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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스 Oct 27. 2022

술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욕망의 기원 탐색하기

다이어트를 그만두는게 나은 두번째 이유는 욕망과 관련되어 있다. 다이어트 이야기를 하면서 욕망에 관하여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주장한 것처럼 나는 다이어트가 가성비 떨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투입한 노력과 고통 대비 성공확률이 너무 낮다. 그래도 자신을 2%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의 욕망을 점검해볼 때다.


욕망은 우리 인생 평생의 화두일 것이다. 욕망은 개인의 동력이고 사회의 동력이기도 하다. 욕망이 있기에 우리는 노력한다. 자기계발도 다 욕망의 실현을 위한 것이다. 그 결과 나도 발전하고 세상도 발전해 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욕망하는 인간을 긍정한다. 너무 너무 긍정한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점점 욕망을 드러내는데 있어 거침이 없어지고 있다. 그 욕망이란 더 예뻐지고 싶고, 더 인기있어지고 싶고, 더 돈을 많이 갖고 싶은 욕망, 이 3개로 압축된다. 욕망은 전혀 다양하지 않다.


내가 다이어트를 그만둘 수 있었던 직접적 이유는 다이어트는 어차피 실패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지만 그 전에 내 욕망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있었다. 나의 욕망에 대한 탐색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쳇바퀴 속을 헤메고 있을지 모른다.


내가 다이어트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28살 무렵이었다. 나는 억제와 규칙으로 점철된 일상, 불만족스러운 내 외모를 비춰보는 일로 고통받고 있었다.

-무슨 영광을 누리자고 이 짓을 하고 있나.


다이어트 할 때마다 내가 했던 생각인데, 먹고 싶은데 참아야 할 때면 조건 반사적으로 이 생각이 들어버렸다.

지나고보니 나는 이에 대해 진지하게 사유했어야 했다. 왜냐하면 잘 생각해보면 정말 별 영광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왜 다이어트를 그만두지 못했을까? 그만두고 싶어하면서 왜 그만두지 못했을까?


그것은 욕망 때문이었다. 날씬해지고 싶은 욕망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날씬해지고 예뻐지고 싶은 욕망이 강하여 살빼는 행위를 내려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날씬해지는 것보다 날씬해지기를 원하는 내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기를 바랐다. 진심으로 그러기를 바랐다.


나도 가끔은 내가 원하는만큼 날씬해졌다. 다이어트에 성공했을 때다. 그러나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나는 계속 다이어트를 해야했다. 날씬해졌는데도, 다이어트는 계속 되어야 했다. 잠깐 정신을 놓고 나를 놓아버리면 살은 금방 찌는 것 같았고, 결국 몇 달 뒤에 몸무게는 다시 돌아왔다. 그럼 또 다이어트를 해야했다. 그러니 실상 다이어트를 하고 말고의 여부는 내가 날씬해지는 것과 관련없었다. 날씬해져도, 안 날씬해도, 계속 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술취한 코끼리 길들이기라는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코끼리를 갖고 싶어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코끼리가 너무 좋아서 자나 깨나 코끼리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뜨거웠다. 그러나 당장 코끼리를 갖게 돼도 자신은 그걸 키울 능력이 없다는 것을 그는 차츰 알게 되었다. 그는 자그마한 집에 살고 있었고, 날마다 코끼리를 배불리 먹일 사료를 살 수도 없었다. 그는 자신에게 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돈을 모으려고 밤낮으로 노력했다. 그러나 생각만큼 잘되지 않았다. 왜 하필 코끼리냐고 사람들은 그에게 물었다. 개나 고양이라면 쉽게 키울 수 있을 텐데? 그러나 마음이 온통 코끼리에게 가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아직도 부자가 되지 못했고, 물론 코끼리도 그의 것이 아니었다.
이제 그가 원하는 것은 코끼리가 아니었다. 그가 가장 원하는 것은 이것이었다. '코끼리를 포기할 수 있는 마음.' 이것은 코끼리를 원했던 '욕망의 자유'가 아닌 코끼리를 원했던 그 마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다.    


욕망을 가진 자체로 나는 너무 많은 희생을 하고 있었다. 저 코끼리를 키우고 싶은 사람처럼 말이다. 대체 왜 코끼리야? 개도 고양이도 아니고! 나도 그처럼 코끼리를 포기할 수 있는 마음을 원했다. 그러나 이 '마음'이라는 것도 쉽게 얻을 수 있는게 아니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사람의 마음을 얻으면 천하를 얻은 것이다.


