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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 Dec 14. 2019

타이페이에서 만난 New Order

'새로운 질서’와 '진정한 믿음'



20세기에 영상으로 만난

'새로운 질서’와 '진정한 믿음'을

21세기의 현실로 마주하기까지






텔레비전 속 아나운서: 피츠버그의 새로운 시장은 바로 마빈 디킨스!

(#거리엔 오직 레인보우 깃발만이 영롱한 빛을 띠고 나머지는 모두 블랙아웃된다.)


펍에서 함께 텔레비전을 보던 많은 이들이 함성을 지른다.


린지: 렛츠 댄스!

데비: 인 더 스트릿!

(#영국 밴드 New order의 명곡 True Faith가 흘러나온다.)






 지금까지 내 인생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노래 한 곡을 뽑으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이 노래를 꼽는다. New order의 True Faith. 물론 이 곡은 영국 시골 출신 밴드에게 미국에서의 상업적 성공을 선사해주었기에 너무나 유명한 곡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유명하기 때문에 이 곡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지금으로부터 약 20여 년 전 미국의 한 프라이빗 티브이 채널에서 방영했던 드라마의 엔딩곡으로 이 노래를 만났다. 아마 이때 이 곡을 만나지 않았다면 평생 이 짜릿한 느낌을 모른 채 살아왔을 거라고 확신한다.


 

 사실 이 드라마에서 마빈 디킨스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직 중요한 것은 극 중 에서 이들의 이야기가 일어나는 미국 동부의 한 작은 도시 피츠버그의 시내에 레인보우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며 남녀노소를 비롯하여 게이, 레즈비언, 스트레잇 그 누구 할 것 없이 모두가 함께 한데 어울려, 흡사 2002년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광화문에서 일어났던 그 모습이 함께 오버랩되는, 그러나 아직 우리에게는 갈 길이 너무나도 먼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서두에 짤막하게 기술한 대사가 나오는 Queer As Folk라는 미국 드라마의 시즌 3을 장식하는 아주 임팩트 있는 연출씬은 듣자마자 뇌리에 박히는 인상깊은 사운드의 노래가 함께 공존하면서, 내게 잊을 수 없는 또 다른 세계를 선사하였다.



 곧 2020년을 맞는 우리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특별한 '승리'가 약 20여 년 전 미국의 한 작은 타운에서는 일어났다. 나는 이 작품을 십 대 때, 그것도 한창 감수성이 폭발할 시기에 봤는데 그때 내가 느꼈던 충격은 사과를 떨어뜨리고 인류에게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준 뉴턴에 못지않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게이라니? 레즈비언이라니? 같은 동성이 결혼을 하고, 설사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파트너로서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으며, 스트레잇 커플과 동등한 권리를 가지면서 아이의 입양도 가능한 나라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극에서 아주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피츠버그 최고의 게이 '브라이언'은 소꿉친구이자 인생에 있어 가장 소중한 존재인 마이클에게 이런 대사를 한다.



헤이 마이키, 너 이거 알고 있니? 게이 커플도 다른 스트레잇 커플들과 똑같이 사랑을 해서 결혼할 수 있지만, 또한 아주 당연하게 서로가 너무 싫어져 이혼할 수도 있다는 사실 말이야.



 가톨릭을 비롯하여 동성애자는 지옥에 떨어진다는 종교적 신념을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기독교 신자들이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곳에서, 호모 포비아적 성향을 가진 후보자를 몰아내고 정치적 승리를 얻어내며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를 브라운관을 통해 보여준 이 드라마는 당시 미국 사회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고 있다. 게이와 레즈비언의 실제적인 삶과 (특히 성생활의 사실적인 묘사에 관해서 논란이 많았다.) 더불어 그들도 너와 다르지 않다는, 니 옆집에도 게이 레즈비언 커플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편견과 선입견에 맞서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호응을 줬다는 점에 나 역시 큰 동감을 한다. 물론 성적 취향이나 정치적 취향은 강요할 수도, 이해해달라고 구걸할 수도 없기에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근거는 내게 없지만, 적어도 '에이즈가 동성애자이기에 100퍼센트 걸리는 병이 아니며, 후천적인 선택으로 동성애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그들은 우리와 다르다는 것.



 나는 이 드라마를 통해서 선입견과 편견에 맞서는 '항체'를 생성했을 뿐만 아니라, 나에게 있어 아킬레스 건이었던 '나의 엄마'를 이해하게 된 캐릭터와도 만나게 되는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 캐릭터가 바로 극 중 소심하고 자신감 없는 게이 청년 '마이클'의 미혼모 출신 스트레잇 엄마 '데비'이다. 데비는 드라마 퀸이었던 남자와 하룻밤으로 마이클을 낳게 되었는데 자신의 아들이 게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러워하며 무한으로 아들을 신뢰하고 적극적으로 지지하면서 마치 현실에는 없을 것만 엄마의 '표본'을 보여준다. 데비는 게이 타운의 존패를 건 피츠버그의 시장을 뽑는 선거에서 승리하고 유명한 대사를 남긴다.



Mourn the losses because they are many.

but celebrate the victories because they are few.

패배는 슬퍼해야 해, 흔한 일이니까.

그렇지만 승리는 축하해야 한단다. 왜냐면 너무 드무니까.




  드라마는 게이와 레즈비언의 이야기다. 물론 스트레잇도 존재한다. 드라마 퀸도 존재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존재한다. 내가  드라마를 추억하고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지금 내가 21세기의 타이페이에 살면서 이런 자유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짜증  때도 아주 아주 많다. 거리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도 많고, 쓰레기는 분리수거도 제대로 하지 않는  같고, 바퀴벌레는 귀뚜라미 만한 데다가 날기까지 하며, 음식에서는  그렇게  이상한 걸레 냄새가 나는 것이며, 요즘 같은 날씨는 추적추적 음습해서(믿기지 않겠지만) 전기장판 없이는 겨울을 보낼 수가 없는 것인지. 그런데 그런  나라에는 자유가 있다. 새로운 질서와 진정한 믿음이 공존하는 진짜 자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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