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청 소재지의 국립대를 다닌 추억의 386 끄트머리 세대다.(안다 이제 386은 없다는 걸. 686이 되었고 그 386이 완고하고 보수적인 60대가 되었다는 것을ㅠㅠ) 당시 내가 살던 지역은 교육도시로 이름난 곳이었는데 우리는 여기가 왜 교육도시냐고 비웃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곳은 진짜 교육도시였다. 당시 우리는 대학 가는 것을 너무 당연히 여기고 야간자습을 12시까지 하며 학교를 다녔다. 1980년대 여자들이 대학을 가는 것이 그렇게 당연하지 않은 곳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안 것은 훗날의 일이었다.
각설하고 대학에 가보니 남학생들과 여학생들의 생활 수준 차이가 많이 벌어지는 것을 보았다. 남학생들은 무조건 대학을 보내려고 부모가 무리하는 가난한 집의 아들들이 대부분이었고, 여학생들은 아들만 대학을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집, 그러니까 조금은 더 살만한 집 딸들이 많았다.
소 팔아 대학온 아들들은 군복 상의에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이 국룰인 시대였다. 도서관 앞에는 자전거가 빽빽하게 서 있었고 제대할 때 입고 나온 옷을 졸업할 때까지 입는 것 같아 보였다. 그때 선배 하나가 어두운 얼굴로 자기네 집 소를 도둑맞았다고 했다.
아버지가 쓰러지셔서 가족들이 경황이 없이 병원에 몰려간 사이 집에 있던 소를 송아지까지 싹 다 도둑맞았다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어찌나 가슴이 아프던지 세상에 도둑들은 어째서 부자들의 물건을 훔치지 않고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 건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소가 농사짓는 집의 엄청난 재산이던 시절 소도둑 맞은 이야기들은 너무 많아서 셀 수가 없을 지경이다. 어떤 집에서는 소를 깡그리 훔쳐가며 개까지 실어 갔다고 어이없어하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랬던 소도둑이 과연 지금까지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소도둑은 사라졌다. 더는 소를 도둑질할 수 없는 세상이다.
먼저 송아지가 태어나면 축산물 이력제 시스템에 등록을 해야 한다. 그럼 우리가 가족관계 증명서를 가진 것처럼 송아지도 개체번호와 가족 이력이 전산에 등록된다. 송아지의 어미 소 번호와 인공 수정한 정액의 번호, 한우인지 홀스타인인지가 모두 전산에 실리고 그 번호를 이 표로 찍어 귀에 달고 산다.
송아지를 팔게 되면 전주인과 현주인이 모두 전산에 뜬다. 그리고 그 번호가 있어야 도축이 가능하다. 예전에는 도축장이 아닌 곳에서도 개인적으로 도축을 해서 고기를 해체해 나누어 갖는 경우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일이 절대 불가능하다. 도축장에서 도축 한 뒤 해체 하는 일도 허가받은 정육점이 아니면 할 수 없다.
자기가 키운 소를 잡아먹고 싶어도 정육점에 의뢰를 해서 해체작업을 해오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그러니까 소를 훔쳐간다고 해도 잡을 곳도 없고, 훔친 송아지를 키워도 번호가 없으니 도축을 할 수 없다. 전산 시스템의 발달로 소를 훔친다고 해도 도저히 판로를 찾을 수 없으니 도둑질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무슨 일이든 나에게 피해를 입힌 사람은 가까운데 있는 사람일 경우가 많다. 소도둑질을 하던 사람들도 소장사를 하며 농가의 사정을 꿰뚫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시스템이 변한 것을 제일 잘 아는 사람들인 것이다.
소도둑을 잘 잡아서 소도둑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소의 유통 과정이 투명해져서 소도둑이 없어졌다. 산아 제한을 잘해서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이 키우는 환경이 열악해서 아이를 안 낳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횡횡하고 있는 보이스 피싱은 어떻게 해야 없어지는 걸까? 누구 말대로 디지털 머니를 쓰면 그 유통 경로가 다 보이기 때문에 보이스 피싱이 불가능하다고 하는데 그렇게 흘러가야 하는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는 언제나 존재하겠지만 말이다.
다시 돌아가서 답을 하자면 그 많던 소도둑은 어디로 가지 않고 할 수 없어졌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