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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엄마 May 10. 2020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그 끝이 미약할지라도.

친구와 함께하는 책 쓰기. 

   친구 S가 이사를 했다. 같은 아파트, 같은 동, 같은 층. 일부러 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일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가까이 이사 오길 바랐지만 옆집은 생각도 못했는데 S가 집을 알아보던 시점에 옆집이 집을 내어 놓으셨단다. 막연히 내가 사는 아파트로 이사를 오려고 했던 친구는 부동산을 통해 집을 보러 왔다가 우리 옆집인 것을 알게 되었다며 카톡으로 한참 깔깔 댔다. 대학 동기였던 친구는 그렇게 이웃사촌이 되었다. 둘 다 처음엔 신기했고, 두 번째 스멀스멀 올라오는 감정은 염려였다. 원색적으로 말하자면, 아이를 키우다 보니 일상생활 속에서 욱하고 올라오는 육아 스트레스로 소리를 지르게 될 텐데 민망한 일이 벌어지진 않을까, 남편과의 부부싸움에 1차로 뒷목 잡고, 사네 마네 지른 소리가 이웃집에 전해져 2차로 창피함을 감수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 



  대학 동기들 중에서도 친하게 지냈던 8명 중의 두 명이었던 S와 나는 별로 공통점이 없었다. 대학 친구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각자의 집안 사정을 속속들이 알게 되는 동네 친구가 아니고, 엄마께 혼나고 발가벗겨 쫓겨나던 시절을 서로 보아 넘기던 어린 시절과는 ‘친구’의 의미가 굉장히 다르다. 성적에 스트레스 받아가며, 똑같은 교복을 입고 10분 만에 매점을 뛰어가 빵 하나 사서 나눠 먹고 다시 교실로 복도를 질주하던 중고등학교 친구와도 색깔이 다르다. 대학 친구란 적당히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보여줄 수 있는, 그래서 말하지 않으면 영원히 알 수 없기도 한 사이. 내가 기억하는 이 친구는 모가 나서 튀지 않았으며 늘 조용했고, 종교생활을 열심히 했던 친구였다. S는 수업시간에도 재미가 없으면 바로 졸곤 했던 나와는 달리 성실하게 늘 또랑또랑 눈을 뜨고 수업에 참여했다. 나는 술 먹고 다니고 단과대 안에서 만나고 연애하고 헤어졌는데 이 친군 대학 다니는 동안 누굴 만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친했던 8명이서 돈을 모아 여행을 가자고 했을 때도 ‘주일이라’는 이유로 빠졌던 두 명 중 한 명이 S였고, 지금 얘기지만 그때는 그런 친구가 잘 이해가 안 됐다. 8명 중에서도 이렇게 두 명, 저렇게 세 명, 또 요렇게 두 명씩 각각 더 친한 사이가 있었는데 S와는 의도한 건 아니지만 대척점에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싫어서가 아니라 나랑 달라서. 

 그랬던 S가 내 마음속에 가깝게 느껴진 것은 학교 밖에서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던 날이었다. 이 녀석들은 어찌 된 게 항상 늦어서 약속 시간을 지켜 나가는 것은 나뿐이었다. 그 날은 결국 다들 많이 늦고 못 나오겠다고 했던지 S와 단 둘이 대학가 앞 햄버거 집에 앉아 있었다. 왜, 어떻게 그런 이야기가 나왔는지 모르겠는데 갑자기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때 알았다. 8명이서 점심을 먹고 단과대 앞 잔디밭에서 수다를 떨 때면 아무 말도 없던 그 순간이, 세상 바른생활하는 것 같은데 가끔씩 보이던 반항기 어린 눈동자가 왜 낯설지 않았는지. 그 시간이 있었다고 해서 갑자기 우리가 안 하던 전화를 주고받으며 단짝이 된 것은 아니지만 그냥 S는 내 마음에 들어왔다. 직장 생활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에서 자주는 아니지만 드문드문 생각이 날 때면 연락하고, 그보다 더 드물게 만나고 그렇게 지내오다가 이제는 휴대폰 들고 연락처 찾아 전화하는 것보다 현관문 열고 나가 벨 누르는 게 더 빠른 옆집으로 살게 되었다. 



