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엘리스 Mar 23. 2020

[ALL ABOUT LOVE] 벨훅스

네가 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야

 제목 그대로 이 책은 사랑에 관한 책입니다. 더 자세히 말1하자면 그냥 사랑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에 관한 책입니다. 어떤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고 어떤 사랑은 진정한 사랑까지는 아닌 걸까요?


그렇습니다. 이 책에 첫 장에 나오는 사랑의 정의에 비춰본다면 말이죠. 하지만 저명한 저자의 권위를 굳이 내세우지 않더라도 진정한 사랑과 그저 그런 사랑의 차이가 있다는 느낌은 듭니다. 사랑 없는 연애가 익숙한 시대니까요. 저는 연애의 참견이라는 프로를 즐겨보는데 아무래도 사랑이 아닌 것 같은 연애들이 꽤나 많아 보입니다.


 저자는 우리의 직관, 경험, 느낌에 의존한 그런 감정들을 언어로 분석하고 설명해 주었는데 개인적으로 이 책의 가장 좋은 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 분명함답게 첫 장의 제목이 바로 ‘명료함: 사랑을 정의하라.’입니다. 저자는 “진정한 사랑은 이런 거야.” 딱 정의를 내리고 “너희들이 사랑이라 착각하는 거? 사실 사랑이 아니란다.”라고 정곡을 찌릅니다.  그리고 그 정의에 비추자면 이제껏 제 삶에도 사랑은 없었다는... 아주 냉정한 결론이 나옵니다.

      

 사람들은 사랑을 정의하길 꺼립니다. 어떻게 정의하든 욕을 먹을까봐 그런 걸까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것이라 손꼽히는 사랑, 그 신비로운 사랑을 감히 누가 어떻게 정의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사랑에 대한 명료한 정의 없이 신비로움이 사랑을 둘러쌀 때 사랑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처럼, 온갖 것에 다 사랑을 갖다 붙이면 되는 아주 편리한 단어가 되어 버립니다. 일반적으로 사랑은 로맨스, 낭만, 애정, 관심, 성 등으로 여겨지는데 저자는 명료하게 사랑을 정의했습니다.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 자아를 확장하고자 하는 의지
    

 뭔가 장황하고 어렵지만 그럴듯한 말이네요. 대충 의미를 감잡아보자면 진정한 사랑이라면, 그것은 서로를 성장시킬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가장 높은 단계의 성장인 영적인 성장까지 말이죠.  어쨌거나 이 정의에 비춘다면 보통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거의 다 사랑이 아니게 됩니다.


 연애를 할 때마다 저는 ‘지금 내가 하는 게 사랑이라고 부를만한 그런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종종 이 정도를 사랑이라고 부르기엔 좀........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연애를 사랑이라 부르기엔 사랑이란 단어가 너무 밑지는 것 같았달까요.


 그러다 나이를 먹고, 연애 경험이 늘어가면서 사랑에 대한 기대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저는 그것을 성숙해진 거라고 여겼습니다. 인간을 알고 세상을 알게 된 30대의 현실감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연애를 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누굴 만나든 비슷한 정도의 감정을 느낀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실망하지 않는 내가 철이 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진정한 사랑을 만날 거라는 기대는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환상에 젖어있는 10대의 귀여운 생각에 불과한 거죠. '적당히 좋고, 적당히 잘해주고 적당히 잘 맞는 사람을 만나 외롭지 않게 의지하며 사는 것이 연애고 사랑이다. 그 이상의 것은 없다.'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사랑, 그러니까 서로 성장시키고 영혼이 어쩌고 하는 진정한 사랑이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정말 그런 게 있을까? 영혼의 성장? 말로 과장하는 거 아닐까?'


이는 마치 오르가에 대한 저의 의구심과 비슷했습니다. 오르가은 여성이 느끼는 강렬한 성적 쾌감을 말하죠. 저도 여자이지만 오르가즘은 그 존재 자체에 의문을 품게 만드는 것들 중 하나입니다. ‘그냥 다 비슷한 정도의 느낌을 오버하는 사람들이 과장해서 말하는 거 아닐까? 왜 늘 자기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친구는 저에게 이렇게 답해주었습니다. 진짜는 의문을 남기지 않는다고 말이죠.

