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입의 꿈] 엿보기

은하수

by 하이디 준

[... 지난 12일부터 수색 중인 경찰에 따르면 현재 폭우와 산사태로 인해 작업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한편, A군을 포함한 실종된 대학생 4명은 Z대학의 언론 동아리로 지역 신문 인턴 과정에 발탁돼 흑요산 실종 사건들을 조사하고 있던 중으로 전해지며…]



“아유, 말도 마. 아는 동네 사람은 아무도 거짝엔 안 들어간다니께. 낮에도 시커멓지라이. 괜히 저주받은 검댕산이 아니여 그거시. 거가 사람 잡아먹는 산으론 유명하재. 근디 꼭 그 콧구녕이 벌름벌름하믄서 눈꺼정 번들거리는 사람덜이 줄로줄로 와설랑 날 잡아잡숴하믄서 들어가부럼.”



“아.. 지금까지 산에서 실종된 케이스는 모두 7건 정도 됩니다. 근데 이게 10여년에 걸쳐서 일어난 것들이고 대부분은 정황이 불분명해요. 실종자들 간에 특별한 연관성도 없고요. 산으로 들어간 경로도 다른 경우가 있고, 심지어 산으로 간건지 확실하지 않은 케이스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목격 증언은 의외로 일관성이 있어요. 전부 흑요산 내의 특정 구역으로 간 후엔 증발하듯이 사라져버렸다고 말하죠.”



“이름이 지어진 이유는 명확합니다. 광산 때문이죠. 당시엔 사유지였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말하는 구역은 바로 그 지역을 소유했던 가문의 저택이 있던 곳입니다. 번성하던 시절엔 거의 대지주급이었습니다. 부를 바탕으로 공장에 휴양지며 요양병원까지 세웠으니까요. 여길 다 먹여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세대가 지나면서 피가 탁해진다고 할까, 친족들 간의 지저분한 싸움은 예정된 수순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곰팡이가 피듯이 가문 전체가 순식간에 썩어 문드러져서 사라졌습니다. 단순 사기며 상해부터 시작해서 자살, 살인, 방화… 최근의 실종 사건들 정도는 애들 장난처럼 보일… 아, 잠시만요, 절대 이번 사건을 폄하하려던 건… 방금껀 지워주시겠어요?”



“내요? 내는 바깥서 와가 잘 모르는데? 그냥 건너건너 쏙닥거리기는 거게 곱게 미친 연이 하나 있다 카든가 우짜든가. 어? 아 죽어뿟다 캤든가? 그카믄 뭐 얼라들이 논다꼬 하는 소린갑네. 죽은기 뭣한다꼬 돌아댕기겠노.”



[...”여깁니다. 원래 여기가 요양병원이 있던 자리거든요?”

“아, 그러네요… 사진이랑 맞네요. 풍경이 참… 고즈넉하다고 해야할지.. 스산하다고 해야할지..”

“그러니까 바로 여기서 사실은 그 수상한 치료법이 시작된겁니다.”

“아… 그렇게 들으니까 정말 오싹하네요. 당시에 탈출한 사람들도 있었다고…?”

“맞습니다. 하지만 이후에 소재를 파악할 수 없거나 정신 상태가 온전치 않아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없는 케이스도 있었다고 하고요…”...]



<우리는 어쩌면 드디어 이른바 ‘흑요석 살인마’의 정체와 맞닥뜨릴지도 모른다. 십수년간 오로지 희끄무레한 그림자처럼 아른거리기만 했던 원한에 찬 유령에게 세상의 환한 빛을 맛보여주는 거다!>



{...치지직... 테스팅… 원, 투, 쓰리. 아, 아. 응 녹음 잘 되고~ 근데 진짜 ‘흑요석 살인마’라고 부를 거야? 좀 유치하지 않아? // 야, 이런 건 딱 박히는 네이밍이 있어줘야 스토리가 사는 거라고. // 근데 지금 시대에 산발머리하고 흰 옷 입은 여자 귀신은 촌스러워도 너무 촌스럽잖아. // 그러게, 왜 더 그럴싸한 모양으로 나타나주지 않는 걸까. // 에이, 그래도 그게 제일 무섭지. 야, 생각해봐, 집안 쫄딱 망하고 식구들 죄다 미쳐 죽고 없는데 혼자 남은 마지막 손녀. 그럼 제정신이겠냐? // 어떤 데는 막, 그… 몸에 흑요석 파편이 박혀있다고… // 진짜? 와, 완전 소름끼쳐. // 돌아다닐 때 그 박힌 게 벽이랑 바닥에 긁히면서 끼리릭, 끼리릭 한대… // 야, 잠깐만… 여기 아니야? // 어, 뭐야.. 야야 이거다 이거! // 그치 그치? 여기가 입구네, 와아… 이거 이렇게 가려져 있냐? // 못 찾을만 하네~ 아씨. 야 막 찬 바람 나오는 거 같애. // 아 그거 좀 놓고 다들 장비 꺼내. 이거 들어내야 구멍 넉넉히 나온다고. // 치지직… 딸각.}




