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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예진 Apr 01. 2024

너, 누구니?

PC에 카톡을 깔자 어느 순간부터 이 문자가 오기 시작했다. 별 관심은 없었지만 수의사가 어쩌다 나 없는 시간에 병원에 와서 PC를 켜면 내가 알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그런데 이건 뭐지? 밤 12시에 수의사가 왜 병원 PC를 켠 거지? 야간 난산이라도 있었나 생각하고 무심코 넘어갔다.


그리고 몇 주 후 다시 똑같은 시간에 카톡 알림음이 들어왔다. 이건 아무래도 이상해서 다음날 수의사에게 물어봤다. 그랬더니 수의사가 내가 그 밤중에 병원엘 뭐 하러 들리냐고 되묻는다. 나는 약간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뭐 오류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몇 차례 더 이 카톡을 받고 아무래도 찜찜해서 병원 컴퓨터를 설치해 준 사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혹시, 컴퓨터가 업데이트 때문에 저절로 켜지기도 하나요? 제가 밤 12시에 컴퓨터가 로그인 됐다는 카톡 메시지를 받아서요.'


'업데이트는 아니지만 그럴 수도 있기는 한데..... 혹시 아침에 출근했을 때 꺼져 있었나요?'

'네.'


'음...... 컴퓨터가 어떤 이유로 자동으로 켜질 수 있을지는 몰라도 꺼지지는 않습니다.'


'그럼 밤 12시에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와 컴퓨터를 켰다는 거네요?'

'그렇지요.'


와, 등골이 오싹했다. 우리 병원 물건은 소를 키우는 사람이 아니고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약이니 약을 훔쳐가서 써먹을 곳이 없다. 그렇지만 약만 있는 것이 아니고 현금도 조금 있다. 백 원, 오백 원, 천 원, 오천 원, 만원을 거스름돈 용으로 비치해두고 있다. 심지어 그 금전함은 비밀번호도 몰라 잠가두지도 않는다. 


예전에 옆 사무실에 도둑이 들었는데 컴퓨터를 훔쳐갔다고 했다. 누가 들어왔다는 건데 그렇다고 뭘 훔쳐 간 건 없으니 이게 뭔가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아파서 출근을 하지 못하게 됐다. 전부터 몇몇 단골손님들에게는 병원 비밀번호를 알려줬었는데 이번에는 더 많이 알려줄 수밖에 없었다.                


출근을 한 내가 비밀 번호를 바꾸려고 했더니 수의사가 그냥 놔두란다.               


"처형은 자주 아파서 출근 못 하는 날이 많은데 이걸 다시 일일이 알려주려면 그것도 골치 아파요."               


아마도 수의사도 설마 누가 정말 밤 12시에 동물병원에 들어와 컴퓨터를 켜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나도 누가 들어온다는 확신은 없었다. 없어지는 물건이 없으니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잊어버리고 컴퓨터를 끄지 않고 가는 날 혹시 이런 일이 생기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리고 며칠 전.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핸드드립을 위해 전기 드립포트를 꺼내 들었다. 생수통에서 물을 받으려다 안에 물이 보이기에 옆에 있는 화분에 물을 주는데 그 물에서 김이 올라왔다. 깜짝 놀란 내가 주전자를 만지자  열기가 식었지만 따끈했다.               


수의사는 병원에 드립포트 같은 게 있는 줄도 모른다. 그걸 쓸 인물이 아니다. 누군가 내가 출근하기 전에 그러니까 새벽녘에 우리 병원에 들어와 물을 끓인 것이다. 이제 정말 확실해졌다. 정말 내가 없는 사이에 병원을 들락거리는 쥐가 있는 것이다. (몇 년 전에 옆 사무실에서 함바집을 하다 철거하고 편의점이 들어왔는데 그 철거 시 우리 병원으로 팔뚝만 한 쥐가 열 마리쯤 들어와 진을 쳐서 내가 미칠뻔했다.  이번에는 좀 큰 쥐다.)               

확실해졌으니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실내용 감시 카메라를 샀다. 31,900원 밖에 안 하는 카메라의 성능은 상상 이상으로 좋았다. 외출 모드로 해 놓으면 사람이 들어왔을 때 카메라가 그 사람을 따라다니며 동영상을 SD카드에 저장한다. 이제 들어오면 정말 꼼짝 마라다. '나는 두 주먹 불끈 쥐고 쥐새끼 너 딱 걸렸어.'라고 중얼거렸다.                


그런데 수의사 사모님인 내 동생도, 남편도 범인을 보려고 하지 말란다. 험한 세상, 범인 얼굴 봐서 뭐 할 거냐고 그냥 경고문을 써 붙여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한다.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몇몇 손님들은 새벽 3시면 일어나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고 그들이 12시에 여기 와서 컴퓨터를 켤일이 없다.                


내 짐작으로는 같은 건물에 입주한 편의점에서(편의점은 밤 12시까지만 영업한다.) 죽돌이를 하는 레커차 기사들이 의심된다. 그들은 자동차 문도 딸 수 있는 사람 아닌가. 그런데 우리 병원 출입문과 문틀 사이에 틈이 넓어서 기구를 집어넣어 따기 쉬운 구조다.                


큰 쥐가 누구인지 알면 어떻게 할 것인가? 사실 손님이라면 그것도 조금 민망한 일이다. 없어진 물건은 없으니 누군가 들어와 놀다 가는 건데 쫓아내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CC카메라 설치했습니다. 야간에 무단 침입 시 경찰에 고발하겠습니다.라고 써붙이고 말았다. 아 그럼에도 궁금하다. 도대체 어떤 인간이 남의 사무실에 들어와 어슬렁 거리며 컴퓨터를 켜고 물을 끓였는지 말이다.  (요즘 PC에는 대부분 카톡이 깔려 있어 로그인 정보가 핸드폰에 들어오는 것을 알고 있는데 그걸 모르는 사람이라는 거지. ) 



귀엽게 생겼지만 제법 똘똘한 카메라 덕분에 수의사만 감시당하고 있다. 내가 없는 동안 수의사가 돌아다니는 걸 보다 뭔가 잔소리할 일이 생기면 내가 전화한다. 수의사 입장에서 별로 유쾌한 일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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