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결정합시다.
일본인 동료의 한마디가 가슴을 쳤다.
'와따시타치노 타이완(우리들의 타이완)'
2020년 1월 11일 토요일, 시각은 오전 8시 반, 보통 토요일 오전 이 시간대의 타이페이 거리는 한산하다 못해 인구 260만의 대도시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황량한 풍경을 조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만 18세 이상의 대만 국적의 성인이라면 누구나 행사할 수 있는 총통 선거의 투표날 아침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타이페이에 왔던 4년 전에도 총통 선거가 있었다. 국민당의 마잉주 총통이 물러나고 민진당 진보 노선의 여성 총통 차이잉원이 탄생하는 순간을(천수이볜 이후 첫 민진당 출신의 총통이고 첫 여성 총통이다.), 타이페이 장기 거주의 첫 시발점이 시작된 그 해 나도 함께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까지 내가 타이페이에 있으리라곤 상상조차 못 했지만.
사실 나는 나 스스로도 뼛속 깊이 대한민국 국민이라 믿어 의심치 않고 *루로우판 보다 비빔밥이 더 좋으며, 설사 이 나라에 오래 살게 된다고 해도 국적을 바꿀 생각은 전혀 없다. 대만에서 재외국민 투표가 시작되고 첫 투표가 있던 날 버선발로 *대표부에 띄어갔던 여자가 바로 나다. 그렇기에 자동적으로 선거권이 없는, 그저 경제적 이익만을 위해 장기로 거주하고 있는 병의 입장에선 투표가 그리 크게 와 닿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좀 유별난 회사와 그 회사에서 만난 특별한 동료들을 두고 있던 터라, 최근까지 투표에 관련된 많은 생각과 그에 관련된 이슈를 날것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투표 전날 회사 내부 메신저에서는 회사 세미나 실에서 함께 개표 결과를 보자고, 도저히 집에서는 결과를 볼 수가 없을 것 같다는 동료의 피드도 있었고 다른 한 동료의 인스타 스토리의 문구엔 ‘투표하자!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정하자!’라는 텍스트도 보였다. 무엇보다, 투표 전날 밤 퇴근을 하는데 우연히 같은 방향의 지하철을 함께 기다리게 된 또 다른 동료 한 명이 내게 이렇게 말을 했다. ‘FB나 IG를 못하게 되는 건 싫으니까.’ 내가 설마 그럴 일이 있을까 하는 반문을 하니 고개를 설레 설레 흔들며 정말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고, 중국을 보라고, 우리는 그런 삶을 원하지 않는다는 걱정스러운 그의 표정도 보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대만의 총통 선거에 큰 관심이 있는 모양인지 네이버 메인에도 커다랗게 기사가 뜨는 것을 보고 정말 세월이 많이 흐르긴 흘렀다는 것을 실감했다. 내가 처음 대만에 자원봉사를 하러 가겠다는 말에 ‘대만? 거기 중국 아니야? 중국에 왜 가?’라는 말을 들었던 것과 지금을 비교해보자면, 세상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믿게 된다. 홍대 거리에 가면 대만의 먹거리가 이젠 익숙하게 보이고 티브이를 틀면 대만의 각종 명소가 나온다. 대한민국 사람들도 대만이 더 이상 중국의 일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겼다.
창이 커다란 집 근처 스타벅스에 앉아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눈에, 아이의 손을 잡고 밝게 웃고 있는 두 젊은 부부의 표정이 비친다. 내가 언제까지 이 곳에 있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이 곳에 있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대만인들의 희망이 곧 밝은 미래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타이완, 찌아요우!
*루로우판: 滷肉飯,대만식 돼지고기 덮밥, 대만 로컬 음식 중 아주 대표적인 음식.
*대표부: 한국과 대만은 수교 국가가 아니기에 '대사관'이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