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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스 Oct 27. 2022

다이어트를 그만두면 살찔까봐 겁나요

음식으로부터의 해방

결심을 한 후에도 솔직히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진정으로 그만두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설득해야 했다. 그리고 다이어트는 그만하는게 무조건 낫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쉽지 않았다. 나는 걱정되고 두려움이 앞섰다. 다이어트를 그만두면 살이 찔까봐 너무나도 겁이 났던 것이다. 사실 지금도 아가리 다이어터라 실천도 안하면서 웃기는 일이다. 

ㅡ그러다 살이 찌면 어쩌지. 이렇게 관리해서 요정도라도 되는거 아닐까. 못 지킨 날이 태반이긴 했지만 그래도 효과가 있었을텐데.

-다이어트를 했는데도 그 정도였는데, 안하면 살이 얼마나 찔까.


그러나 내가 붙들고 있던 규칙들이 아무 쓸모가 없었다는게 명확해진 이상, 나는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야 했다. 만약에 살이 많이 찌면 그 때 다시 다이어트를 고려해 보자고 스스로를 달랬다. 약간의 여지는 남겨주어야 '다이어트 그만두기'를 시작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에게 다이어트를 그만둔다는건, 다이어트를 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30대 중반의 어느날 다이어트를 그만두었다.

다이어트를 그만둠과 함께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밥'을 먹는 것이다. 여기서 '밥'은 식사를 뜻하지 않고 우리네 주식, 바로 쌀을 말한다. 나는 식사 때마다 밥을 챙겨먹었다. 그것도 꼬박 한 공기를 다 먹었다!


내가 세운 규칙들 중 그나마 쉬운 것이 밥 안먹기여서 나는 몇년째 점심밥을 3숟갈 이내로 먹고 있었다. 물론 밥을 더 먹고 싶긴 했지만, 반찬들을 먹으니까 아무 맛도 안나는 밥을 안 먹는건 스트레스가 없다고 착각했었다.


그러나 다이어트를 그만둔 후 밥 한공기를 다 먹은 그 날의 해방감을 나는 잊지 못한다. 부드럽고 고소한 쌀밥과 함께 하는 식사는 이전과 비교도 안되게 깊은 만족감을 주었다. 간이 딱 맞았고, 밥을 3숟갈만 먹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었다.


무엇보다 밥을 안 먹기로 한 이 규칙으로부터 벗어난 자체가 나에겐 특별했다. 이것은 다이어트를 그만두는게 진심이라는 나의 결의를 보여주는 상징과 같았다.


쌀밥먹기를 시작으로 나는 모든 규칙을 없앴다.

식사의 모든 규칙을 없애자, 진정으로 내 안에서도 그 규칙이 없어지자, 평화가 찾아왔다.


지금  나는 출근하기 30분전에 일어나서 바쁘게 준비하고 허겁지겁 출근한다. 아침부터 하기싫은 운동을 하지 않는다. 점심이 되면 점심을 먹고 저녁이 되면 저녁을 먹는다. 양이나 종류에 제한이 없으며 시간도 정해놓지 않는다. 먹지 말아야 할 음식 따위도 없다.


그러니까 핵심은 먹는 것에 어떤 정신적 에너지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전에 날 옭아맸던 식사 규칙들은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이건 먹어도 되고 저건 먹으면 안돼. 몇 칼로리만 먹어야 해. 단백질 위주로 먹으려 노력해야 해. 과일은 당이 많으니까 적게 먹어야 해. 밥은 탄수화물이니까 최대한 먹지 말아야 해. 오늘 저녁엔 약속이 있으니 1일 1식 해야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그 규칙들을 전부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렸다. 


이제 나는 먹는 것에 어떤 에너지도 쓰지 않는다. 이것은 다짐이 아니다. 지금의 나는 그냥 그렇게 되어 버린 상태, 즉 의식하지 않는 상태다.


자유롭다는 건 의식하지 않음을 뜻한다. 의식할수록 매여있는 것이다. 쉴새없이 돌아가는 칼로리 계산기가 멈추자 나는 비로소 다른 것에도 눈을 돌릴 수 있었다.


나는 운동규칙도 없앴다. 이전의 나에게 운동은 살을 빼는 목적이기만 했다. 그렇기에 걷거나 뛰기, 스쿼트나 플랭크 같이 딱 어떤 부분을 자극하는 그런 운동만 하려고 했다. 그 외 다른 운동은 시간낭비, 에너지 낭비라고 생각했다. 운동은 내게 숙제였고, 숙제란 모름지기 어서 끝내고 드러누워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운동할 때 이 운동은 얼만큼의 칼로리를 소모하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재미가 가장 중요할 뿐이다. 


이제 나는 일을 하고 남은 시간을 잘 보낼 궁리를 한다. 그 이전에는 외모와 살에 대한 관심으로 삶이 피곤해서 여력이 없었다. 나는 거의 매일 내가 정한 것보다 많이 먹었기에(애초에 그게 적어서 그럴 수밖에 없다 ) 늘 얼마나 먹었나 따져보고 스트레스 받는데 에너지를 썼다. 안하면 자책했고, 그렇게 자책이 주 내용인 일기를 쓰다보면 꼭 해야할 일 말고는  수 없었다. 날마다 하지 말아야 할 것들과 싸우니 그 삶이 즐거울리가 없다.


그래서 나는 소위 '행복한 돼지'가 되었나?

살은 어떻게 되었을까.

.

.

.

.


내가 정말 놀라면서 억울했던 건 이 대목이다. 나는 살이 하나도 찌지 않았다! 도리어 소소하게 살이 빠져있었다. 다이어트를 그만둔 처음에는 쪘을 수도 있겠다만 그것도 모르겠다. 재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다이어트를 그만두고 약 6개월 후에 몸무게를 쟀고, 도리어 3-4KG가량 줄어있었다. 그리고 그 상태로 3년째 유지되고 있다.


지금에서 돌이켜보면 이유를 알 것 같다. 다이어트를 그만두어도, 아니 그만두니까 살이 빠지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


그런데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나는 6개월간 전혀 힘들지 않았고 스트레스도 없었는데. 적어도 살로 인한 우울감에 잠식당한 적없이 평온했는데!

억울했다.


그러니까 저기 15년동안 무슨 뻘짓을 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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