  우리가 했던 염려는 염려로만 끝났다고 이야기하면 좋겠지만 S도 나도 이웃사촌이 된 6개월 동안 부부싸움도 했고, 아이를 혼을 내기도 했다. 소리는 화장실을 타고 전해져, ‘옆집 아직 안 자는군.’ 알게 되기도 했고, 남편은 쓰레기를 버리러 가다가 굳은 표정으로 한숨을 쉬며 엘리베이터를 타는 친구 남편을 보며 부부싸움을 짐작한 적도 있다. 꾸물거리는 아이를 쪼아서 11시 미사를 간다는 것이 11시가 넘어서야 겨우 집을 나섰는데 옆집에선 아이가 추운 겨울에 여름 원피스를 입고 가겠다고 떼써 예배시간에 늦게 되었다며 현관문을 열고 있어 한껏 짜증 나고 바짝 긴장해 있던 얼굴 둘이 마주 보고 어처구니없어 웃은 적도 있다. 둘 다 결혼생활이 한 두 해도 아니건만 살림은 서툴러 둘이서 먹을 때면 친구 남편이 해 준 밥을 데워 먹거나, 나가서 사 먹는 것이 대부분인 생활 속에서 우리는 생각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가 발단이 되어 속이 상했던 날, 남편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던 날, 시어른으로 속상했던 날, 직장이 힘들게 하는 날, 나라는 인간의 한계를 느꼈던 날까지. 그냥 쉼 없이 덮치는 일상의 피로함 속에서 맥주와 안주 챙겨서 우리 집으로 와 새벽 몇 시가 되었던 성토 했다. 좋은 책이 있거나 읽고 싶었던 게 서로에게 있으면 “나 좀 보고 줄게” 하고 쓱 가지고 와 읽고 다시 가져다줬다. 살림이 서투른 부인으로 어쩔 수 없이 선 주방이었는데 뜻밖에 재능을 발견한 S의 남편이 해주는 반찬은 일주일에 적어도 두 번은 우리 집으로 전해졌다. 맛집의 짜장면을 안 먹는 건 물론이고 학교 급식에서 짜장 나오면 굶고 오던 아들은 옆집 아저씨가 해주는 자장 떡볶이는 다 먹고 밥까지 비벼 먹었다. 받는 만큼 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살았던 나는 내가 갚아줄 수 있는 것을 넘어서도록 주는 S네의 마음에 미안하기도 하고 버겁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그냥 감사한 마음으로 받고 있다. 


  이렇게 함께 살아감과 동시에 우리가 시작한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책 쓰기” 딸이자 며느리, 엄마로서 살면서 다른 경험 속에서 우리는 비슷한 감정과 깨달음을 얻고 있었다. 이것을 글로 정리해서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은 마음은 가지고 있었는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던 나와 "글은 정말 못쓴다"라고 했던 S였지만 같이 한다면 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며칠을 끙끙 머리를 싸고 고민하며 목차를 짜고 하나씩 써 나가고 있는데 글쓰기란 정말 쉬운 것이 아니어서 다음 주 글을 쓰면서 앞에 쓴 것을 수정하고, 어떤 땐 완전히 지워버리기도 하고, 어떤 땐 끝을 맺지 못한 체 다음 주제로 넘어가며 하나씩 적어나가고 있다. S의 남편은 왜 두 사람이 사서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고, 나의 남편은 내 글이 재미가 없다고 한다. 글이 안 풀리는 어느 날에는 둘 다 자책 모드로 “그간 글 별로라고 흉봤던 작가들에게 다 사과해야 해!”를 외치기도 하고, 쓰다가 감정이 복받치는 날은 취향대로 각자 와인과 맥주를 마시며 다독였다. 둘이서 어딜 가서 전문적으로 배운 것도 아니다 보니 어렵고 헤매는 것이 가관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만나 글을 보여주고, 다음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며 쓰고, 남편들의 애정 담긴 악평에 좌절했다가 그래도 또 “우린 나답게 쓰는 거야. 나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그렇게 쓰자.”라고 또 서로를 격려한다. 누군가에게 보여주며 글을 쓰면 좀 더 압박감을 느끼며 속도를 낼 수 있을까 싶어 다음 브런치를 시작했고 첫 글이 3만 명이 넘게 읽는 것을 보면서 일말의 가능성을 보았다고 하면 김칫국일까? 이 이야기의 끝이 어떻게 끝이 날지는 모른다. 우리가 그린 최상의 시나리오로 가지 않을 경우 독립 출판하고 너 한 권, 나 한 권으로 나눠 가지는 것까지도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그 끝이 미약할지라도, 이 모든 과정이 S와 나에겐 새로운 도전 이기에 의미로 남을 것이다. 나도 작가다, 아니 우리도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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