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진눈깨비가 흩날리던 어느 날
지금 한국의 이 '폭염'은 수많은 분노의 입김이리라. 끝없는 훼손과 각종 공해로 오염된 '자연'이, 그 동안 누르고 참아온 설움과 아픔을 토해내고 있는것이다. 거기에 '누진제'라는 단어만 들어도 발열되는 사람들의 입김도 '폭염'에 가세하고 있지 않은가. 뜨거운 입김에 더위로 가득한 한국이다.
이 더위에는 그저 춥디 추운 겨울이 그립다. 지난 겨울 왠지 눈을 많이 보지 못했다는 생각은, 지금 너무 더운 탓일까. 주로 함박눈을 편애하는 편이지만, 지금으로서는 진눈깨비마저도 간절한 마음이다. 잠시 이 '폭염'에서 도망쳐, 지난 겨울 진눈깨비가 흩날리던 날을 회상한다. 부드러운(?) 운전을 지향하는 나에게는 미끄러운 도로를 만드는 진눈깨비가 탐탁지 않다. 커브길에 진입하기 전 잠시 속도를 줄이고, 진입한 후에는 은근히 속도를 올려야 운전에 효율이 좋다. 감각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속도가 급변하는 것 보다는 부드럽게(적절하게) 줄이거나 높여야 연비도 절약하고 차체에도 좋다(고 생각한다).
한편, 동생과 나는 차 안에서 참 다양하고 많은 대화를 나눈다. 때마침 내리는 진눈깨비는 좋은 이야기거리다. 둘 다 진눈깨비를 싫어하는 것은 같지만, 그에 대한 관점은 전혀 다르다. 나는 참을성없이 함박눈을 기다리지 못하고, 저가 먼저 가겠다며 내려온 진눈깨비가 얄밉다고 말한다. 동생은 웃으며 말한다. 오히려 정말 함박눈이 되고 싶었는데, 진눈깨비가 되어 내려오는 것이 너무 속상할 것이라고. 서로가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깔깔 웃는다.
우리는 종종 서로에게 감탄하곤 한다. 기본적으로 동생에게는 순수함이 있다. 아마도 나에게는 편견을 동반한 직관이 있는 것 같다. 나는 나의 사고방식이 마음에 쏙 들면서도 - 단지 나의 사고라는 이유만큼, 나 자신에게 합리적인 방식이 어디있겠는가 - , 동생의 사고방식이 정말 근사하다고 생각한다.
다름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참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우리는 서로에게 참 대단한 자매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