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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스 Oct 27. 2022

나는 왜 이렇게 날씬해지고 싶었을까

내가 들은 말들

나는 나의 '날씬한 여자가 되어야 한다.'는 욕망에 대해 탐색해봤다.나의 외모에 왜 이렇게 불만족하게 되었을까? 핵심적 경험들이 있을까. 외모지상주의가 나쁘다고 생각하면서 이렇게 버리지 못하는건 왜일까.

아직도 기억에 남은 여러가지 경험들이 있다. 초등학교 때 엄마와 아빠는 내 가슴을 보고 작다고 말했다.

-이렇게 가슴이 작아서 어떡해. 나중에 수술을 시켜줘야 하나.


초등학생이던 나는 가슴이 작은게 컴플렉스가 되었다. 정말로 나는 내 몸이 부끄러웠다. 엄마와 동생은 가슴이 컸다. 나는 상체가 마른 아빠를 닮아 가슴이 작았다. 가슴은 작고 하체는 통통한 내 몸이 싫었다. 동생은 다리가 길고 날씬했다. 즉 동생은 가슴은 크고 다리는 길고 날씬한, 요즘 사람들이 선망하는 체형이었다. 나는 종종 몸에 대해 비교당하는 말을 들었다. 그들은 아무 의도가 없었다. 아마 엄마 아빠는 이런 말을 한 기억도 없을 것이다.


이것이 내 몸에 관한 최초의 부정적 기억이다. 그렇게 학창시절을 보내고 서울로 갔다. 그래도 이때만해도 내 집착은 그리 심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 비록 내 몸이 맘에 안들었지만, 나는 공부에 집중했고, 성과를 내던 중이었고, 더 급한 수능이 있었기에, 외모는 관심사에서 순위가 밀려났다. 1순위가 성적이었기 때문에 외모가 좀 맘에 안들어도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좌우지간 고등학생 시절 내 기분을 좌우하는 것은 성적이 잘 나오냐 아니냐였지, 살이 빠졌냐 안 빠졌냐는 아니었던 것이다.


내 다이어트 집착은 20대 후반이 되면서 갈수록 심해졌다. 대학교를 거치면서 이제 완성형이 된 것이다. 나는 대학교에서 30살의 신입생 남자동기를 알게 되었다. 나와 내 친구들은 너무 착하게도 그와 놀아주었는데, 이제 그의 나이를 넘겨버리고 보니, 그 당시 우리는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그를 껄껄이라고 칭하겠다.)


껄껄이는 날이면 날마다 신입생 여자들의 외모를 평가했다. 없는데서도, 있는데서도 서슴지 않았다. 그것을 자신의 솔직함으로 치켜세웠다.

-다들 뒤에서 얘기해. 앞에서 하는게 낫지


그리고 껄껄이는 종종 돈을 냈다. 우리는 다 20살이니 돈이 없어서 껄껄이가 그래도 돈을 잘 쓴다고 생각했다. 그래봤자 맥주피처나 과자 등이었는데.

-랑이야 너는 얼굴은 괜찮은데 하체가 안예뻐. 엉덩이가 쳐졌어. 얼굴은 니가 너구리보다 나은데 말이야.

(이게 내가 들은 말이다)

-고양이 너는 얼굴이 별로야. (고양이 면전에서 이런 말을 했다)

-고양이: 오빠 얼굴이나 생각해요.

-껄껄이: 아니 사실 좀 별로자나~


다른 신입생들의 얼평 몸평도 많이 들었다 .

-팬더가 얼굴은 예쁘잖아. 근데 뚱뚱해서 그렇지.

-앵무새는 좀 섹시하게 생긴 스타일.


껄껄이는 과를 넘나들며 학교에서 예쁘다고 소문 난 모든 여자들이 이야기를 했다. 체육과의 기린이랑, 미술과의 청설모가 탑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캥거루 얼굴이 더 낫다. 근데 오리는 키가 더 크고 몸매가 좋다.

그렇게 근 3년을 그런 이를 주변에 두는 동안 나는 껄껄이의 말을 내면화하게 됐나보다. 물론 그 당시엔 의식하지 못했다.


결국 난 나의 몸을 껄껄이의 시각으로 바라보게 됐다. 이것이 가장 화가 나는 지점이다. 내가 껄껄이의 말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나는 그와 친하지 않았고 단 한번도 그를 연애대상으로 생각 한 적이 없으며 그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든 적도 없다. 그에게 어떠한 종류의 남성적 매력을 느낀 적이 없으며 인간적으로도 별로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냥 동기였다. 내 인생에서 중요하기는커녕 졸업 후 데면데면해지는 수많은 사람 중 하나였는데.


그런데 그 말들에 내가 영향받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인정했다.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다. 물론 껄껄이 때문에만 내가 이렇게 된 것은 아니다. 대학생활,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는 수많은 규범을 내면화했다.


