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병원은 크게 산업동물병원과 반려동물병원으로 나뉠 수 있다. 반려동물은 개, 고양이가 대부분이지만 파충류, 설치류, 조류등도 있어서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동물병원도 있다. 산업동물은 경제동물로 소, 돼지, 닭, 오리 그리고 많지 않지만 말도 있다.
소는 젖소와 한우로 나뉘고, 닭은 산란계와 육계로 또 세분화한다. 번식검진을 주로 하는 젖소 전문 동물병원도 있기는 하지만 우리 병원 같은 경우는 한우와 젖소를 모두 진료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같은 소지만 한우와 젖소의 치료는 전혀 다른 분야이기도 한다. 요즘은 개나 고양이도 세분화해서 치과, 외과등으로 나누고 있으니 나누기 시작하면 사실 끝이 없다.
산업동물 중에서도 돼지와 닭 사육은 일종에 도박과 같은 측면이 있었다. 돼지 사육은 5개월, 육계 사육은 평균 40일 정도니 주기가 짧아서 가격 등락도 심했다. 계속 손해를 보다가도 한번 가격이 폭등하면 갑자기 돈을 엄청나게 벌어서 그동안 밀린 사룟값이며 약품 값을 한꺼번에 지불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미수를 쌓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다. 지금은 계약 사육이 많아서 자돈이나 병아리를 대기업에서 대주고 농가는 키우기만 하는 시스템이 널리 퍼져있기에 불확실성이 줄어든 만큼 수입도 수수료 수준으로 받지만 예전에는 한번 터지면 왕창 돈을 버는 그야말로 한탕이 만연했다.
돼지와 닭은 소보다 훨씬 대량사육을 하기 때분에 개체진료를 하지 않는다. 병이 돌면 한 마리 두 마리가 아니고 축사별로 대량 폐사하기 때문에 전체 컨설팅 수준으로 진료를 한다. 그래서 약도 대량으로 들어가고 농가 약 값이 억 단위를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로 미수가 쌓이기 시작하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된다.
그에 비해 소는 한우의 경우 30개월 이상 기르고 젖소는 젖이 제대로 나면 죽을 때까지 데리고 가는 것이 이득이다. 그렇게 주기가 길어서 가격등락도 폭이 적어 돼지나 닭에 비해 위험도가 낮은 편이었다. 그리고 약도 그다지 많이 쓰지 않는다. (슬픈 일이지만 사실 그래서 소고기가 가장 안전한 고기다. 비싸서 자주 먹을 수 없기 때문에 문제지.)
재미있는 일인데 축주들의 성향도 돼지나 닭을 기르는 분들과 소를 기르는 분들은 전혀 다르다. 산란계를 하는 분들은 매일 달걀 가격을 계산하다 보니 세상을 달걀 가격으로 보고 소를 키우는 분들은 덩치 큰 소 값으로 세상을 보니 크게 본다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하여튼 돼지나 닭을 취급하는 동물병원은 미수에 때문에 골치를 썩이는 경우가 많은데 소를 진료하는 동물병원은 대체로 미수가 없는 편이다.
그럼에도 첨가제 종류를 공격적으로 판매하는 소 전문 동물병원은 미수금이 있을 수 있지만 우리는 진료만 하기 때문에 미수가 없다. 2002년 개원한 이래 미수금을 받지 못한 경우는 몇 건 없는데 합쳐서 백만 원도 되지 않는다.
수의사는 약을 팔아 돈을 벌겠다는 마음이 전혀 없이 진료만 하는 스타일이고 진료비를 떼어먹는 축주는 거의 없다. 말의 경우는 워낙 진료비가 비싸서 축주들의 부담이 크고 그러다 보니 미수금 회수가 안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어쩌면 수의사가 성향이 맞지 않는 농장에는 진료를 회피할 만큼 욕심이 없어서 미수금이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외상값을 갚지 않은 사람들은 외상을 할 때도 태도가 이상한 사람들이다. 메추리 농장을 하던 사람은 애초부터 사기꾼 스타일로 보였고 결국 마지막 미수는 받지 못할 거라는 걸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막무가내로 약을 가져갔고 당시에는 우리 병원이 축협에 있어서 조합원과 마찰을 일으키기도 어려워 알면서도 외상을 주었다.
결국 그 농장주는 망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망해서 미수금을 갚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평소에 갚을 것도 제대로 갚지 않고 사는 사람이라 망하는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닭이 먼저인지 계란이 먼저인지 따져봤자 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