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도쿄 라이프

아카사카 2

by 하임

우리 회사에서 걸어서 7분 거리에 롯폰기 미드타운이 있습니다.

흔히 롯폰기는 '나이트 라이프의 명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인근에 외국 대사관이 많고 외국인 거주자 비율이 높아,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어울리는 이국적인 분위기가 특징입니다. 특히 롯폰기 사거리를 중심으로 수많은 BAR가 밀집해 있어, 금요일 밤이면 보통 사람의 두 배는 족히 될 법한 검은 양복, 검은 피부색의 거구 가드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토요일 아침, 롯폰기 돈키호테로 걸어가면 작취미성(作醉未醒)의 청춘들과도 마주칩니다. 아주 가끔은 부럽습니다.

관광객의 롯폰기는 보통 롯폰기 힐스를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56층에는 도쿄 감성의 아이콘인 도쿄 타워를 가장 아름답게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습니다. 특히 해 지고 난 6시 전후에 56층 레스토랑에서 차 한 잔 시키고 바라보는 도쿄 타워의 야경은 압권입니다. 57층 모리 미술관에서는 늘 흥미로운 기획 전시가 열립니다. 입구 광장에는 루이즈 부르주아의 거대한 거미 조형물 '마망'이 서 있지만, 여러 번 가야 거미 모양이 눈에 들어올 정도로 아주 큰 조각이라 처음 한두 번 지나갈 때는 인지하지 않고 지나갈 확률이 높습니다. 롯폰기 힐스 아래에는 TV 아사히가 자리 잡고 있는데, 1층 로비에 사람 크기의 짱구 캐릭터가 전시되어 있어서 짱구의 추억이 있는 분이면 사진 하나 찍어도 보고 또 봐도 재미있습니다.

불과 2~3년 전, 관광객으로 도쿄를 찾을 때 나 역시 롯폰기에 자주 머물렀습니다. 렘(Remm)이나 소테츠(Sotetsu) 같은 호텔은 캐리어를 침대에 올려야만 펼칠 수 있는 11㎡의 좁은 방이었지만, 역과 가깝고 1박에 1만 5천 엔 내외의 좋은 가성비를 자랑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근 그 호텔들은 3만 엔 가까이 가격이 훌쩍 뛰어 버렸습니다. 그때의 나에게 롯폰기는 그저 북적이고 정신없지만 밤에 돌아다녀도 볼 게 있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지금 내가 점심을 먹거나 산책을 위해 향하는 롯폰기 미드타운은 온전히 ‘현지인들의 공간’입니다. 회사에서 미드타운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히노키초 공원이 있습니다. 무심코 지나치면 울창한 나무에 가려져 있는지조차 알 수 없을 만큼, 공원은 도심의 소음 속에서 살포시 몸을 숨기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시루히토조시루(知る人ぞ知る, 아는 사람만 아는)' 공간입니다. 가끔 공원 건물의 툇마루에 걸터앉아 연못을 멍하니 바라보곤 합니다. 세상 번뇌에서 벗어날 수는 없어도, 그 번뇌의 흐름을 잠시 멈추게 하는 단절의 시간을 선물 받습니다.

히노키초 공원을 지나 미드타운으로 가려면 야외 엘리베이터를 타고 유리 육교를 건너야 합니다. 이 길은 미드타운 2층으로 이어지는데, 육교 한가운데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44층짜리 주상복합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건축가 쿠마 켄고가 외관을 디자인한 것으로 유명한 <파크 코트 아카사카 히노키초 더 타워>. 20평이 채 안 되는 2LDK(방2 거실1 주방 1)가 6억 4천만 엔을 호가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실현 가능성 제로의 욕심이 불쑥 솟아납니다.

그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벚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공원 잔디밭 위로 유리로 된 1층짜리 미술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21_21 디자인 사이트>가 보입니다. 이세이 미야케의 'A-POC(A Piece of Cloth/하나의 천)' 철학에서 영감을 받아, 거대한 철판 하나를 접어 내린 듯한 지붕이 인상적입니다. 대부분의 방문객이 1,600엔의 입장료가 아까워 외관만 보고 돌아서지만, 이곳의 진가는 내부에 있습니다. 지하 1층과 2층을 잇는 계단과 유리벽은 그 자체로 작품이어서, 누구든 '인생샷' 하나쯤은 쉽게 건질 수 있습니다.

미드타운 안으로 들어서면 나의 일상이 펼쳐집니다. 지하 1층에는 직원들과 가끔 찾는 1,640엔짜리 점심 세트가 맛있는 <더 카운터 롯폰기>와 멸치 육수 베이스의 탱탱한 면발이 일품인 <이부키 우동>이 있습니다. 1층 가든 테라스에는 점심 세트가 2,000엔을 넘지만 만족도가 높은 이탈리안 레스토랑 <나폴레>도 있지요. 이 가게들은 주변 직장인들로 늘 만석입니다. 2층에는 커다란 조각 케이크로 유명한 <하브스(HARBS)>가 있는데, 유독 나이 지긋한 동네 주민들이 많이 찾는 곳입니다.

이렇게 롯폰기에는 두 개의 얼굴이 공존합니다. 스쳐 가는 이들에게는 화려함과 유흥을 보여주는 얼굴, 그리고 살아가는 이들에게만 비로소 속살을 드러내는 일상의 얼굴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처럼, 도시와의 관계 역시 피상적인 인상만으로는 결코 그 깊이를 알 수 없나 봅니다. 이제 나에게 롯폰기는 더 이상 시끄러운 밤의 소음이 아닌, 히노키초 공원 연못의 키라키라(キラキラ, 반짝반짝) 잔물결로 기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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