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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 May 09. 2021

해길랍과 대만의 성개방성

대만 영화가 가진 특별한 재주



대만에서 지내면서 캐나다에서 느꼈던 동양과 서양의 큰 문화 차이나 컬처 쇼크를 경험하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지만, 확실히 같은 동양권이기에  오히려 큼직하게 다가오는 놀라움이나 너와 나의 다름을 인정하는 묵직함이 조금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난 그중에서도 다른 아시아권과는 조금 다른 대만이 가진 성개방성에 대한 인식을 요즘 들어 다시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 대만을 방문했었던 2010년 여름, '유성화원'과 '버블티'의 나라 정도로 인식을 하고 도착을 했던 이곳에서 나는 굉장히 임팩트 있는 경험을 많이 하였는데 제주도 정도겠거니 하고 생각했던 이들 국토 사이즈가 생각보다 더 광대했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의식이나 생각의 방식이 한국이나 일본 사람들이 하는 그것과 아주 큰 차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난 국제워크캠프라는 당시 스펙 좀 쌓으려는 대학생들에게 꽤 인기가 있었던 국제 자원봉사 활동의 한 일원으로 대만의 남부 핀동현 산디먼이라는 깊고 깊은 산속에서 약 2주간 파견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대만 고산족의 하나인 '루카이족'과 만나게 되었고 스페인, 일본, 프랑스, 한국 등지에서 온 국제 자원봉사자들과 대만 현지 로컬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협동하여 태풍 피해를 입은 산디먼 일대의 복구 작업을 돕고 외부와 소통이 많지 않은 원주민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면서 자국의 문화를 공유하는 굉장히 의미 있는 활동을 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난 이 워크캠프를 통해 대만의 음악이나 영화는 물론 그들의 역사, 문화까지 아주 깊숙이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는 계기를 가지게 되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성개방성이라는 주제는 하나의 또 다른 신세계로 내가 처음으로 만났던 대만 영화 역시 이와 관련된 ‘남색대문’이라는 작품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대만 영화하면 10명 중 9명은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떠올리지만 내게 대만 영화하면 1순위로 바로 이 ‘남색대문’이 떠오른다. 영화의 주인공인 ‘멍커로우’는 한 여성 친구를 짝사랑하는 고뇌 많은 10대 소녀인데 우리에게도 친숙한 대만 배우인 계륜미가 아주 훌륭하게 표현하였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성’이라는 성적 아이덴티티밖에 몰랐던 그 시절의 내게 이 영화가 던진 그 충격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고 이 영화가 만들어진 것이 2000년대 초반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내가 학창 시절 느낀 그 문화적 쇼크가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도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 짐작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요즘 특히 한국에서 개봉으로 대만 영화 마니아들의 시선을 잡고 있는 영화가 한 편이 있다. ‘상견니’라는 드라마로 한국 팬들에게 눈도장을 콱 찍은 허광한이 열연을 펼친 ‘해길랍’. 포스터만 보고 대만 사람들이 잘 구현해내는 첫사랑 영화의 연장선 정도겠거니 하고 생각했던 이 영화에 역대급 대반전이 있는데, 인도에서 제3의 성으로 불리는 '히지라'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낸 영화였다. 성소수자에 대해 무지하지 않았던 나조차도 이 제3의 성을 가진 특별한 사람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대만 영화는 이렇게 우리가 잘 접하지 못하거나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문제를 생각보다 아주 잘 풀어내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난 그런 내 인생에 아주 많은 영향을 끼친 대만에서의 자원봉사활동을 마치자마자 바로 캐나다 토론토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나게 되었고 그곳에서 더욱 많은 성적 소수자들을 만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내가 잠시 살았던 처치 스트릿은 북미 최대의 게이 타운 중 한 곳이었고 그곳 커뮤니티에서 만난 많은 이들이 바로 성 소수자들이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내가 토론토에서 약 1년간 몸 담았던 스타벅스에서 함께 일했던 가장 친한 슈퍼바이저가 중국계 캐나다인이었는데 그 역시 게이였다. 나 자신은 스트레잇, 즉 이성애자였지만 신기하게도 주변엔 항상 성적 소수자 친구들이 적지 않게 있었다. 그런 내가 대만에서 생활하게 된 것도 사실 크게 이상하진 않다고 생각한다.



타이페이에서 지금 내가 일하는 직장에도 성적 소수자인 동료가 있다.  그와 함께 이야기를   전혀 어색하거나 불편하지가 않다. 오히려 그를 이상하게 대하는 동료가 있다거나 편견을 가진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거의 없다. 같은 아시아이지만 성적 소수자들을 대하는 태도가 이다지도 다를  있다니, 적어도 나는 내가 겪었던 경험과 내가 만났던 사람들로 인해 뿌리 깊게 박혀있던 편견을 아주 조금씩 조금씩 뽑아낼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굉장히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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