마음에 대한 명언이 많다. 마음이란게 정말 모든걸 결정한다는 내용들이다. 그렇다. 마음이란 일견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정말 모든것 이기도하다. 그 어마어마한 것을 어찌 쉽게 얻겠는가. 그러나 원효대사가 일단 깨달음을 얻은 후엔 자유로워졌듯이, 우리가 그 마음을 얻는다면, 코끼리를 포기할 수 있는 마음을 얻는다면, 이것은 내 삶에 지속적인 만족감을 줄 것이다.

날씬해도, 안 날씬해도 계속 돌아야만 했던 쳇바퀴에서 드디어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은 코끼리를 얻기 위한 책이 아니라 코끼리를 포기할 수 있는 마음을 위한 책에 가깝다. 만약 당신이 코끼리를 포기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된다면, 그것은 쉽사리 사라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욕망으로부터 자유를 얻고 싶다면 그 욕망에 대해 물어야 한다. 개나 고양이가 아니고 하필 코끼리여야 하는 이유에 대해 솔직하게 자문해보아야 한다.


사람들은 흔히 욕망과 현실의 괴리사이에 괴로워한다. 공부, 성공, 부, 명예, 아름다움 등.

누군가는 말했다.

-욕망은 없앨 수 없다. 그러니 현실을 바꿔서 그 간극을 줄여라.


나는 저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 욕망은 정말 죽어도 안 없어지는 것 같다. 우리는 종종 노력하기 싫어서 욕망을 내려놓지만 몇달이 지나면 다시 스물스물 욕망이 올라온다. 실행할 때의 고단함, 노력할 때의 괴로움은 잊은게지.


그러나 맥락없이 적용해서는 안 된다. 그 욕망이 어떤 욕망인지 살펴보는 것이 우선이다. 그 욕망이 잘못된 인식으로부터 나왔다면 내 인식의 출발을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 욕망이 정말 나의 욕망이 맞는지 생각해보는 과정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 주입받은 욕망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하늘 아래 온전한 내 것이란 없다. 그러나 최소한 나와 상호작용한 욕망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없이 살면 그냥 그렇게 살게 된다고 한다. 잠시 멈추고 날씬해지려는 이 욕망에 대해 탐색해보기 바란다.


1. 왜 이렇게 날씬해지고 싶은가?

2. 그렇게 날씬해지면 어떤 점이 좋을까?

3. 날씬해지기 위해 당신은 어떤 대가를 치르고 있는가?

4. 날씬해지기 위해 이런 대가를 치르는 것이 정당한가?

5. 내 건강과 내 일상은 날씬해져서 오는 보상(2번의 질문)보다 하찮은가?

6. 나는 왜 이렇게 날씬함에 집착하게 되었는가? (그런 사람이나 경험이 있는가?)

위의 질문들에 답해보기 바란다. 솔직하게 답해야 한다.


가령 1. 왜 이렇게 날씬해지고 싶은가? 라는 질문에 내 만족이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잘 믿지 않는다. 물론 자기가 그렇다고 하는데, 내가 굳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무인도에 혼자 살면 아마 다이어트는 안 할 것이다. 사실 자기만족조차 결국 타인에게서 오는 것이다. 타인이 나를 예쁘게 봐야 그제야 나를 만족스럽게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그렇다고 타인의 눈을 신경쓰는 것, 그것은 그 자체로 나쁜 것도, 약한 것도 아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다. 행복을 느끼거나 불행을 느끼는 것도 다 사람 때문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가? 우리는 타인의 존재와 타인의 평가를 무시할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받아들이고 대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또 나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것은 가짜 자존감이다. 자기만족이란 가면 아래 숨겨져 있는 것은 무엇인가? 자기만족이라고 하면 내 행위, 살빼려는 내 노력에 주체성이 부여되는 것만 같다. 착각이다. 나도 자기 만족이라고 포장한 적이 있었다.

ㅡ나는 내가 날씬한게 좋아. 그래야 내 기분이 좋고 만족스러워. 살찌면 핏이 맘에 안들어. 내가 날 봤을 때 싫은거라고. 내 만족을 위해서 하는거야.


당시 나는 진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왜 내가 날씬해야만 좋았을까? 사람들에게 예쁘다는 소리를 듣는  것, 어떤 집단에 가면 예쁜 편에 속하고 싶은 것, 이성에게 인기를 얻고 싶은 마음때문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 때 나의 심리상태는 이랬다.


