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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 Apr 04. 2021

반짝반짝 빛나던 미술 교과서

한국 공고육의 문제를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



 지금의 내가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동양 미술사에 대한 열정을 보면 으레 어렸을 때부터 미술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다거나 혹은 원래부터 큰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하기 십상인데 사실 나의 학창 시절 미술 수업이라 함은 너무나 지루하고 극적으로 재미없고 도저히 외우려야 외워질 수 없는 번쩍이는 금동 불상의 이름이 전부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단적인 예로 체육 교과서만큼이나 깨끗하고 빳빳했던 미술 교과서를 들 수 있는데, 국영수 중심의 한국 공고육의 문제를 너무나 여실하게 보여줬던 나름의 빼박 증거였던 셈이다.

 


이제와 돌이켜 생각해보면 체육, 미술, 음악과 같은 과목의 교과서를 발행하기 위해 돈을 쓰기보다 좀 더 효율적인 다른 곳에 투자를 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더더군다나 이 교과서들 전부 다 컬러였다. 어쨌든 그런 지루하고 고루하고 시간 때우기 용의 교과 과정들을 거치면서 미술과 나와의 접점은 점점 더 멀어져만 갔고 그렇게 귀하디 귀한 안타까운 시간이 흐르면서, 최근에서야 나는 어렸을 때의 주변 환경이나 교육 과정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고, 그들이 미래의 선택지를 고르는 데 있어 얼마나 많은 기회를 놓칠 수 있는지 또한 깨닫게 되었다.



 이렇게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나의 무지몽매했던 인문학적 소양에 대해 결정적으로 고민하게 된 계기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대학 시절 감행했던 유럽 배낭여행이었다. 당시 돈과 체력은 없었지만 새로운 세계에 대한 열정만큼은 정말 남들 뒤지지 않다고 자부했던 내가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여행하면서 느꼈던 그 충격이란. 아마 원근법을 처음 도입해서 그림을 그렸던 르네상스 시대의 작가들을 바라보는 종교인들과 같지 않았을까 싶다가 아니 그보다 더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열 살도 채 안되어 보이는 대여섯 명의 꼬마들이 선생님과 함께 우피치 미술관의 레오나르도의 작품 앞에 앉아 설명을 듣는 그 모습을 본 순간, 난 결정적으로 무언가 신의 계시 같은 것을 받았던 것 같다. 아 난 왜 저들과 같은 나이에 이런 멋진 작품을 보지 못했나, 도대체 우리나라 역사 교육은 무엇인가부터 엄청나게 근원적이고 철학적인 고민들을 이때부터 했던 것 같다.


 나는 최소한의 인문학적 교양과 나름 객관적이고 우매하지 않은 역사관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란 자부심이 있었는데, 이 유럽 배낭여행을 통해서 이런 자부심이 산산조각 나는 경험을 했다. 다행이었던 점은 이런 경험이 나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지는 않았다는 것이고,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알고 싶게 하고 더 공부하고 싶다는 욕망에 불을 지피게 했다는 점이다. 여행을 하면서도 그냥 단순히 먹고 즐기는 여정보다는 내가 가는 도시의 기원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문화에 대해 미리 알아보고 그 지역의 박물관을 꼭 방문하는 습관도 이 여행을 계기로 가지게 되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타이페이에는 '국립 대만 고궁 박물관'이 있는데 중국 베이징의 고궁 박물관과는 질적으로 아주 큰 차이가 있다. 중국 국공 내전에서 패한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는 중국 역사 속 아주 희귀한 각종 진귀한 보물과 유물들을 배에 싣고 바다를 건너 대만에 다다르게 되는데,  그 배의 숫자가 얼마나 많았는지 바닷물이 보이지 않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런 엄청난 유물들을 소유하고 있는 대만 정부의 자부심은 말로 하지 않아도 가히 상상 가능할 정도이니 오늘날 아무리 중국이 대만을 압박하고 중국에 편입하려 기를 쓰고 공작을 펼친다고 해도 결코 대만 정부가 쉽게 무너질 리가 없다는 것은 대만 국민들도 아마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유토피아는 없다. 도망을 쳐도 결국 내가 변하지 않으면 이 세상 지구 끝까지 다다른다 하여도 아무 것도 변하지 않으며 종국에는 반드시 나와 마주 보아야만 한다. 설사 그 문제를 100% 해결할 순 없어도 적어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는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관계도 역사 문제도 가치관도 결국은 평생 내가 마주 보아야 할 숙제이자 근원적인 물음이라고 생각한다. 빳빳했던 미술 교과서를 돌이켜 보며 참 많은 생각이 드는 4월 초여름의 타이페이의 풍경, 오늘도 열심히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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