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엘리스 Jun 17. 2020

여자는 두 개 다 가질 수 없다

책 리뷰_백래시


오래전 비정상회담에서 한 시청자가 이런 사연을 보냈다.


연애할 때는 강아지를 좋아하는 저를 배려해서 참아왔지만,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괴로워하는 저에게 개가 우선이냐, 자기가 우선이냐고 계속 물어보는 이 남자,
어떻게 보면 가족을 버리라고 하는 남자인데
제가 이런 남자와 결혼을 해도 될까요?
-비정상회담 사연-



여기서 전현무는 자신이 이 남자 입장을 대변한다고 하면서, 강아지가 있으면 기를 못 갖는다고 말했다. (네??)

 가정을 이뤄야 하는데 강아지한테 들어가는 애정, 아기한테 들어가는 애정이 분산된다는 것이 그 근거였다. 아 그러니까 여자가 결혼을 하려면 반려견을 포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백래시를 말하는데 웬 반려견 이야기인가 하겠지만 전현무의 태도가 백래시를 사용하는 남자의 전형적인 태도이다. 지금이 조선시대는 아니다. 대놓고 “결혼하는데 여자가 자기희생을 안 하려고 해?” “당연히 네가 포기해야지.(그게 무엇이든. 직장이든 취미이든 친구관계이든 반려견이든)”라고는 말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20세기의 남성들이 쓰는 자주 전략은 “다 가질 수는 없다고 말하기”이다. 수잔 팔루디가 말하듯 남성 사회가 주로 사용하는 반격(백래시)의 무기는 ‘여자는 두 개 다 가질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82년생 김지영』에서 김지영은 말했다.


‘너는 달라진 게 뭐냐고, 너는 포기한 게 뭐냐고.’



누군가 포기하고 희생해야 한다면 그것은 여성이어야 한다는 인식, 이것이 백래시의 주된 무기 중 하나다. 공유의 얼굴로 부드럽게 말하고 안아 준다고 옳은 소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우리자기 뜻대로만 살 수는 없다는 건 안다. 그런데 희생과 짐을 같이 나누어지면 좀 안 되는 걸까? 하지만 가부장제는 그 방법은 짐짓 모른 채 한다.


팔루디는 종종 인터뷰에서 “같이 아이를 좀 돌보면 어땠겠어요?” 질문지만 남성들의 대답은 ‘아 그 부분은 제가 잘 몰라서요. 남자는 뭐...... 그렇잖아요. 하하하.’ 이런 식이었다고 한다. 금도 게 다르지 않다.


백래시란 우리말로 하면 반격이다. 그런데 무엇에 대한 반격인가?


여성해방, 여성의 지위 향상에 대한 (남성 사회의) 반격이다. 즉 여성 해방이 목전에 와 있는 것 같은 때(실제로 목전에 와 있는 게 아니라, 실제로는 아직 멀고 멀었는데), 위협을 느낀 남성들이 혹시나 여성들이 그 문턱을 넘어설까 봐, 저~~ 멀리서부터 위험을 감지하고 여성의 지위 향상을 저지하려고 하는 노력들을 말한다. 그런데 이들의 위험 감지 레이더는 너무나도 성능이 좋아서, 실제로 여성이 남성의 무릎까지도  왔음에도 불구하고 호들갑스럽게 사이렌을 울려댄다.


대표적인 백래시의 메시지는 이런 것이다.


1. 여성들의 지위가 너무 높아졌다. 여성해방은 이미 이루어졌다.


이것은 그러니까 더 이상은 바라지는 말라는 얘기다. 일부 한국 남성의 ‘역차별 시대의 도래 주장’이 이와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성차별 사례는 굳이 생각해내려 애쓰지 않아도 널려있는 반면, 역차별 사례는 일전에 내 동료가 말했던 까무러칠 정수기 물통 같은 것이다.


(남사친이 역차별 시대 운운하길래 네가 겪은 사례를 얘기해보랬더니 직장에서 정수기통을 남자만 갈지 않냐고 대답했다. 나는 현실세계에서 철 지난 정수기통 얘기를 들을 줄은 몰랐다. 온라인에서도 웃음거리가 되는 얘기가 된 지 오래된 것 같은데..... 아무튼 그의 직장에서는 물통 가는 정수기를 쓰지 않는다.)


2. 일하는 여성, 직장맘들의 불행과 힘듦을 강조하는 메시지들.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해요.’라는 말이 나와야 한다. 특히 이는 성공한 여성이 말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 성공한 여성은 아이가 있어도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지 않고 일해서 그 자리까지 갔다는 것이다. 어쨌든 자기 일을 포기하지 않는 엄마에게는 이기적인 여자라는 프레임이 씌워진다. 일을 포기하고 가정으로 돌아간 엄마가 “이제야 제 자리를 찾은 것 같아요” 등의 말을 한 인터뷰가 여기저기 인용되고 방송된다. 그것이 다수 여성의 의견이 아님에도 그렇다.


3. 싱글 여성들의 생물학적 시계를 염려하는 메시지들.