 '아 그렇구나.' 저는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오르가즘이면 이게 오르가즘이구나 모를 수가 없답니다. 세상에는 경험했을 때 비로소 그 존재를 확신할 수 있는 것들이 있지요. 사랑도 이런 것일까요. ‘이게 사랑일까’ 의문이 남는 것 자체가 진정한 사랑은 아니라는 증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자는 애정과 사랑을 구별합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착각 중 하나가 애정을 사랑이라 착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애정이 곧 사랑은 아니다. 애정이란 사랑을 이루는 한 요소일 뿐이다. 진정한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애정 외에도 상대에 대한 관심과 보살핌, 상대를 인정하고 존경하는 태도, 상대에 대한 신뢰와 헌신, 솔직하고 개방된 커뮤니케이션 등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     
사랑에 관한 잘못된 태도 중 하나는 사랑을 특별한 감정이라고 믿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감정적으로 깊이 빠지면 그 사람에게 몰두하게 된다. 모든 감정과 정서를 상대에게 쏟아붓는 것이다. 이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자신의 모든 감정을 투자하는 현상을 카섹시스(CATHEXIX)라고 부른다. 스캇펙은 자신의 책에서 많은 사람들이 카섹시스를 사랑으로 잘못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애정을, 카섹시스를 사랑이라고 알고 있던 사람에 저도 해당이 되네요. 이 책은 우리가 사랑에 관해 잘못 견지하고 있던 태도들을 알려주고 성숙하고 성장할 수 있는 사랑에 대해 말해줍니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을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함을 설파합니다.


나는 진정한 사랑을 간절히 알고 싶어 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런 관계에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애정과 보살핌을 주는 관계에만 만족하는 경향이 있다. 애정과 보살핌은 결코 사랑이 아니지만, 그 속에서는 훨씬 안락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거기에 안주하는 것이다. 애정과 보살핌은 사랑이 요구하는 것만큼 강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위험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토록 사랑을 갈망하면서도 막상 그 앞에서 꽁무니를 빼는 까닭은 사랑의 진실을 믿고 그 사랑을 삶의 지침으로 삼았다가 나중에 뒤통수를 맞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저자는 우리가 사랑을 원하면서도 사랑을 얻기 위해 위험을 감수할 용기는 없다고 말합니다. 지금 이 관계에 사랑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럭저럭 살아간다는 것이지요. 마치 나의 이야기 같았습니다. 사랑은 없지만 정이 들었고 안정감이 있으니 이걸로 됐다고 자위하는 삶.


 책을 읽고 나니 사랑을 위해 가장 용기 내어야 할 부분은 바로 진실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삶을 진실하게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 사회는 거짓말을 적절히 잘하는 사람을 ‘사회생활 잘한다, 인간관계 잘한다’고 말해주는 사회니까요.


 삶과 사랑은 뗼 수 없습니다. 사랑에도 무엇보다 진실함이 필요합니다. 자기 자신과 타인에게 진실할 수 있을 때 상대와 내가 진정으로 연결될 수 있으며 그때 느껴지는 충만함, 영혼의 만남은 어떤 기쁨과도 견줄 수 없는 것 아닐까요.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정직하게 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사랑을 제대로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두려움과 불안을 감추기 위해서
거짓 자아를 만드는데
너무 익숙해져 버린 나머지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가식의 가면 아래에서
진정으로 우리가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잊고 말았다.      
현실에서 쓰고 있던 가면을 벗는 것과 같은 성스러운 행위
-진실을 털어놓고 내면의 갈등을 함께 나누며,
자신의 욕망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내는 것-는
두 개의 영혼이 더 깊은 곳에서 만나게 해 준다.    

벨훅스 _올 어바웃 러브  
매거진의 이전글 <페스트: 알베르 카뮈> 내 안의 페스트는 무엇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