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金
끝없이 망각과 유희의 대로를 거닐다가, 이 정도 쯤이면 결국 나조차도 여태 애지중지 했던 언어, 글, 나라는 존재의 경계를 모두 잃어버렸겠지 하고 문득 유리창에 반사된 흐릿한 이미지를 돌아보는 날이면, 애처롭고 당혹스럽고 충격적이게도 온갖 말, 말, 말은 여전히 내게 매달려있고, 쏟아져나오고, 질질 새서 부끄러운 흔적을 남기고 있다.
남들은 그토록 쉽게 뱉고 던지고 심지어 주변 모든 이들 혹은 그 이상에게 처덕처덕 묻히고 바르는 말인데도. 예전엔 적어도 그럴 용기와 의지가 있어서 참 좋겠다는, 부럽다는 표현으로 비꼴 정도의 정신력이나마 있었다면, 이제는 그저 그들의 광기가 무서워서, 끔찍해서 그냥 귀를 닫고, 눈을 감고, 내 입을 틀어막는 것으로 족한다. 어쨌거나, 나의 작디작은 일상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 굳게 믿고서. 오로지 평화, 안정. 그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축복 같은 상태를 영원히 유지할거라 고집스레, 집착에 가깝도록, 다짐하면서.
하지만 사실 나는 끊임없이 찾는다. 내가 듣기를 피한 것을 듣고 있을 사람, 나와 같은 참담한 마음으로 그 모든 것을 똑바로 쳐다볼 사람. 나와는 달리 적절한 크기의 목소리로 말을 할 줄 아는 사람. 결국 내가 하지 못하는 것들을 대신해 줄, 대리만족을 줄 누군가. 나는 그런 식으로 늘, 내 갈증과 필요를 따돌리곤 했다. 그게 오래 가지 못한다는 걸 알아도 단지 그게 조금 덜 무섭고, 덜 번거롭고, 덜 버거우니까.
그럼에도 나처럼 비루한 영혼들이 늘 그렇듯, 어김없이 외로움에 젖어들면, 설마 정말 이 세상에 이런 존재가 나 하나뿐은 아닐거라고 절박해져서는, 그렇게 꼭 끌어안은 미친 듯이 작은 일상을 팔이 아프니 놓아볼까 싶어지고,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그 누군가를 찾으러 나서고 싶어지고, 빛나는 그들을 마침내 마주했을 때 들려주고픈 나의 이야기라는 망상으로 가득차서 키득대며 춤이라도 추고 싶어지고 만다.
나를 가두고 묶어두는 건 세상도 타인도 아닌 나 자신.
나라는 간수, 감시인, 비평가를 떨쳐버리기란 아직도 힘든 일.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이렇게 화장실 옆, 드레스룸의 경대 앞, 바구니 위에 앉아
도돌이표가 마침표 같은 거울의 언어로 거울을 마주하고
종이에 끄적대는 것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