째깍째깍 시간이 가고 있어요. 이제 막차야.
좀 더 늦으면 결혼할 수 없어, 임신할 수 없어!!


드라마에서 결혼을 못해 불행해하는 여성 캐릭터는 흔하디 흔하다. 수잔 팔루디(저자)가 예로 든 미국의 드라마, 영화에서 성공한 싱글 여성들은 결혼 대신 일을 택한 자신을 후회하다가 별 볼일 없는 남자를 만나 마침내 구원을 얻었다고 안도하며 결혼을 한다. 드라마나 영화는 보통 선악구도가 있게 마련인데, 싱글여성들은 마녀이고, 내조의 여왕들이 천사로 묘사된다.


진짜 요즘 드라마는 많이 나아졌지만 팔루디가 이 책을 쓰던 80년대는 말할 것도 없겠다. 하긴 드라마 김삼순(2005년)에서도 삼순이는 정말 큰일 난 노처녀로 나왔는데 극 중 고작 30살이었다. (그리고 지금 보면 경악스러운 장면 묘사들도....) 나아졌다고는 해도 생물학적 시계를 굳이 염려해주는 메시지들은 여전하다. 나이 좀 올라긴 했지만.



4. 여성들은 결혼하고 싶어 안달이 났고, 남성들은 쿨하게 자기 혼자만의 라이프를 즐기고자 한다는 메시지들.

하지만 미국에서도  80년대 당시 실제 설문조사 결과는 그 반대였다. 미디어와 언론은 자기들이 원하는 메시지가 아닌 것은 잘 보도하지 않는다.


결혼을 필수로 여기는 것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이미 촌스러운 생각이 되었지만, 젊은 여성들에게 더더욱 그렇다. 과거에 여자에게 결혼이 필요했던 것은 생계 때문이었다. 임금차별이나 고용차별이 사라질수록 여자들에게 더더욱 결혼이 필수가 아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가부장제의 붕괴이고, 남성 사회가 경제적 차별을 해결하려 하지 않으려 갖은 애쓰는 것은 이런 연유다.




이와 같은 반격의 메시지, 즉 백래시는 영화, 드라마, 티비쇼 등의 미디어와 각종 리서치, 대학의 연구, 언론 기사 등 많은 매체를 통해 확대 재생산된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여성들은 백래시에 영향을 받는다. 한마디로 쪼그라든다. 나는 이기적인가. 결혼을 못하다니 내 인생은 망한 건가. 내가 이 정도는 포기해야 하는데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였는가. (안 그럴 것 같지만, 현실에서 나를 포함 젊은 여성들은 이런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


하지만 가장 슬프고 어이없는 것은 여성의 불행의 일등공신은 바로 페미니즘이라는 메시지이다. 여성은 경제적 불평등 때문에, 대상화와 성폭력 때문에, 일상에 깃든 남녀 불평등 신화 때문에 불행한 것이다. 페미니즘이 아니라.


“불평등을 모르고 살았더라면, 아니 그것을 여자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살았더라면 편했을 텐데, 이것을 못 참으니 고생하는구나. 여성들이 불평등을 인식하게 만든 게 페미니즘이군. 페미니즘이 바로 불행의 원인이다!”라는 것도 백래시의 주장이다.


다시 들을수록 기가 차고 이상하다. 하지만 백래시에 다들 넘어가고 만다는 게 현실.

"이 책의 무서운 교훈은 결국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라는 한줄평이 생각난다.




여자가 반려견을 포기해야 한다는 전현무의 말을 듣고 타일러는 이렇게 말했다.


타협을 하면서 같이 키우는 법을 배우는 거죠. 그러다가 아이가 생겼을 때, 이때는 책임을 나누는 걸 알게 되는 거죠. 이제 우리가 결혼을 할 거니까 네가 이거와 이거 중에 선택해라. 이렇게 이야기하는 남자가 나중에 가서 아이를 낳으면 어떻게 할 것 같아요? 직장을 포기해라 이러겠죠.
그러니까 이 남자냐, 강아지냐가 문제가 아니라, 이 남자가 희생을 요구하는 태도가 문제예요.
-비정상회담 타일러 반응-



자신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 백래시는 거칠고 공격적인 태도로 우리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양의 탈을 쓰고 부드럽고 교묘하게 우리 앞에 온다. 여성을 존중하는 체하며 여성을 제자리에 있게 만든다.


반격 성향의 가부장 옹호자들이 항상 앞에 다는 말이 있다. “우린 여성을 위해 이러는 겁니다.”(=여성은 집에서 아이를 돌볼 때 행복하기 때문에 직장에서 차별을 하는 겁니다와 같은 말이다.) 여성을 육체로, 성적 대상으로만 바라보게 만드는 대중문화도 “여성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낼 권리가 있죠.”라고 말한다. 그리고 알다시피, 우리는 거기에 얼마나 잘 넘어가는지.


백래시는 은밀하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현실이 아닌 가부장의 환상을 반영하는 메시지들에 속지 않기 위해 읽어볼 만한 책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차별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착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