CC였던 남자친구는 너의 외모순위가 우리과에서  *위정도라고 말해주었다. 자기 친구가 캠퍼스에서 우리 같이 가는걸 봤는데 여친이 예쁘다고 했다는 말도 전해주었다. 나는 당시 그 말들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고백하건대 기분이 좋았다. 알바를 가면 때때로 나에게 호감을 표현하는 남자도 있었다. 길에서 번호를 따이기도 했다. 소개팅을 하면 종종 애프터를 받았다.


나는 항상 예쁘게 꾸미고 다니려 노력했고 발이 아파도 다리를 조금이라도 날씬해보이려고 굽이 높고 좁은 구두를 신었다. 하체 콤플레스 때문이다. 또 와이어가 있고 뽕이 있는 불편한 브라를 착용하여 작은 가슴을 보완했다. 배가 약간만 나와도 티가 나는 딱붙는 상의를 입어서 마른 상체를 돋보이게 했다.


나는 내가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렇게 엄청 예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부분들을 개선하고자 애썼다. 더 날씬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늘 머릿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 애쓰는 과정에서 나는 건강을 망치고 정신력을 소진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돈을 썼다.


내 남자친구들에겐 악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들에게 개인 차원의 악의가 없다. 남자친구들은 일반적으로 무난하고 착했다. 그러니까 외모평가는 착하고 나쁜 사람이냐를 떠나 남자들에게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얘기다. 전 남자친구가 알려준 신입생 외모 순위, 남자들은 모여서 아무런 의식없이 그런 걸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나에게까지 말해주는 이 순진무구함. 


그런 남자들의 순위매김을 접하면서 외모는 나의 가치척도의 1순위로 급부상했다. 각종 매체와 친구들의 관심사도 큰 영향을 미쳤다. 나의 가치는 외모에서 온다. 1순위라니 다른 순위가 있는것 같지만 거의 절대적이나 다름없었다.


껄껄이가 좀 유난스럽긴 했다. 사실 껄껄이처럼 대놓고 개소리를 하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의 말마따라 뒤에서 다 평가한다고 해도 앞에서 개소리를 안하는 예 의정도는 차리는게 보통아닌가. 자신의 사회적 체면이라는 것이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껄껄이는 그마저 차리지 않았을 뿐이다.


지금도 기억나는 일기가 있다.

-예쁘지 않으면, 날씬하지 않으면 아무리 능력있어도 부럽지 않아.


나는 이런 내용의 일기를 쓰고 있었다. 그때 난 힐러리와 콘디가 나오는 자기계발서를 읽고 있었다. 그들은 미국의 여성 엘리트들이고 엄청나게 똑똑하고 권력도 있는 여성이었다. 그런데 그 책을 읽고 내가 한 행동은 그들을 검색해서 사진을 찾아본 일이다. 그러고는 ' 난 성공하고 싶은것 보다 예뻐지고 싶어.' 라고 적었다.


당시에도 나는 나의 이 솔직한 생각들이 부끄럽고 쪽팔렸다. 그들의 커리어, 능력, 치열함보다 젊고 예쁜 것이 더 가치있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 내가 봐도 참 별로였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당시의 솔직한 마음은 이것이었는데.


이 생각은 슬프다. 예쁘고 날씬하기만 하면 된다고, 그게 최고라고 얼마나 강력하게 내면화 하고 있는 것인지 증명하니까. 나는 외모가 아름다우면 이익이 따른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실이니까. 옳든 그르든을 떠나서 내가 발담그고 있는 세계의 현실이니까. 또 그 현실은 아바타가 아닌 내가 직접 맞닥뜨려야 한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은 점점 확실해진다. 당신이 나이가 들수록 외모라는 가치는 최고의 자리에 있을 수 없다. 인생은 길다. 이제 100세시대라는데 단연 능력과 곁에 있는 사람이 중요하다. 돈. 커리어. 친구. 연인.취미가 훨씬 중요하다. 


예쁘고 날씬하면 좋다. 그렇지만 우리는 다양한 잠재성을 가진 인간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다양하고 복합적인 측면들이 모여 나라는 인간을 만든다. 외모에게만 너무 큰 자리를 주지 말자.


당신도 욕망의 기원을 추적해보길 권한다.. 당신의 경험, 당신이 들은 말들, 당신의 마음에 심어진 어떤 것들을. 글을 써내려가다보면 당신에게 원래부터 있었다고 생각되던 그 욕망이 덜 본질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불의한 점들을 명확하게 발견하게 될 것이다. 불의는 원래 그 자리에 있었지만, 명확하게 인식해야 비로소 당신에게 의미있어진다. 그것이 당신의 건강하지 못한 욕망을 해소할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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