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o, Santiago
마음먹는 일은 참 쉬웠다. 실행이 어려웠을 뿐이다.
실행을 위한 과정에 [퇴사]는 꼭 필요했다. 함께 일하던 동료들은 나에게 너무나 호의적이었고, 상사들은 나를 온전히 믿고 맡겨주셨던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퇴사를 말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설 연휴가 지나고 2월 13일, 출근하자마자 면담을 요청했다.
나는 남자친구와 만날 때도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쉽게 하지 않는다. 일을 할 때 퇴사를 하겠다는 직원을 잡지 않는다. 관계의 끝을 맺는말은 항상 신중해야 하고 무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간혹 잡아달라는 의미로 가볍게 퇴사를 언급하는 직원들도 있긴 하지만..) 그래서 더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많이 고민했던 것 같다. 나의 "이상한"상태에 대해 그대로 말하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그간 일하면서 가지고 있던 불만들에 대해 털어놓아야 할지, 그것도 아니면 많은 퇴사자들과 같이 건강상의 이유나, 학업, 개인사유와 같은 말로 회피해야 할지. 면담이 시작되었고 담담하게 말했다.
퇴사하겠습니다
퇴사사유는 솔직하지만 답하지 않게, 쉬어갈 타이밍이 필요하다는 점만 간략하게 이야기했다. 그렇게 2주간 4번의 면담을 거쳐 나의 퇴사가 확정되었다.
마음이 참 설레면서 무거웠다. 당장 예정되어 있는 계획을 생각하는 과정은 너무 즐거운데 계획을 모두 끝낸 후 취준생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니 걱정이 앞섰다. 때마침 아주 괜찮은 조건으로 입사제의가 들어왔지만 장기간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러다 고정 지출 비용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머리를 스친다. 처음 산티아고행을 결정했을 때 했던 "안되면 알바라도 하지 뭐"라는 생각은 이미 지워진 지 오래다. 그냥 너무 생각 없이 빠른 결정을 했나 걱정되고 조급할 뿐이었다. 퇴사 일이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이런 조급함은 더 커진다. 지금이라도 티켓을 취소할까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하고, 마음먹은 것 해내야지 하고 다짐한다. 옳은 결정을 한 것인지 확신이 들지 못해 점을 보는 어플로 타로점을 보기도 했다.
결국 나는 내려놓기로 했다.
지금 좋은 조건에 끌려 입사한다고 한들, 내 "이상한" 상태가 나아지지 않는다면 다시 또 퇴사를 고민하게 될 것이 뻔했다. 늘 그랬듯이 길은 분명히 있을 것이고 단단해진 내가 걸어간다면 더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위로했다. 그리고 마음을 다 잡았다.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다 잡아보았다.
다음 주면 일본으로 떠날 것이고, 한국으로 돌아온 후 이틀 뒤 다시 파리행 비행기에 오른다. 여행 1일 차, 2일 차, 3일 차. 엑셀을 빼곡하게 일정으로 채우고 예산을 세우다가 문득 "내려놓으러 가는 길을 왜 일처럼 준비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파리에 입성하고 생장(*Saint Jean Pied de Port : 산티아고 순례길 중 프랑스길의 시작 지점)으로 이동하여 순례길에 적응될 때까지 딱 5일, 5일간의 숙박과 일정만을 짜는 것으로 타협했다. 5일 뒤 육체의 피로나 건강을 이유로 포기하게 될 수도 있고, 다행히 지금껏 헬스장에서 해 온 운동과 등산 경력이 효과를 발휘하여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까지 무리 없이 걷게 될 수 도 있다. 일과 삶보다는 나 스스로를 내려놓으러 떠나는 길이기에 태어나 처음 아무 계획 없이 떠나보기로 했다.
불안하니까 처음 5일만 탄탄하게 준비해 가자. 일정보다는 언어를 더 열심히 준비해서 떠나보자 다짐했다.
그렇게 첫 번째 내려놓기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