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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스 May 08. 2020

내가 해야할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

이 책은 서평 모음이고, 저자는 서평을 써서 먹고사는 사람이다. 즉 전문 서평 가다.

제목의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의 문장은 저자가 읽은 책 중에서 고른 것이고, 기억력이 안 좋은 나는 책을 다 읽은 후 기억나는 문장이 없다. 분명히 서평을 읽는 동안 나는 몇 번 감동하고, 감동하고, 또 감동한 것 같은데 어찌 된 일인.


사실 이런 일들은 다반사다. 메모해놓지 않으면, 정리하지 않으면 나에게 남은 것은 흐릿한 느낌뿐이고 그것은 정말로 알거나 정말로 느낀 것과는 다르다.


그러고 보니 올해 나는 남이 쓴 서평을 자주 보고 있다. 내가 브런치에 지원하면서 앞으로 열심히 책과 영화 감상을 쓰겠노라고 (그러니 통과시켜달라고 해서) 그런 것 같다.


내가 처음 돈을 주고 구매해서 읽은 서평은 정희진의 책이었다. 나는 그녀의 글을 읽고 독후감이나 서평, 감상문 따위를 읽는 게 재밌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일단 나는 책 내용에 대해 자세하게 소개하지 않는 서평을 좋아한다. 특히 줄거리를 열심히 말해주는 서평을 싫어하는데, 그것은 그저 줄거리에만 충실한 아이들의 독후감을 읽어야 하는 나의 의무 때문일지도 모르다. (아 물론 내가 지도를 잘했으면 아이들이 재미있게 썼을 텐데. 나의 탓이다.)


정희진의 독후감도 그렇고, 이 책 금정열의 서평도 책 내용을 자세하게 소개하 않는다. 둘 다 서평의 형식을 빌어와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직업 서평가에 대해 이런 입장을 밝다.

다른 이들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우스꽝스러운 직업을 가진 사람
 

그러나 그는 다른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결국 자기 얘기를 하고 있으니 우스꽝스럽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른 책을 읽고 쓴 글을 읽고 또 그에 대한 독후감을 쓰고 있으니, 저자의 말대로라면 나는 더더욱 우스꽝스러운 일을 금 했다.


나는 요즘 글쓰기 싫어서 책을 읽으면서 메모도, 페이지를 접어두는 짓도 하지 않았다. 런 식으로 대충 책을 읽은 나에게 남은 것은 저자 개인에 대한 것이었다. 저자가 소개한 책이나 문장들은 어찌 된 일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금정열씨는 어쩌다가 서평을 쓰게 되었으며, 어디에 살고, 어디를 자주 가며, 언제 결혼을 했고,  어떤 결을 가진 사람인지 그냥 그런 것들만 흐릿하게 기억이 다.


원래 나는 (모두가 그럴 테지만)  독후감을 쓸 때 책을 다시 뒤적이고, 따로 메모해둔 구절을 다시 꺼내어 본다. 그런데 애초에 그 작업을 하지 않은 나는 다시 책을 뒤적이기가 너무도 귀찮아 이번엔 기억에 남는 것만 쓰기로 했다. 다만 기억에 남는 것들이 작가가 제목을 지어준 '멋진 문장들'이 아니었을 뿐이다.



-책을 읽고 기억나는 것-


금정열씨는 원래 온라인 서점 MD로 일하고 있었는데 소설을 쓰겠다고 퇴사를 했다. 그런데 아직 소설을 쓰지는 못 한 것 같다. 잘 모르겠다. 그의 책 중에 소설이 있는지. 대신 그는 현재 전문 서평가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고 책은 여러 권을 써냈다. 나는 글을 쓰고 싶긴 한데 그렇다고 퇴사를 할 엄두는 나지 않는 소심쟁인데 금정열씨는 매우 용감한가 보다.


그리고 그는 생계로 글 쓰는 것의 고됨을 종종 풀어놓는다. 아마도 내가 생계형 교사라서 생계인으로 사는 것의 고됨 같은 것에 무척이나 공감해서 그럴 것이다. 학교에서 나는 가끔 생계형이 아닌 교사를 만나는데, 나는 그들이 늘 부러웠 것이다.


그는 마감시간을 자주 지키지 못하는 것 같았고, 그의 묘사 덕분에 작가들이 늘 마감시간, 마감시간 하는 투정을  진짜라고 믿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금정열씨는 카뮈를 무척이나 좋아하는데 어느 정도냐면, 카뮈의 스승의 책-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다.-을 좋아하는 이유가 카뮈가 서문을 써주었기 때문이란다.


 '그 스승이 들으면 언짢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가 생각을 바꾸었다. 그 스승은 카뮈를 사랑한 것 같으니까 언짢아하지 않을 것이다. (너무 성의가 없는 것 같아 책을 들추어 카뮈 스승의 책 제목을 찾아보았다. 장 그니에의 섬이라는 책이다.)


