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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예진 May 27. 2024

네 인생의 이야기

처음 그 아이를 만난 것은 5살 때였다. 엄마 손을 잡고 병원 문을 열고 들어온 아이가 모르는 사람에게도 너무 착착 감기며 말을 시키는 것을 보고 약간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이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갈망.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은 그 욕망이 보여서 마음이 착잡했다. 그 욕망이 앞으로 아이를 얼마나 힘들게 할지 짐작되어서 착잡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의 엄마는 하우스에 오리를 키우고 싶다고 했다. 지금 막 소를 키우기 시작했지만 더불어 남은 비닐하우스에 오리를 키우고 싶은데 방법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 문의했다. 내가 다른 사람 일에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서는 성향이 아닌데 아이 엄마는 도와주고 싶었다.


그녀와 이야기를 하면 나도 모르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녀는 '나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억척스럽게 열심히 일 할 수는 있어요' 하는 자세로 타인이 돕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여자였다. 나도 그렇고 수의사도 그렇고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녀가 도움을 요청하면 발 벗고 나섰다.


그리고 얼마 후 수의사가 그녀의 태도에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을 상대하는 방식이 특히 남자를 상대하는 방식이 유혹자적 태도를 취했다. 그러면서 도움을 최대치로 이끌어내고 그 도움을 받는 동안에는 남자들이 추행을 일삼아도 참는 것이다. 그리고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어지는 날 법적인 절차를 밟았다.


정신이 멀쩡한 남자들은 그녀와의 자리를 조심했고 모질이 같은 남자들은 송사에 휘말렸다. 그러는 과정에서도 그녀는 언제나 배고팠다. 사랑받고 싶었고 사랑하고 싶었으나 남자들은 모두 나를 이용하려 하기만 한다고 괴로워했다.


세상 모든 남자들에게 유혹자의 태도를 취하면서 남자들이 자기를 만만하게 여긴다고 괴로워하는 그녀를 보면 나도 모르게 말에 날이 섰다. 내 앞에서 남자들과 통화하는 내용을 들어보면 어이가 없었다. 아프다는 남자를 걱정하는듯한 말이 선을 넘는 태도였다. 그리고 전화를 끊자 그 남자가 자신을 괴롭힌다고 천연덕스럽게 욕을 했다.


그렇게 살면서 두 번째 남편과 이혼하고 기혼 상태인 남자의 내연녀 노릇을 몇 년 하다 비참하게 버림받고 다시 몇 명의 남자를 거치는 동안 5살이었던 아이가 중학생이 되었다. 여자는 여전히 구멍 난 독처럼 채워지지 않는 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채 살고 있다.


문제는 그녀가 사랑에 빠졌다 버림받는 과정에 지속적으로 아이가 방치되었다는 것이다. 엄마의 빈독을 그대로 물려받고 태어나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가슴을 가진 아이가 방치된 채로 중학생이 되었으니 처음 아이를 본 순간 느꼈던 착잡한 미래가 그대로 실현되고 말았다.


나는 그녀에게 남자에 미쳐서 아이를 방치하는 엄마라고 독한 말을 내뱉기도 했다.  그럴 때면 배시시 웃음을 흘리고는 하던 여자. 어떤 부분에서는 무척이나 똑똑하고 명석한 사람이면서도 겉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인양 백치미를 흘리던 여자는 자기랑 너무 똑같은 딸의 모습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자기는 정말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한다.


아이를 전학시키고 정신병원에 입원을 시켜야 할 것 같다고 말하는 그녀는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이다. 나는 점쟁이도 아닌데 그 어린 꼬마의 미래가 보여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그 걱정이 현실이 된 모습을 부며 무력감을 느낀다.


테드 창의 '네 인생의 이야기'에서 외계인과의 대화를 통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딸의 죽음을 알았지만 어찌할 수 없었던 언어학자처럼 미래를 안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나고 만다.  


나는 '네 인생의 이야기'를 읽고 주변 사람들에게 묻고 다녔다. 네가 만약 지금 사랑하게 된 사람과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성년이 되자마자 죽게 된다는 사실을 안다면 지금 그 사람과 결혼하겠니? 질문을 받았던 사람들은 모두 그럼에도 그 길을 가겠다고 했다.


'네 인생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컨택트에서는 그 사실을 알았음에도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언어학자에게 남편은 이혼을 통보했다. 어떻게 그걸 알면서도 여기까지 와서 나에게 이런 아픔을 줄 수 있느냐고 말이다. 자식을 잃은 아픔에 남편은 충분히 그녀를 원망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래를 안다고 쉽게 현재를 바꿀 수는 없는 법이다. 내가 아무리 옆에서 여자에게 아이 그렇게 방치하면 안 된다고 면박을 줬어도 여자는 언제나 채워지지 않는 독에 가짜 사랑을 붓느라 정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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