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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스 May 11. 2020

섹슈얼리티란 무엇일까.

섹슈얼리티 강의, 두 번째

색슈얼리티란 대체 무엇일? 나에게 이 용어는 뜻을 알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 건지는 모르겠는... 그런 용어다. 섹슈얼리티라는 것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사실  문장의 정의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러니까 한 문장으로 쓸 수는 있겠지만, (사전을 찾으면 나오니까) 걸 읽고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느낌이랄까. 저자들이 섹슈얼리티를 설명하기 위해 지금 책 1권의 설명을 해놓았으니  당연한 소리이다.


섹슈얼리티를 그대로 번역하면 ‘성’이다. 이는 섹슈얼리티를 이해하는데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전을 찾아보면 섹슈얼리티란 성에 대해 인간이 가지고 있는 태도, 감정, 행위, 욕망, 실천 등을 말한다고 되어 있다. 이렇거 본다 섹슈얼리티 의미는 굉장히 넓은 것이다. 즉 단순히 젠더나 섹스를 뜻하는 말도, 성적 취향, 성행위만을 뜻하는 말도 아니다. 쉽게 생각해서 성에 관한 다양한 담론들을 섹슈얼리티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런데 무엇에 관한 것이든 담론은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구성물이다. 즉 사회에 따라, 시대에 따라 (~에 대한 담론)은 변한다. (그 주제가 무이든 그렇다.)     


예를 들어 성적인 것이란 무엇일까?

성적인 것은 시대별, 문화별로 동일하지 않다. 오늘날 우리가 성적인 것이라 느끼는 이미지가 원시 시대에는 전혀 성적인 것이 아니었을 수 있으며, 동시대 우리 사회에서 성적인 이미지가 다른 문화권에서는 아닐 수 있다.


따라서 섹슈얼리티는 사회적 구성물이며, 섹슈얼리티가 사회적 구성물인 이상 이는 권력관계를 반영하고 현실의 다양한 문제와 얽혀서 작동한다. 즉 섹슈얼리티는 단순히 성별(sex), 젠더와만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계급, 세대, 민족, 국가, 인종, 노동 등 다양한 현실 문제와 맞물려 있다. 특히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가부장제는 현재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강력한 흐름이기에 이는 성에 관한 모든 담론에 깊이 영향을 끼치고 있다.

    

예를 들어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늘 국가와 관련되어 있었다. 출산은 여성의 성적 실천 중 하나이다. 최근의 지배담론은 저출산을 경제인구 감소로 인식하면서 국가의 위기로 보고, 고령화 사회 부양 문제로도 연결시킨다. 결혼하지 않으려는 여성, 결혼하고도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들을 이기적이라고 말하는 론이 생겼고, 이에 대해 여성들은 자신들을 국가를 위해 애 낳는 기계를 보지 말라며 반발했다.


또 위안부 생존자들에게 국가 민족의 치욕이라며  창녀 딱지를 붙여 피해사실을 숨기며 살게 하더니 약 50년 후 할머니들을 피해자로 보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나자 민족의 아픔을 상징하는 담지자로의 역할을 부여했다.

현재 위안부 생존자들에 대한 댓글이나 반응은 50년 전과 완전히 다른 것이다. 우리는 현재 너무 당연하게 위안부 생존자를 피해자로 보는 관점을  취하고 있다. 그래 마치 처음부터 이랬을 것 같지만, 예전에는 위안부 생존자들을 더럽다고 비난하는 반응이 우세했다. (그러니까 사건 발생 50년 후에나 문제제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고유한 영역이 아니라 다른 영역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또 성매매도 그저 젠더로만 환원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남성과 여성 사이의 문제라고만 볼 수 없다는 것.) 90년대 여성운동은 성매매를 사회 문제로 제기했고 이는 큰 성과를 이루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성매매는 공공연한 사실이었지만 '문제'는 아니었다. 위안부 역시 있어진 시점부터 한국과 일본 모두에게 공공연한 사실이었지만 50년 넘게'문제'는 아니었던 것처럼 말이다.