그는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고, 책에 둘러싸여 살고 있었다. 비유적인 의미 말고 실제 의미 그대로 그는 책에 둘러 쌓여 살고 있다. 돈이 없어도 책을 사는 걸 멈출 수 없어 보이고, 책을 좋아하는 것은 확실하다.

책의 서문에 밝힌 것처럼 그는 "책들에 파묻혀 길을 잃었다고 느낄 때조차 문장을 떠올리는" 사람이니까.


그가 온라인 서점 MD를 그만둔 것은 결국 책을 좋아해서였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책을 좋아해서 서점의 MD가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막상 그 일은 책을 사랑한다는 느낌을 주기는 어려운 일로 보인다. 하루에 수십 권씩 쏟아지는 책들 앞에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일'을 하려면 그렇게 될 것 같다. 그럴 때 금정열씨는 책이나 저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사랑하 것을 키려고 일을 그만두었을지도 모른다.


피아노를 매우 잘 치고, 또 좋아했지만, 대학은 해금 전공으로 갔던 친구가 생각이 난다.

친구 아빠 말씀은 이랬다.

네가 좋아하는 것은 좋아하는 것으로 남겨라.

프로의 세계에 들어가거나, 그것이 '일'이 되면 좋아하던 것을 마냥 좋아하지 못하게 된다는 걸 친구 아빠는 잘 아셨던 것이다. 딸이 좋아하는 것 하나 정도는 평생 가지고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니, 나는 감동을 받았었다.


그리고 그가 소개한 멋진 문장들은 기억하지 못하면서 그가 '은평구에 살며 합정에 자주 출몰한다'는 이 지나가는 짧은 문장이 기억나는 이유는 내가 은평구에 살 계획이고, 합정에도 자주 출몰하는 1인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있는 바질 라면과 크루아상이 맛있기 때문이고, 아직도 가보지 못한 튀김 덮밥집을 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멋진 문장들 중 하나.


생각을 너무 많이 하고, 너무 많은 것을 읽은 젊은이의 모든 열정과 이상으로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결정했다.
-폴 오스터 달의 궁전-


이것은 또 나의 얘기. 나는 너무 많이 읽고, 너무 많이 생각해서 요즘 괴다. 나는 올해 100만 원 남짓한 돈을 받는 대신 하루에 4시간만 일하는 삶을 선택했다. 그래서 시간이 많고, 그래서 너무 많이 읽고, 너무 많이 생각하는 것이다. 4시간만 일하면 좋을 줄 알았는데 자꾸 혼자 땅굴 파는 시간만 늘어나는 것 같아 후회하기도 했다. 아니 그것보다 반이상 깎여 들어오는 월급 때문에 후회한 게 맞을 것이다.


아무튼 이 책의 서평들은 재미있다. 작가의 말마따나 서평가가 아무리 책을 소개해도, '앞으로도 읽지 않을 독자'는 어차피 읽지 않을 것인데 책을 잘 소개하는 게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서평을 빙자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나 실컷 쓰는 것이 아무래도 서로(저자와 독자 모두) 재밌을 것이다. 사람은 자기 얘기할 때가 사실 제일 재미있다. 읽는 사람도 남의 얘기 말고 그 사람의 진짜 얘기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니까 트집 잡을 것 없는 의견이나 보편적인 얘기들은 영 재미가 없다. 친한 것도 아니고 안 친한 것도 아닌 직장동료와의 점심식사에서 오가는 대화처럼, 뭐라고 답을 달아줘야 할지 모르겠는 일기장처럼 말이다.


" 그래, 정말 재미있었겠구나." 따위 밖에는 도저히 생각나지 않아 볼펜을 쥔 채로 몇 초간 정지하게 되는 일기를 마주할 때마다 나는 곤란함을 느낀다. 그 아이에게 일기는 10줄을 채워야 하는 숙제일 따름이고 역시 나쁜 것은 그런 숙제를 내준 나다. (그래서 내년에는 일기장을 없앨 것이다.)


그리고 나는 갑자기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바로 내가 '뭐라고 답을 달아줘야 할지 모르겠는 일기' 같은 글을 쓰는 것이다. 칭찬이든 욕이든 어떤 반응이든  해줄 게 없는, 그런 글을 쓰게 될까 봐 두렵다. 하지만 저자의 말마따나 나는 이미 그런 글을 썼고 마감시한은 없지만 이제 이 글은 끝내고 싶다.


어느덧 이 글 또한 마무리할 시간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서평가를 괴롭히는 세 번째 불안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시간에 쫓겨 재미도 의미도 없는 글을 쓰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굳이 설명을 늘어놓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보시다시피 나는 그런 글을 썼고, 이제는 지긋지긋한 불안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시간이다. 그것이 내가 불안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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