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소는 젖소나 한우나 할 것 없이 모두 인공수정을 하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가끔씩 집에 수소를 키우며 자연종부를 하는 목장이 있었으나 현재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자연종부를 하다 보면 근친 교배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어 개체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인공수정은 불가피하다.
특히 젖소의 경우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에서 유량 생산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정액을 고가에 수입해서 일찌감치 개량에 열을 올리는 목장들이 많았다. 홀스타인은 당연히 외국의 다양한 종모우를 선택할 수 있는 유전자 풀이 넓으니 어렵지 않게 개량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우 농가에서는 개량에 큰 관심이 없었다. 1980년대에는 성우가 최대 600킬로 정도 나오던 것이 최근 들어 1톤까지 나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암암리에 이건 한우가 홀스타인이나 기타 다른 외국 소와 교배가 되었다고 보고 있다.
전경환이 소를 수입해 농가에 분양했다가 소값 파동을 일으켰던 당시 한우는 그가 수입한 소와 교배와 이루어진 경우가 많았다. 덕분에 지금도 정액 증명서에는 한우의 특징이 아닌 경우가 나올 수 있지만 자신들이 책임지지 않는다고 표기되어 있다. 농가에서도 한우라고는 하지만 옛날의 한우와 지금 한우는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홀스타인과 한우를 교배하면 첫 배에는 까만 소가 나온다. 일명 먹통이라고 하는데 그 먹통에 또 한우 정액으로 수정을 시키면 얼룩덜룩한 칡소처럼 생긴 송아지가 태어난다. 여기서 한 번 더 한우랑 교배하면 이제 멀쩡한 한우가 태어난다. 그런데 어딘가 홀스타인의 흔적을 안고 있다. 이마에 하얀 티자형 털을 가지고 있어서 테슬라라고 불리던 녀석도 있고, 배에 흰털이 있기도 하다. 예전에는 이런 경우 모두 한우로 인정을 받았지만 지금은 정부에서 개체 관리가 엄격하게 이루어져서 불가능하다. 그러니 현재의 한우들이 대부분 예전에 이런 과정을 거쳐 덩치를 키웠다고 보고 있다.)
젖소보다는 늦었지만 십여 년 전부터 한우도 개량 사업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지역마다 브랜드 한우가 생기고 고급육의 수요가 늘면서 등심 면적이 넓고 육질이 좋은 소가 인기를 끌었다. 농협중앙회 한우개량사업소에서는 종모우를 길러 정액을 생산하는데 생산 형질 유전 능력이나 체형 유전능력에 따라 세분화시키기 시작했다.
개량에 관심을 기울이는 한우 농가가 한집 두 집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과열의 기미가 보였다. 우리 지역에서 과열에 불을 댕긴 건 모모리(지역을 밝힐 수는 없으니) 삼인방이라고 불리던 목장주들이었다. 뒤늦게 오십 대가 되어서 하던 사업을 정리하고 축산업에 뛰어든 사람들이었다.
한우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만 하던 시기였다. 금전적으로 여유 있는 퇴직자들이 돈이 된다고 하니 현대적인 설비를 갖춘 보기에도 근사한 목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인기 있는 정액과 능력 있는 암소 사이에서 태어난 송아지를 사들였다. 소문에는 송아지 한 마리에 이천만 원을 줬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모모리 삼인방이 앞다퉈서 돈을 쓰고 입이 딱 벌이지는 가격의 송아지를 사들이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었다. 하고 싶으면 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의 오만이었다. 주변에는 삼십 년 사십 년씩 소를 키워온 목장주들이 있는데 그들이 보기에 평생 소만 키워온 노인네들이 한심해 보인다는 것이다.
사십 년 목장을 했으면 뭐 하나. 다들 그때그때 닥친 일들만 할 줄 아는 걸. 모모리 삼인방이 보기에 주변 목장주들은 같은 일을 반복했을 뿐 발전이라고는 없는 사람들이었다. 제자리에서 쳇바퀴만 돌린 노인네들은 한심하기 짝이 없었고 자신들은 그런 목장주들과는 차원이 다른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런 마음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자, 개량한 송아지에 이천만 원을 쓸 여력은 없지만 나름 평생 소를 키워왔다는 자부심을 가진 목장주들이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돈을 벌자고 하는 일인데 모모리 삼인방처럼 엄청난 투자를 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도 납득도 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한우를 키우는 목장주들 사이에 반목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반목은 오래가지 못했다. 투자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니 모모리 삼인방의 돈줄이 막히기 시작하면서 실제보다 훨씬 과장된 소문이 돌았다. 축협에서 사룟값을 받지 못해 공급을 중단했다더라 삼인방중 한 명이 암에 걸렸다더라 하는 말들이 떠돌았다. 그 말을 전하는 사람들의 입가에 비웃음이 감돌았다. 그리고 과열되었던 개량 열풍도 수그러들었다.
코로나 시절 정점을 찍었던 한우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사육두수 과잉이야기가 슬슬 나오기 시작했다. 칠팔 년 전 한우 공급 과잉 시기에는 정부가 나서서 보조금을 주며 한우 농가의 폐업을 유도했다. 그래서 한우 가격 하락은 오래가지 않았고 당시 떨어진 가격에 한우를 사서 모았던 농가들은 꽤 많은 돈을 벌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사룟값이 너무 올랐고 전체 한우 사육두수는 과잉이었다. 거기다 경기 침체로 소고기 수요는 줄어들었으니 이십여 년의 한우 호황은 끝이 나고 깊은 어둠의 시기가 도래했다.
아무리 좋은 정액을 써서 송아지를 생산해도 경매에서 팔리는 가격이 형편없이 떨어져 버렸다. 그 사이 소문 속의 모모리 삼인방도 조용해졌다. 결국 어려운 시기가 와도 버티는 사람들은 그날이 그날 같았던 마음으로 삼, 사십 년 소를 키워온 사람들이었다.
고인 물은 발전이 없고 개량은 필요하지만 돈으로 남들의 세월을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래도 잘난 척하는 새로운 사람들과 상처받았지만 뒤지지 않으려 애쓰던 축주들이 열을 올리던 때는 좋은 시절이었다.
이제 그냥 버티는 사람만 남았다. 송아지가 아파도 치료할 의지조차 상실한 축주들이 송아지 키우느니 팔아서 주식이나 비트코인을 사는 게 더 낫다고 말한다. 그 말에 마땅히 반박할 근거가 떠오르지 않는다. 어찌 되었든 승자는 살아남는 사람이다. 송아지를 키우든 코인을 사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