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이디 Jan 16. 2022

Coming of age

어른들의 장래희망




얼마되지 않은 옛날 옛적에 난 일본의 노자와 히사시라는 작가가 쓴 소설 '연애시대'와 한국에서 각색된 동명의 드라마에 푹 빠져 지냈던 적이 있다. 왜 그렇게 빠져 지냈는지 그땐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그 소설이 주는 디테일한 슬픔의 감정과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상실의 색깔을 잘 보여줘서였던 것 같다. 그 와중에 정확한 문장이나 출처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까지도 회고하고 되내이는 아주 인상적인 문장이 하나 있다.




'연애는 어른들의 장래희망 같은 것이다.'


'더 이상 내일을 기대하지 않기에 어른들은 연애를 한다.'




그땐 이해하지 못했던 이 말의 뜻이 지금은 가슴에 사무치게 와닿는 것을 보면 나도 이젠 어른이 된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또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하하하)




 나는 평소에 관심 가는 분야의 스펙트럼이 아주 광대하게 넓은 편인데   그런지 굳이 이유를 찾고 싶진 않다. 그냥   호기심이 많구나  정도로 스스로를 관찰하고 을뿐. 그리고  이걸 특별히 숨기지 않는다.  그걸 좋아해? 그게  관심이 ? 라고 직접적으로 묻는 사람들은 없었지만 아마 상대방이 생각하기에 '  이상해' ' 이런 거에 관심을 가져?' 라고 판단을 하고 나에게 다가오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어렸을  그런 상대방의 반응 하나하나를  신경썼는데 이젠 그러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금의 나는 나와 다른 생각이나 스스로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관심사에 감놔라 배놔라 터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관심사라는 것이 사람을 죽이는 일이거나 상처주는 일이 아닌 이상 각자가 가진 경험, 트라우마 혹은 누적된 삶의 인풋이 제각각  르기도  것이고. 전에  곰곰이 스스로의 이런 성향에 대해 고민해 본적이 있는데 딱히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 그때 그러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여기에 관심이 가는구나.' 하고 그때 그때 깨닫는 편이라고 결론을 지었다.




 정신적으로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나지만 그래도 신체적으로는 이제 어른이 된 나의 앞에 놓여진 장래희망 혹은 내일을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노자와 히사시가 말하고 싶었던 어른들의 상실감과 연애는 지금의 나에게도 해당하는 사항일까?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는 내가 좋아하는 책과 드라마와 음악이 있다. 자유롭게 사유하고 얼마든지 사고할 수 있는 정서적인 풍요로움이 있다. 아직도 나와 다른 문화와 역사, 언어를 가진 나라에 관심이 가고 또 가보고 싶고 또 생활해보고 싶은 욕망이 있다. 남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느리더라도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책임을 지는 온전한 내가 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너무나 불완전하며 많은 것에 실수투성이이다. 모르는 것이 셀 수없이 많고 멍청하게 굴때도 있다. 그렇기에 평생 배우는 마음으로 겸손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소비를 줄여가면서 심플한 인생을 살고 싶다. 물론 좋아하는 것과 관심이 가는 것엔 열정적으로 덕질도 할 것이다. 그렇기에 반드시 연애를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가치있고 내일이 기대되는 나만의 삶을 가꾸어 가려 한다. (사실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기에 스스로 뿌듯하기도 하다.)








이전 07화 수영장 탈의실에서 만난 할머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