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2일 토요일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은 찾아왔고 알람이 울리자 벌떡 일어난다. 사실 대략 30분? 전부터 강아지가 낑낑대서 팔배게로 감금하고 있었지만 일부러 시계는 보지 않았다. 알람이 울려야 일어나겠다는 강력한 의지랄까나.
알람이 울리면 나보다 더 기쁜 것은 우리 집 개님이다. 신나게 꼬리를 흔들며 영양제를 먹을 생각에 도도도도- 걸어 나간다. 백내장에 좋다는 영양제를 이렇게 꾸준히 먹이는데도 왜 악화가 된 걸까. 그나마 먹어서 이 정도인 걸까? 속상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어랍쇼? 나와 보니 내가 기대하던 '붉은 일출'은 없고 어두컴컴하다. 그렇게 빠른 시간은 아닌데...? 왠지 실망한 마음으로 엘리베이터를 탄다.
어-어랍쇼? 비 오나? 이거 며칠 전과 아주 흡사한 상황이다. 약한 빗방울이 얼굴에 톡톡 떨어진다. 분명 어젯밤에는 비소식 없었는데... 에이 설마- 또 그때처럼 이러다 안 오는 거 아니야? 싶었지만 일기예보를 다시 확인해 본다.
결국 다시 올라가서 또 우비를 들고 나왔다. 야심 차게 준비해서 나갔지만 비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던 내 판초형 우비. 저번에 그르케 당하고도 또 일기예보 80%에 희망을 걸어본다. 거기다 제법 냄새도 비가 올 것 같은 느낌이다. 보도블록 표면에 빗방울이 부딪히면서 먼지바람이 일어날 때 나는 그 냄새. 매퀘한 이 냄새는 비가 좀 더 내리면 금방 덮이리라.
어-어-어랍쇼? 어째 하늘이 점점 환해지는 게 먹구름이 빠르게 이동하는 것 같다. 뭐야... 설마 또...? 에이 설마, 그래~ 운동기구 하고 나면 비가 올지도 몰라. 하하하하하.
아직 운동기구를 건너뛸 수 있을 만큼 비가 오지 않았기에 자연스레 역기 올리기부터 하러 간다. 그런데 내려가는 길목에 떡하니 고양이 한 마리가 버팅기고 있다. 마치 '너 정말 이쪽으로 올거냥?'하고 쳐다보는 듯하다.
도망가기 전에 잽싸게 사진을 찍는다. 혹시 안 도망가려나 싶었는데 역시나 몇 걸음 더 가자마자 빠르게 피하는 녀석. 같이 놀던 갈색 고양이는 어디다 두고 너 혼자 있니?
오늘도 역시 운동기구를 3세트씩 끝내고 다시 걷기 시작한다. 걷다 보니 군데군데 바닥이 젖은 곳이 보인다. 먹구름이 이쪽에만 아주 살짝 머물렀다가 가버린 모양이다.
젠장. 결국 오늘도 비를 만나지 못했다. 빗소리는 커녕 사부작을 넘어서 서걱서걱 거리는 우비 소리만 귓가에 더 크게 들릴 뿐이다. 이걸 벗어서 손에 들고 가는 게 더 번잡스러울 것 같아 그냥 입고 가기로 한다. 그리고 혹시 또 모르잖아? 갑자기 소나기라도....
도로변으로 나와 걷다 보니 운동복을 입은 한 젊은 커플이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다. 아마도 더 큰 공원 쪽으로 나가려는 듯하다. 비 한 방울 안 떨어지는데 이 커다란 우비를 입고 걷는 내 모습이 상당히 눈에 띌 것 같다. 왠지 창피한 기분으로 빠르게 지나쳐 가는데 귓가에 웃음소리와 함께 말 한마디가 날아와 콕 박힌다.
"에바다 진짜~!"
에바? 오바라는거지 지금? 에이, 그게 나한테 한 소린지 어떻게 알어?! 아닐 수도 있잖아...? 사실 그냥 저들끼리 얘기하던 중에 그냥 나온 말일 수도 있는데, 확인할 길이 없으니 상당히 찜찜하다. 길바닥에서 말이야! 어?! 그르케 시끄럽게 다 들리게 말이야! 어?! (꼰대소환) 쳇! 나 들으라고 한 거면 진짜 무례한 인간이고, 들릴 줄 모르고 한 거면 진짜 무심한 인간이다. 만약 나한테 한 소리가 아니면 그냥 내가 과민한 꼰대인 것...
귓가에 계속 재생되는 것 같은 까르륵 깔깔대는 웃음소리를 떨쳐버리기 위해서 더욱 빠르게 걸음을 재촉한다. 그래도 오늘은 일기예보에 속은 것이 나뿐만은 아니었다. 지난번엔 우산 1개 코빼기도 안 보였는데, 오늘은 한 3명 정도 손에 우산을 들고 가는 것을 보았다. (나만 당할 수 없다는 마인드인 건가.... 이런 못된.... 하하하)
나 참, 이렇게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써서야 원.
나는 비를 정말정말 좋아한다. 타이밍을 놓쳐서 수면제를 먹지 못하는 날이면 유튜브에서 빗소리를 찾아서 틀어놓고 잠을 청한다. 심지어 비는 보는 것도 참 좋다. 촉촉하니 예쁘잖아.. 먼지가 싹 씻겨 내려가는 느낌도 좋고.
그래서 비 소식에 이리도 마음이 들떴나 보다. 오랜만에 내리는 비 속에서 서 있을 생각에... 하여간 이 놈의 설레발은... 됐고 오늘 늦게라도 비나 세차게 박박박 내렸으면 좋겠다. 박박박- (+ 집에 돌아와 씻고 이 글의 초안?을 쓰고 나서 침대에 한 숨 누워 있었더니 정말 비가 내렸다. 뒤늦게라도 내린 비가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