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전 구제역이 전국적으로 확산돼 떠들썩했었다. 당시에는 수출 문제 때문에 구제역 백신을 하지 않고 있던 때라 살처분의 범위가 엄청났었다. 구제역이 발생한 농가 반경 몇 키로 안에 있는 목장들은 모두 살처분 대상이 되는 정책이었다. 그러다보니 축산농가 밀집 지역은 동네가 모두 살처분 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특히 K지역은 관내에 있는 모든 소를 살처분하다시피했다. 축산위생 연구소 방역요원이었던 J씨는 K지역으로 착출돼서 한달간 살처분 작업을 하고 돌아왔다고 했다. 약간 짖궃은 성향이 있는 J씨는 내가 들으면 몸서리 칠만한 엽기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걸 좋아했다.
차마 여기 적을 수 없는 도축장 풍경이라든가 모돈의 끔찍한 상황, 양계 농가에서 닭들이 겪는 일 따위를 들려주어서 내 어깨를 움츠러들게 만들고는 했다.(그때 잠깐 채식주의자가 되고 싶었지만 나도 뻔뻔한 사람이라 바로 잊어버렸다.) 그런 사람이 한달동안 K지역의 모든 소를 살처분하고 왔으니 얼마나 엽기적인 이야기거리가 많았을까.
구제역에 걸리지 않은 멀쩡한 소들을 방역정책에 따라 살처분하기 위해 모두 차에 실은 뒤 차 밖에서 썩시콜린 주사를 놓는다. 썩시콜린은 근육이완제로 몸의 모든 근육이 풀어져 죽음을 맞이한다. 근육이 풀려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는 대단히 평온한 죽음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익사와 비슷하게 숨을 쉬지 못해 죽는 것이다.
나는 한때 우울이 극에 달해 썩시콜린으로 죽을 수도 있다며 혼자 엉뚱한 생각을 했지만 수의사 말에 의하면 썩시콜린 주사는 대단히 비윤리적인 일이라고 한다. 죽음의 고통이 순간이지만 무척 심하다고 해서 엉뚱한 상상은 접었다.
당시 너무 많은 소와 돼지를 살처분하느라 썩시콜린이 모자라 중국산을 수입했는데 이 약이 함량미달이라 죽은 가축들을 매립하려는 순간 깨어나 난리 북새통을 겪었다는 이야기에 웃을 수도 울수도 없었다. 날마다 작업이 끝나면 자신들이 입었던 옷과 장비들을 불태웠는데 그 불길이 너무 심해 전선이 늘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참혹한 풍경이 상상되었다.
목장이 아니라 지역 단위로 소를 살처분하게 되면 매립밖에 답이 없다. 얼쩔 수 없이 매립을 하지만 그게 훗날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면 대단히 걱정스러운 일이다. 예전에는 집에서 키우던 소가 한두마리 죽었을 때도 근처 농가 소유 밭에다 매립을 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소가 죽으면 죽었다고 신고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불법 매립을 할수 없다. 그럼 병으로 죽은 소를 어떻게 처리를 할까?
너무 예전에는 예전에는 하고 옛날 이야기를 하는 거 아닌가 싶지만 그동안 축산 정책이 빠르게 바뀌어서 예전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예전에는 소가 죽으면 빠른 시간내에 도축장에 연락하면 도살이 가능했다. 그것을 할 수 없게 된건 오래전인데 갑자기 부상을 당하거나 해서 급하게 도축해야 할 상황이 오면 수의사가 절박도살을 위한 진단서를 써주어 급행으로 처리할 수 있게 한다.
처음에 절박도살이라는 말에서 절박이 절박하다의 절박인줄 몰라서 무언가 다른 행정적 의미가 있는줄 알았다. 그랬더니 정말 절박한 상황이라는 뜻의 절박이었다.
절박한 상황에 절박 도살을 위해 도축장으로 향하던 소가 가던 도중 죽어버리는 경우가 종종있다. 또는 병이 들어 항생제를 썼는데 치료가 되지 않아 절박 도살로 내지도 못하는 경우는 죽을 수 밖에 없다. 이런 경우 커다란 소를 처리하는 방법은 랜더링 업체를 이용하는 것이다.
소가 죽으면 차를 불러 랜더링 업체로 보내는데 나는 그 랜더링 과정이 화장인줄 알았다. 그랬더니 랜더링은 고온에 쪄서 살균을 한뒤 해체해서 쓸수 있는 용도로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어쩐지 랜더링 비용이 생각보다 저렴해서 소 한마리를 태우려면 어마어마한 열량이 필요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하는 걸까 궁금했었다.
차량비용과 랜더링처리 비용은 대부분 지자체나 축협에서 지원금이 나와 농가 부담금은 그리많지 않다. 아무리 비용이 들지 않는다고 해도 소가 죽으면 농가는 피해를 볼 수 밖에 없으니 그런 일은 일어나지 말아야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