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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 Jul 24. 2021

탱글촉촉 보들보들 꼬소롬한 규카츠




‘소고기 먹으러 갈래?’ 듣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말이다. 옛 선조들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던 ‘라면 먹고 갈래?’의 계보를 잇는 로도 손색이 없다. 오죽하면 ‘호의는 돼지고기까지, 이유 없는 소고기는 없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아, 물론 지금 내게 핑크빛 설렘이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냥 소고기가 먹고 싶었을 뿐.. 허허허


헛헛한 마음을 채우려 간만에 소를 맛보기로 한다. 민족의 소를 구우러 갈 재력은 없으니 소박한 규카츠로 이 마음을 달래야겠다.



새하얗게 아삭한 샐러드에 새콤쌉쌀 발그레한 생강절임, 초록초록 알싸한 고추냉이를 거느리고 위풍당당 규카츠가 등장한다.



살짝 익혀 나온 규카츠의 단면은 예쁜 연분홍빛이다. 자고로 신선하고 좋은 소고기는 살포시 육즙을 가둘 정도로 겉면만 살짝 익혀주는 게 좋다. 오버쿡 된 소고기는 육즙을 많이 잃어버리고 퍽퍽해져 특유의 은혜로운 맛을 잃어버린다. 바싹 익힌 소고기는 하나의 신성모독이다.


경건하게 입에 넣은 규카츠 한 점은 탱글촉촉 보들보들하게 살살 녹아 없어진다. 얇은 튀김옷은 약간의 고소함으로 풍미를 더할 뿐 소고기의 맛을 크게 해치지 않는다. 살짝 익은 겉면이 보드랍게 씹히다가 연분홍빛 육질이 탱글탱글 입속에서 재미나게 노닌다. 거기에 살결 하나하나 가득 머금은 육즙이 촉촉하게 톡 퍼지면서 최고의 맛을 완성 시킨다. 와, 이거 너무 좋은데? 정성스레 소를 빚어 만드신 조물주에게 슬쩍 감사를 올리고 싶은 맛이다.



모든 기름진 음식에 어울리는 녀석이 있다. 특유의 향이 매력적인 고추냉이가 그 주인공이다. 규카츠와 함께 어우러지는 알싸한 매력은 느끼함을 싸악 감싸주면서 기름진 풍미에 약간의 산뜻함을 남겨준다. 옆 동네 섬나라에서 건너온 식재료 중 최고는 고추냉이가 아닐까? 어느 육류에나 어울리는 팔방미인 같은 녀석이다.



규카츠를 주문하면 작은 화로가 함께 준비된다. 지으신 그대로의 본연의 맛과 식감을 좋아하는 나지만 화로 안에서 일렁이는 불을 보고 있자니 문득 익힌 규카츠의 맛이 궁금해진다. 아, 이런 호기심은 또 못 참지. 조글조글 은은한 불에 한 점을 슬쩍 익혀본다.



신성모독까지는 선을 넘지 않게, 살짝 불경스러울 정도로만 규카츠를 익혀보았다. 오 그런데 마블링의 서포트에 힘입은 육질이어서 그런지 그 맛이 크게 불경하진 않았다. 다만 탱글탱글한 식감이 없어지고 스르륵 부드러운 맛이 배가되었다. 소고기 본연의 풍미도 살짝 약해지고 그 빈자리를 슴슴하게 고소한 구워진 소기름의 향이 채운다. 흠흠 이것도 그리 나쁘진 않군.



별로라 생각했던 맛에서 의외로 좋은 점을 느끼고 나니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어진다. 평소에 언제 어디서 만나든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생강절임을 신선한 규카츠에 올려보기로 한다. 오오 조심스레 맛본 새로운 조합도 은근히 괜찮다. 고추냉이에 비해 알싸한 맛은 적지만 살짝 쌉쌀하고 새콤한 맛이 오묘한 깔끔함을 전해준다. 흠 이건 가끔씩 느끼함을 리셋해주기 딱 좋은 조합이다.



뜻밖에 맘에 드는 맛들에 그만 신이 나버렸다. 도전정신이 끊이지 않는다. 작은 화로에 구운 규카츠에도 생강을 올려본다. 흠, 얘도 나쁘진 않지만 굳이 두 번 시도할 조합은 아닌 것 같다. 고기를 구우면서 본연의 풍미가 약해져서 그런 걸까? 생강의 향이 보다 강하게 느껴진다. 들떴던 기분이 살포시 차분해지고, 저돌적이던 도전정신도 다소곳이 얌전해졌다.



마지막 한 입은 처음 한 조각처럼 있는 그대로의 맛을 즐겨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처음과는 조금 다르다. 다른 친구들보다 큼직 도톰하게 썰린 마지막 꽁지 부분이다. 처음 맛봤던 탱글촉촉 보들보들한 그 맛과 풍미가 한입 가득 압축되어 있다. 특히나 탱글탱글 톡톡 터지는 식감이 훨씬 풍부하게 느껴진다. 역시 고기는 두툼해야 그 맛이 배가된다. 다른 조각들도 전부 이 크기로 썰어줬으면 어땠을까 싶지만, 그러면 내 앞에 규카츠들이 훨씬 빨리 없어졌겠지? 그럼 그거대로 섭섭했을 것 같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이 남아있다. 방금 먹은 게 오늘 식사의 마지막 한 조각이었다. 젓가락을 내려놓고 일어나려니 매우 매우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다. 이제 충분하다는, 메뉴판은 거들떠도 보지 말고 일어나라는 지갑의 외침이 들리기 때문이다. 작고 귀여운 월급이 떠오르는 서글픈 월렛 스톱이다.     


열심히 살아야겠다. 맛있는 음식을 위해서라도, 그걸 함께 즐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일단은 오늘의 만족과 행복을 기억하며 또 다른 어떤 날들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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