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이디김 Jul 12. 2024

P묻은J, 타고난 혹은 만들어진 나

ENTP와 ISTJ, 자기 확신과 통제집착

퇴직하고 250일이 넘었다. 이 시간은 나를 되돌아보게 했다. 가족을 돌보고 이해하고. 다 안다고 생각한 것도 다시 보는 시간.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 좋아하는 것을 찾기. 최근에는 딸아이가 듣는 노래가 더 많고 그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많다. 네가 좋아하는 것과 내가 좋아하는 것을 구별해 내기 어렵다.


언제부터인가 나에 대해서 쓰기가 더 어려웠다. 너에 대해 가족에 대해 쓰는 것이 더 쉬웠다. 나와 하는 대화가 적었던 나다. 


ENTP와 ISTJ

올해 들어 MBTI를 여러 번했다. 자녀와 하는 대화법 강좌에서, 집단상담에서, 자녀를 기르기 위해 자신을 알아야 한다며 MBTI를 활용했다. 공짜가 아닌, 찾아서 받는 혜택. 돈주고 사면 한 세트에 만원 꼴이라는데. 학교에서 진행하는 강좌나 가족센터 상담도 내가 낸 세금이 들어간거라네. 


아무튼, 마음챙김을 십년넘게 알려오신 상담사가 과거말고 현재인 '시제'를 맞추라는 말이 테스트에 도움이 됐다. 그리고 남눈에 비칠 나 말고 지금 나.


일을 하면서 후천적으로 내가 만든 나와, 본연의 나를 발견했다. 직장에서 모나지 않게 밥값하려고 세상의 소금, ISTJ로 살았던 나는 내가 만든 나였다. 거꾸로 생각했는데 말이다. 주어진 상황에 적응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이번 주, 내 MBTI는 E 보통 N 보통 T 분명 P 약간, 유심히 살피면 ISTJ 친척이다. 그래프로 그리면 서로 멀지 않다. 완전히 분명한 E도 아니오 N도 아니다. P도 약간. J엄마 밑에서 길러져 정리된 상태를 지향하지만 혼자 살았다면 뭔 상관? 했을 P다.


일을 그만두니 나는 오히려 사람을 찾아다니고 에너지를 밖에서 얻는다. 계획을 세워도 허술하거나 바뀌는 것을 즐기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그다지 언짢지 않다. 100% P 남편과 결혼하게 된 것 역시, 의외성과 즉흥성을 즐겼기 때문이지 않을까. 천상 TJ인 줄 알았는데. 가족상담사에 따르면 P 묻은 J라고 한다.


처음 E가 나왔을 때 말도 안 돼, 내가 테스트를 잘못했군 했다. 일을 할 때는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가족을 돌보는 데에 일주일이 바빠서 본연의 내 욕구를 숨겨놓았나 보다. 결혼 전에 직장인밴드나 동호회를 찾고 새 친구 만나는 것을 즐겼는데, 내가 나를 잊고 살았다.


그럼에도 딸이 나를 극 T로 본 것은 테스트도 증명했다. 어릴때는 극 F였는거 같은데.. 후천적으로 극T를 만든 주범인 엄마로서 딸을 위해 더 노력하고 공감을 더 많이 노력하겠습니다.



내 안의 너, 불편한 나와 마주하기


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 불편하다면, 그 속에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이 있다고. 수영을 싫어하는 아이를 매주 설득해서 보낸다던 그 엄마가 내 머릿속에 한 번씩 나타나는 이유를 깨달았다. 안쓰럽고 떠올리면 불편했다. 그 속에서 내 맘에 안 드는 내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상황을 통제하고 싶어 하는 집착과 내 생각이 옳다며 자기 확신이 강했던 나를 거울로 마주한 듯한 느낌.  



프로돌봄러 생존스킬 : 자기 확신과 통제집착


날 때부터 어디 자기 확신이 강하고 통제 혹은 질서에 집착했을까? 전혀. 자유분방한 막내딸로 우수한 두 언니들 아래 대기만성형이었 그 둘을 제치고 관심을 끌려다 보니 잘 웃어제꼈을 테고 울었을 거라는 게 상담사의 해석.


어릴 적 나와 지금 나는 완전히 다른 인간이다. 시 쓰기와 벚꽃 잎을 좋아하던 감성충만 소녀는 가정을 지키고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쓰다 보니 온몸에 가득 찬 감정눈물웃음은 숨겨놓고 냉혈한 아니 극 T로 다시 태어났다.


가정을 지키는 것에 사명감이 필수요, 지키기 위해서 희생되는 것도 많다. 희생이라고 말하기 싫은 이유그렇게 지켜낸 즐거운 우리 집에 딸과 아들이 입꼬리를 올리게 하고 큰소리로 웃게 하고 살게 하니까. 둘은 나를 살게 하는 생명수다.



장마, 비


장마가 오기 직전 흐린 날씨는 참 아름답다. 물기를 머금은 공기와 마냥 회색빛은 아닌 하늘, 어제 날씨가 딱 그랬다. 곧이어 비 내리는 날씨를 반갑게 맞이할 수 있었다. 물을 좋아해서 그런가 비도 좋다. 밝은 날 찾아오는 해도 좋다. 이번 장마는 길고 또 길 것이지만 마음껏 즐길 거다. 내 마음에 불안과 기쁨처럼 세차게 비내린 다음 떠오른 해를 맞이한다.


이전 06화 지금 우리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