‘잠이 들었다가 문득 묘한 소리를 듣고 깼다. 끼리릭, 끼리릭. 뭔가 긁히는 소리. 나무나 동물, 오래된 집이 낼 법한 소리와는 다른, 머리 밑을 할퀴는 것 같은 소리. 잠시 숨이 안 쉬어지는 기분이었다. 다시 악몽에 빠진 것 같았다. 분명 문은 잠궜는데. 그만해. 열지마. 여긴 우리 집이야. 이제 당신들이 원하는 것 같은 건 없다고. 어제 그제만 해도 웃으며 선물을 나르던 사람들이. 빈손으로 돌아갈 걸 알게 되자 악귀처럼 변하는 얼굴들이. 다정히 내 머릴 쓰다듬던 손들이. 내 어미의 머리채를 쥐어뜯는 갈퀴가 되어 문틈 사이에 낀 지네처럼 바르작거리던 손들이.’



<... 씨발 유리가 아니라 도끼야…>



{...(숨이 틀어막힌 듯한 비명소리, 고함소리, 발버둥치는 듯한 쿵쿵대는 소리)... (‘깡’하며 뭔가 바닥에 울리며 무겁게 내려치는 소리)......있잖아. 매번 말하는데… 나 잠을 잘 못 자. 원래도 꿈자리가 좀 사나운 편이거든? 근데… 니네는 왜 맨날 남의 집에 와서, 그것도 야밤에 기어들어와서, 누구 보라고 광대짓 하는 거야? 나… 너네가 오기 전까지는 되게 조용히 잘 살았거든. 아무도 안 해쳤고 아무도 안 죽였어. 누굴 만나야 뭐가 생기지. 근데 너네는 항상… 사람을 쿡쿡 찔러서 병신 만든 다음에, 얘 보래요, 얘는 병신이래요하고 떠들고 다니더라고. 그러곤 내가 움찔거리면, 저거 미쳐서 저런다고, 부모며 가족이며 다 그 모양이니 멀쩡할리가 있겠냐고. 그래도 상관 없었어. 안 보고 안 들으면 그만이지. 근데 너네는… 그걸로 모자라서 남의 집에까지 비집고 들어와서, 날파리처럼 알을 까더라? 누가 어떻게 죽었네, 돈이 얼마나 있었네… 도무지 시끄럽고 성가셔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내쫓아도 어느 틈에 들어와있고, 막으면 뚫고 오고. 그러면 내가 어떡해. 박멸할 생각이 들지 않겠어? 미국에선 아직 무단침입하면 쏴죽여도 정당방위인데도 있다던데. 너네는 소문 좋아하니까, 나도 거기 맞춰서 따라줄게. (숨막히는 신음, 고함소리. 비명 소리를 끊어버리는 ‘쿵’ 내려치는 소리)... 아, 굳이 왜 토막을 내는지 또 궁금해하더라. 너네 수박 껍질 안 버려봤어? 이 큰 걸 어떻게 통으로 버릴거야. 매번 밤에 오니까 난 잠옷만 몇 개째 버리는지 모르겠네. 시끄러운 거 둘째치고 진짜 청소거리 더 만드는 게 제일 짜증나는 거 알지? 하아… (몇 번 더 쿵쿵 내리치는 소리. ‘스윽스윽’ 질질 끄는 소리.) 아… 나 진짜.. 다 치운 줄 알았는데. 한 놈 더 남았네. 야, 거기 너. 훔쳐보니까 좋아? 한 자 한 자 뜯어보면 재밌냐고. 뭘 눈을 돌려. 니 얘기하고 있잖아…}


너 말이야…


너.

매거진의 이전글[혼돈의 꿈] 시나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