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백수가 아니고 여행자입니다

Hello, Santiago

by Hei 헤이

2024년 4월 5일 아침 7시, 드디어 생장 피데포르로 가기 위해 바욘행 기차에 올랐다.

프랑스 국경마을에 위치한 이곳에 가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나는 나름대로 가장 내 몸에 편할 것 같았던 기차를 선택했다.

IMG_5458.HEIC

몽파르나스역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전날 새벽 1시에 도착했기 때문에 이 것이 프랑스에서 먹는 첫 음식이었다. 아침 기온이 쌀쌀한 데다 역이 야외처럼 되어 있어 따듯한 라테 한잔과 초콜릿이 잔뜩 박혀있는 빵은 몸을 데우고 당을 끌어올리는데 최고였다.


프랑스에 도착하면 기분이 많이 설레고 들뜰 줄 알았는데 먼 타국에서도 이상한 상태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아직 날이 밝지 않아서, 기차역 말고는 본 것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생각하며 기차에 올랐다.


한참 달리던 기차는 드디어 바욘에 도착했다.

내리면서 함께 내리는 승객들을 보니 배낭과 바람막이, 등산화를 장착한 승객이 여럿 보인다. 나는 바욘에서 아침 겸 점심 식사를 해결하고, 데카트론에 들러 한 달간 애착 인형처럼 함께하게 될 등산 스틱을 구매하기로 했다. 나는 파리 샤를드골 공항에 자정이 다 되어 도착하는 일정이었기 때문에 빠르게 공항을 벗어나기 위해 모든 짐을 기내 수화물로 가지고 왔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환승하는 과정에 등산 스틱이 기내반입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어 한국에서 사용하던 스틱은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에 현지에서 구매가 필요했다.


바욘 역을 나서자 가장 먼저 든 느낌은 그저 "유럽"이었다. 늘 TV나 책에서 보던 유럽의 모습 그 자체였다. 시내를 조금 구경하고 싶었지만 생장으로 향하는 기차를 타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우선 스틱부터 사러 가기로 했다.


IMG_5493.HEIC
IMG_5494.HEIC


버스 내부는 상당히 길었다. 문이 양쪽으로 여섯 개나 되는 길고도 큰 버스였다.

나는 교통패스를 구매하는 대신 한국에서 가져온 트래블윌렛카드를 리더기로 보이는 곳에 찍고 탑승했다.

생각보다 많이 크진 않았지만 널찍한 데카트론에 도착해 양손에 사용할 등산 스틱을 각 1개씩 총 2개 14유로에 구매했다.


IMG_5502.HEIC
IMG_5504.HEIC
IMG_5505.HEIC
IMG_5509.HEIC


역으로 돌아오는 길은 시간을 체크해 보니 넉넉하기도 했고 바욘 시내를 좀 더 효율적으로 빠르게 둘러보기 위하여 역보다 조금 일찍 내려걸어보기로 했다.

4월 초임에도 불구하고 한 여름과 같이 더운 날씨라 바람막이를 입고 걷는 것이 힘들어 내리자마자 바람막이를 벗어 배낭에 넣었다.


IMG_5521.HEIC
IMG_5522.HEIC


그래도 여행이라고 신기하긴 했는지 여기, 저기 사진을 찍는다. 넓은 강을 보니 숨이 트이는 것이 이제야 드디어 현실을 벗어났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이상한 상태를 벗어나기 위하여 이번 여행을 시작하며 사용하던 핸드폰을 완전히 정지시켜 놓았다. 가족들, 친구들과는 카카오톡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내 숨통을 쥐고 있던 회사와는 완전히 멀어진 느낌이었다.

나는 내 "이상한"상태가 회사에서 완전히 멀어지면 멈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참 놀랍게도 해방감보단 씁쓸함, 앞으로 에 대한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다리 위에 서서 한참을 멍하게 있다 카카오톡을 주고받던 친구에게 "나 이제 정말 백수인가 봐"라고 보내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너는 백수가 아니고 여행자야


내 씁쓸한 마음을 읽었는지 친절한 친구는 나를 보고 여행자라고 불렀다. 직장인에서 백수가 된 것이 아니라 그저 기획자에서 여행자가 되었을 뿐이라고 한다. 기획자였을 당시 사업의 성공을 위한 방향만 생각했다면 이제는 여행을 잘 마무리하기 위한 여정만을 생각하라고 이야기해 준다.

그제야 걱정과 씁쓸함을 두고 꿈꿔왔던 이 여행의 여정을 잘 이끌어가리라 다짐했다.


IMG_5528.HEIC
IMG_5530.HEIC


슬슬 배가 고파 바욘역 바로 앞에 위치한 현지식당에 들렀다.

아기자기한 느낌의 레스토랑이었는데 리소토 위에 스테이크를 얹은 듯한 오늘의 메뉴가 참 맛있었다.


IMG_5538.HEIC


든든히 배를 채우고 다시 기차에 탑승해 한 시간 반을 달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기차가 가득 차있었는데, 외국에서 살고 계신다는 한국분들이 자리를 만들어주셔서 편하게 앉아서 도착할 수 있었다.


IMG_5541.HEIC
IMG_5549.HEIC
IMG_5553.HEIC
IMG_5563.HEIC
IMG_5564.HEIC


블로그에서만 보던 아기자기한 마을이었다. 나는 오늘 이곳에서 인생 첫 알베르게를 경험하게 되었다.

나는 미리 51번 알베르게를 예약하고 갔다. 알베르게는 현지에서도 예약 없이 숙박할 수 있지만 이용객이 많을 경우 자리가 없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내가 갔던 날은 사람이 많아 모든 알베르게가 풀부킹이었고 예약하지 않은 순례자들은 국립알베르게를 이용하거나, 그 마저도 꽉 찬 경우 조금 멀리 떨어진 곳으로 걸어갔다.



생장에 도착해 가장 먼저 한 것은 순례자 사무실에 들러 내가 당분간 이 길을 걸을 순례자임을 알려주고, 순례자들이 사용하는 크레덴셜을 발급받는 일이다. 순례자 사무실은 자원봉사자들이 운영한다고 하는데 모든 순례자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설명해 주시는 모습이 참 좋아 보였다.

순례자 사무실에서 나보다 두 살 어린 동생 해인이를 만났다. 우리는 우연히도 같은 알베르게를 예약했고 오픈채팅을 통해 미리 알아두었던 순례자 성우오빠 또한 같은 알베르게에서 만나 함께 저녁을 먹으며 앞으로의 여정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했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 것 마냥 서로 이름과 나이만을 공유할 뿐 직업도, 취미도, 사는 곳도 묻지 않았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계산 없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었다.


IMG_5566.HEIC


keyword
작가의 이전글3. 퇴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