나는 내가 생각하기에 쪽팔린 이유들을 자연스럽게 삭제하거나 흐릿하게 만들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관심, 인정, 더 격하게 표현하여 플러팅 따위를 받고 싶어서 다이어트를 한다는 게 좀 쪽팔렸다. 당시에는 의식하지 못했는데 원래 사람은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못하는 것이 없다.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사람들은 기꺼이 기억을 지우고 기적의 논리를 만드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나도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다. 이 고난의 행군은 내가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어야 했다. 남들 눈에 예쁜 여자로 보이기 위해서, 이렇게 먹는 것을 참고 수술까지 받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남들 앞에서 다이어트를 열심히 하는 것을 숨긴 모양이다.

 

그래서 당신질문들에 솔직히 답하지 못한다면 당신의 답이 구려서 일 수 있다. 까놓고 얘기해서 고작 남자한테 인기있자고 몸을 해치면서 열심히 다이어트 하는건 좀 우스워보이니까. 게다가  남자들이 엄청 멋진 것도 아니지 않은가.


나는 아직도 기억이 난다. 나는 당시 166/53kg이라는 날씬한 몸을 가지고도 살을 빼야한다고 생각했었다. 그 때 만나던 남자친구가 그렇게 잘난 친구도 아니었다. 나는 저녁에 남자친구와 데이트가 있어서 그날 1일 1식을 하기로 했다. 일하면서 저녁 6시까지 음식을 먹지 않았다. 데이트 때 입고 싶은 의상을 위해 배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했기 때문이다. 나는 딱 붙는 원피스를 입었고 그는 방금 운동을 해서 머리를 말리고 후리하게 입고 나왔다.

우리는 그렇게 종종 데이트를 했다. 분명히 내가 남자친구에게 잘 보이려고 그렇게 입은 건 아니었다. 나는 내가 그렇게 입고 나가는게 좋았다. 내 스스로가 그런 딱 붙는 옷을 입고 몸매를 드러내고 날씬한 것이 좋았고, 그렇게 밖에 나갈 때 기분이 좋았다.


그러니까 여자들이 이건 자기만족이야! 라는 소리를 하는 것이다. 게다가 남자친구는 내게 살을 빼라거나 옷이 예쁘다거나 하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 더더욱 여자들이 착각을 한다. 내가 원해서 스스로 한 것이니까 자기 만족이라고.


사실 여자친구 면전에서 대놓고 외모평가를 하는 남자친구가 다수를 차지하지 않는다. 그들이 뒤에서 어떻게 말하든,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든 대놓고는 하지 않는다. 여성의 외모꾸밈과 다이어트가 자연스러운 사회분위기가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다이어트에 열중하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러운 사회분위기를 만드는데는 모두가 일조하고 있다.


난 사실 99% 자기만족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말 답이 자기만족이라면 왜 나는 날씬한 나에게만 만족하게 되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왜 몸을 드러내는 것을 스스로 원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당신은 원래 그러지 않았다. 원래 먹는 것을 그렇게 제한하지도 않았고 원래 수술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이 세상에 원래 그런 것이란 없다. 푸코는 우리가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모든 것들은 사실 오래되지 않았으며 사회적 역사적 기원이 있어서라고 했다. 보통 지배층의 필요에 의해서 생긴 것들이 자연스럽다는 타이틀을 얻는다.

-그게 자연스러운거야. 원래 그런거야. 그게 본능이야. 그게 자연의 이치야.


위와 같은 말을 즐겨하는 사람은 주변에 두지 않길 바란다. 이 말을 보통 성차별, 장애인 차별, 인종차별 등 사회적 약자를 차별할 때 쓰이는 말이기 때문이다.

-원래 여자들은 아름다움을 추구해.

-여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외모야


이것이 자연의 이치라면 자연계에서도 아름다움은 암컷의 몫인가? 말하고 싶은 것은  자연의 본성이라 주장되는 개념은 인위적이고 역사적이라는 것이다. 여성들이 날씬함을 선망하게 된 것, 아니 과도하게 자신을 해치면서까지 날씬함을 숭배하는 것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푸코의 말마따나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에도 기원이 있다. 역사가 있다 .


물론 내가 다이어트의 모든 행위를 자기만족은 없고 타인에게 특히 남자에게 잘 보이려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건 아니다. 40살이 넘으면 정말 건강이 제 1의 목적이 된다. 또 내 몸이 어떻게 보여지는지에 따라 자신감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 역시 타당하다. 내가 말하고 싶은건 정도이다.


신체적 건강을 위해서건, 타인에게 보이고 싶어서건,  이성에게 인기를 얻고 싶어서건 다 좋다. 그러나 똑같이 타인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라고 해도 그 맥락과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즉 누군가에게 다이어트는 건강한 욕망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 그것은 노예적 욕망이다. 

당신의 욕망은 어디에 가까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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