여성운동의 성과로 이제 우리는 성판매 여성을 창녀에서 피해자로 인식할 수 있게 되었고 (기지촌 성매매 등) 이런 흐름에서 성매매를 불법화하는 법률도 도입되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성판매 여성들이 자신의 생존권, 노동권을 주장하며 이에 반발했다. 여성운동은 남성이 아니라 여성 내에서 계급이라는 문제에 부딪힌 것이다. 이렇듯 섹슈얼리티 이슈들은 젠더만이 아니라 계급, 노동, 국가와 얽혀서 복잡하게 맞물려 있다.

     

이처럼 섹슈얼리티는 성행위, 성적인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연애, 사랑, 쾌락, 자위, 몸, 매체에서 재현되는 여성의 이미지, 그것들의 정치성까지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섹슈얼리티’라는 것을 이해하려면 사전의 정의를 찾아 읽어서 될 일이 아니라, 다양한 섹슈얼리티가 경합하는 현실의 풍부한 사례와 분석을 읽어보아야 한다.

    

이 책은 현실의 다양한 장에서 경합하고 있는 주체들의 투쟁을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딱 떨어지는 답이란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이분법적으로 흘러가는 사고의 흐름에서 의식적으로 벗어나야 하고, 딱 떨어지는 정답을 찾으려는 시도를 그만두어야 한다.


예를 들어 성매매는 인정할 수 있는가, 절대 안 되는 것인가?

여성들 대부분은 성매매는 당연히 불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90년대 여성운동가들을 당황시켰던 것처럼 오히려 성판매 여성들이 노동권, 생존권을 주장하며 성매매 불법화를 반대했다. 남성들은 이 목소리에 힘입어 실은 관심도 없는 그녀들의 노동권을 존중하는 체하거나 그놈의 ‘필요악’이란 소리를 들먹였다. 이에 대해 여성인권에 관심 있는 여성들은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 우리는 그녀들의 인권을 위해 성매매를 근절시켜려고 하는데, 오히려 그녀들은 자신들을 위해 성매매가 필요하다고 한다.

     

혼란스러운 이유는 모든 성매매를 동일한 것으로 보고, 성판매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다 똑같은 인간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든지 말든지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그녀를 영희가 아니라 그저 성판매 여성으로 보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영희의 스토리를 속속들이 잘 알고 그녀에게 애정이 있는 친구라면, 우리는 무조건 안돼 라는 식으로는 말할 수없지 않을까.

    

또 성적 자기 결정권이 성폭력 문제에서 남성의 방패막이 되는 현실에 대해서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성적 자기 결정권은 여성의 성이 억압되었던 과거에 대한 반동으로 여성의 의지, 주체성을 강조한다. 오늘날 이 개념은 거의 받아들여져, 여성이 자신의 의지와 생각에 따라 자신의 성적 행위를 결정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오늘날 젊여성들은 순결, 정조 따위에는 코웃음을 친지 오래다.

    

그런데 문제는 여성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이 개념이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남성들의 방패막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많이 수용되는 개념이 피해자 중심주의다. 성적 자기 결정권이 여성과 남성의 동등함을 강조한다면, 피해자 중심주의는 여성의 누적된 차별을 강조하는 개념인 것이다. 두 개는 상충하는가? 우리는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가?


이분법적 사고, 딱 떨어지는 정답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문제 해결을 가로막는 장애가 된다. 모든 사건에 딱 떨어지는 법칙, 모든 사건에 딱 떨어지게 적용될 수 있는 법률? 그런 것은 없다.


현실에 존재하는 개인들을 둘러싼 환경이란 지극히 다양하기 때문이다. 국적, 사회적 자원, 장애여부, 직업, 성별, 가족관계, 상황과 맥락 등을 무시한 채 그저 사건을 객관적 사실처럼 여기고, 당사자를 여성이라는 범주로만 생각하는 것. 그것이 문제이다.   


특히 자주 저지르는 실수는 다차원적인 문제를 단순화하는 오류다. 세상은 너무나 복잡하다. 인간은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언제나 단순화하거나 수사법과 같은 이야기에 의존했다.


우리는 편하게 이해하려고,  복합적인 한 인간을 한 범주에 귀속시켜 그 범주에 속하면 다 똑같을 거라고 생각한다. 명확한 경계 긋기, 무조건 옳은 정답 찾기를 그만두어야 할 때가 아닐까.  그런 점에서 페미니즘이 도움이 되는 것은 미니즘이 범주의 상대화를 말는 학문이라는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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