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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IDI Jun 11. 2024

여섯째 날 | 좋아질 만도 한데

새벽 운동, 무작정 걷기 #06


2024년 6월 10일 월요일



개 피곤. 아침에 걷는 것 말고는 기존의 일상과 달라진 게 없는데... 다시금 저질체력을 실감하게 된다. 그래도 꾸역꾸역 일어난다. 이 눔의 시키는 자는 내내 영양제 먹을 생각만 하는 것인지 오늘도 3시쯤에 일어나 뒷 발을 구르길래 냉큼 안아서 'HUG+팔베개' 형벌을 가해주었다.


꼬순내 폴폴 나는 개님을 폭 끌어안고 다시 잠을 청했다가 눈 떠 보니 4시 50분이었다. 오랜만에 '아 졸리다, 좀만 더 잘까' 하는 기분이 들었다. 앗, 5시 넘기는 거 싫은데! 벌떡 일어나 가장 먼저 강아지 영양제 챙겨주기를 시작으로 빠르게 루틴을 소화하고 출발한다.










젠장. 결국 5시 넘어서 시작했다. 뭐 꼭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무언가를 할 때 이런 자잘한 강박관념이 잘 생긴다. 딱히 필요 없는 부분인데도 규칙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지키지 못하면 은근 자책한다. 


괜스레 발걸음을 재촉해 본다. 하.. 힘이 잘 안 난다. 오늘은 그지 같던 오르막길 구간을 한번 내려가 볼까? 막상 내려가 보니 숨은 안 차서 좋긴 한데 확실히 재미가 없었다. 그렇게 오르막길 힘들다고 할 땐 언제고 막상 내리막길로 가니 재미가 없다는 건 무슨 심보일까?









일단 빠르게 내려가서 아래쪽 공원 입구로 들어갔다. 며칠간 피해 다녔던 운동기구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에서다. 왠지 모를 양심이라고 할까나. 역기 올리기가 가장 빡시다. 딱 10개... 그게 운동이 되겠니? 하는 생각은 열심히 외면한다. 구름다리와 쭉쭉이로 다리를 앞뒤 양옆으로 쭉쭉 찢으니 시원하고 재미있다.


나름의 기구 운동?을 마치고 기다란 나무 계단을 오르면 저절로 거친 숨을 쉬게 된다. 언제나 계단은 힘들다. 이러면서 처음에 집에 돌아갈 때 아파트 계단으로 오를 생각을 했다니. 나 스스로가 어처구니가 없다.






자기 자신을 왜 그렇게 미워하세요?


언젠가 상담 선생님이 스스로를 왜 그리 미워하냐고 질문하신 적이 있다. 나의 마음에게 지나치게 채찍질을 하기 때문이었다. 어떤 것을 하든 어떤 결과가 나오든 무조건 꼬투리를 잡는다고 할까나? 못한 건 못해서 밉고, 잘한 건 더 잘하지 못해서 화나고, 좋은 건 '네가 지금 좋을 때냐'라고 혼내고, 싫은 건 '네가 싫으면 어쩔 거냐'라고 핀잔주고, 슬프면 '지금 슬퍼만 하면 되냐'고 질책하고, 기쁘면 '마냥 기뻐도 되는 거냐'고 일침 한다. 



뭘 어쩌라고. 그래서 좋으라고 싫으라고. 언제부턴가 매 순간순간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힘들어졌다. 새벽 운동만 해도 아침 공기는 제법 상쾌하고 나름대로 해낸다는 성취감도 생기니 이제 좀 좋아질 만도 한데... 여전히 속으로 '귀찮다' '빨리 집에 가고 싶다'계속 되뇐다. 


뭐가 진짜인지 뭐가 내 마음인지 이젠 스스로가 헷갈린다. 나는 무엇이 두려운 걸까? 왜 이 순간을 즐기지 못할까? 나 자신에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못할까? 좋은 건 좋아서 문제, 나쁜 건 나빠서 문제. 특히 '좋은 것'에는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따른다.










오늘도 생각 더미를 잔뜩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삑삑삑- 띠-리링- 번호키를 누르는 소리가 유난히 크고 느리게 느껴진다. '하, 끝났다.' 문을 열고 들어오니 조금 먹먹한 공기와 익숙한 냄새에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낀다.


동생 방에서 자고 있던 강아지가 쪼르르 쫓아 나온다. 마음이 사르르 녹는다. 요 작은 털뭉치 개님만큼 나를 행복하게 해 준 존재가 있던가? ...왠지 슬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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