에는 모자라지 않았나 보다.     


 개를 풀어놓고 키워 본 분들의 말에 의하면 이럴 때 수캐는 암캐 집에 기거하며 암캐 주인에게도 무척 순종적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 수캐는 처갓집에서 미움을 받는지라 카센터 입구에서 기다리기만 했다. 그걸 보고 있으면 웃음이 터졌다. 


  어찌 저리도 하염없이 기다릴 수 있단 말인가. 저런 녀석도 시기가 지나면 암캐를 돌아보지 않는 것을 보면 연애할 때 열렬하던 남자가 결혼하고 나서 180도 변했다는 여자들의 하소연이 괜한 소리가 아닌 모양이다.     


 그렇게 깜순이는 남자친구를 옆에 거느린 채 꼬리를 한껏 치켜들고 오만한 자태로 봄을 맞이했다. 나는 손가락을 꼽아 보며 벚꽃이 필 때쯤이면 누렇고 까만 강아지를 볼 수 있겠거니 했다.     


 그해는 늦추위 때문에 모든 꽃이 일시에 폈다. 벚꽃이 피면서 개나리도 피고 목련도 폈으며 순식간에 진달래까지 폈다. 그러자 배를 땅에 끌고 다니던 깜순이도 몸을 풀었다. 다섯 마리 낳았단다. 카센터 사장님은 깜순이가 전에 낳은 새끼는 경찰서장에게 주었더니 지금 청와대에 가 있다고 은근히 자랑이다. 그 출세한 강아지는 청와대에서 무슨 업무를 보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날이 더워지자 젖먹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혼자 이름을 지어 보았다. 


  까만 녀석은 까만 벚꽃 열매 이름을 따서 버찌, 아빠 닮은 녀석은 그 색이 진하기가 진달래 같으니 달래, 노르스름한 녀석은 개나리의 나리, 희끄무레한 녀석은 목련의 연이, 나머지 녀석은 꽃 이름이 떨어졌으니 막 나오기 시작한 버들잎을 따서 버들. 그런데 작은 어미가 이 다섯 마리를 어찌 먹여 살릴까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깜순이가 탈이 났다.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지더니 사시나무 떨듯 떨어댔다. 놀란 카센터 사장님이 애견 동물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새끼를 먹이느라 온몸의 칼슘을 다 뽑아내 급성 칼슘 부족이란다. 아침에 보니까 영양주사를 16만 원어치나 맞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깜순이가 죽다 살아난 얼굴로 주차장을 가로지르고 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자식은 부모의 뼛골까지 뽑아 먹고 자라는 것이 맞는 모양이다.     


  그 후 버찌와 달래, 나리와 연이, 그리고 버들이까지 차례차례 새 주인을 맞아 떠나갔다. 이제 꼬물거리던 녀석들을 더 이상 볼 수 없고 홀로 남아 카센터 구석을 지키는 깜순이만 남았다. 그렇게 깜순이는 또 한 번의 가을을 맞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아이들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깜순이는 화담숲 방향을 따라 길을 나섰다. 떠난 아이들을 찾아 나선 걸까? 그도 아니면 무심한 수컷을 향해 나선 거였을까?  무슨 볼 일이 있기에 그렇게 나섰는지 모르지만 카센터 아저씨는 그런 깜순이의 뒤를 쫓으며 잔소리를 했다. 풀어놓은 개라 차를 피할 줄 아는 녀석이었다. 그냥 놔뒀으면 살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갑자기 길을 건너는 깜순이 앞으로 화물 트럭이 질주했다. 놀란 아저씨가 깜순이를 불렀고 녀석이 멈추고 말았다. 눈 깜짝할 사이 트럭이 녀석을 치고 달렸다. 그렇게 황망하게 떠나버렸다. 강아지들도 깜순이도 떠난 주차장에서 아저씨는 사고 소식을 전하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봄보다 더 봄 같던 강아지들도 까맣기가 몽골의 밤하늘 같던 깜순이도 없는 카센터 주차장이 유난히 넓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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