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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IDI Jun 13. 2024

여덟째 날 | 허황된 바람

새벽 운동, 무작정 걷기 #08


2024년 6월 12일 수요일


오늘도 강아지가 3시 반쯤 일어나려고 드릉드릉하길래 억지로 팔에 가두고 꼭 끌어안는다. 다시 또 조용해지는 순둥흰둥이. 4시 반쯤 일어나 영양제 챙겨주고 가글에 옷 입고 머리 묶기까지 빠르게 실행한다. 항상 나가는 길까지 마중 나오는 이쁜이. 동생 방문이 닫히지 않게 도어 스토퍼를 문지방에 걸쳐두고 칸막이 너머로 쓰담쓰담해주면 방으로 쏙 들어간다.




현관문을 닫고 보니 저 멀리 아파트 사이로 보이는 '일출'이 제법 예뻐서 사진을 찍었다. 은은한 다홍빛. 일출은 참 예쁘고 나는 참 피곤하다. 이런 저질 체력은 운동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훨씬 많이 걸리는가 보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운동기구 코스로 먼저 향한다. 기구 운동이 나름 재미있는 것 같다. 10개를 한 세트로 잡고 점점 한 세트씩 늘리려고 생각 중이다. 처음엔 1세트만 해도 도저히 못하겠다 싶었는데, 정말 투자한 시간만큼 익숙해지는 건지 오늘은 모두 2세트씩 했다. 스무개, 장족의 발전이다!


'흥, 겨우 20개 가지고 무슨' 하는 내 안의 핀잔을 외면하려 힘써 본다. 내 안의 아주 오래되고 자조 섞인 이 비난의 목소리는 아주 끈질긴 편이다. 잡초 같은 생명력이랄까. 아무리 마음 밭을 다시 고르고 골라 길도 내고 보도 블록을 새로 깔아보아도 틈새를 비집고 나와 싹을 틔운다. 퍼지는 건 또 어찌나 멀리 그리고 잘도 퍼지는지. 지금 내 마음은 잡초로 다 뒤덮여 있는 것 같다.







계단을 오르기 전엔 항상 숨을 고르게 된다. 각오가 필요한 느낌. 초반에 한 10개까지는 '나름 괜찮은데?' 싶다가도 금방 숨이 차 오르면서 '역시 계단은 계단이야.. 아우 싫어' 하게 된다. 싫은 것도 해내는 게 인생이라지만 솔직히 나는 여전히 내 삶에 '계단'이 없었으면 좋겠다.









공원 바깥쪽으로 나와 도로변 산책로에 진입하니 제초기를 메고 보도 블록 위에서 작업하시는 분이 보였다. 새벽 5시쯤 벌써 굵은 땀을 흘리며 열심히 풀을 메고 계셨다. 이렇게 보도 블록 사이사이로 올라온 잡초들도 따로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징글징글한 잡초들...) 역시나 어디든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은 없는 거구나.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데에는 생각보다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의 땀이 필요하다. 모든 땀이 다 귀하고 결국 모두에게 필요한 건데.. 존중받지 못하는 땀방울도 많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 같은 대우를 받으면 좋을 텐데... 이런 게 공산주의의 시작인 건가? 너무 유토피아적인? 그래도 이런 허황된 바람이 멈춰지진 않는다.







오늘도 역시 낑낑거리며 오르막길을 오르고 나자 집 생각이 간절하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나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진다. 엘리베이터에서 타임스탬프를 찍고 나서 거울을 보니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게 아주 보기 숭하다. 그래도 오늘도 무사히 새벽 운동을 끝냈다. 참 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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