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사카 6
1. 히로시마 오코노미야키
도쿄 여행을 가면 무엇을 먹어야 할까요?
작년에 비자를 받고 도쿄에 일하러 오기 전에도, 저는 여행이나 출장으로 도쿄를 자주 왔었습니다. 비자 신청 때문에 2010년 이후 도쿄에 온 횟수를 세어보니 서른 번 가까이 되었더라고요. 그런데도 '도쿄' 하면 마땅히 떠오르는 대표 음식이 없었습니다.
1990년대 중반, 신입사원 시절에 출장 왔다가 아카사카의 '잇텐바리(一点張)'라는 라멘 집을 처음 알게 되었어요. 현금만 받는 곳인데 그때도 이미 유명해서 밤 12시에도 줄을 서서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가게 앞을 지나다 보면 점심, 저녁 가릴 것 없이 외국인들이 길게 줄 선 모습을 보게 되니, 여전히 SNS 맛집임은 틀림없어요. 하지만 이 집은 제 입에는 많이 짭니다. 그래서 저는 이미 '이치란 라멘'으로 갈아탔거든요.
가끔 주말에는 하라주쿠 교차로의 유명 가게, '이치란 라멘'에 들릅니다. 가게 앞에서는 늘 직원들이 손님 줄을 정리해야 할 정도로 붐비죠. 이곳에서 라멘에 밥을 추가해 '브런치'를 먹고, 근처 빔즈(Beams), 슈프림(Supreme), 풀카운트(Full Count), 단톤(Danton), 챔피온(Champion) 등 제가 애정 하는 패션 가게들을 '패트롤'하는 것이 소소한 재미 중 하나예요. 그런데 알고 보면 하라주쿠의 명물처럼 느껴지는 이치란 라멘의 고향은 후쿠오카 하카타입니다.
사실 라멘이나 스시는 '전국구' 음식이지만, 오코노미야키 하면 오사카, 우나기(장어)하면 나고야, 징기스칸(양고기 구이) 하면 삿포로, 모츠나베(곱창전골) 하면 후쿠오카처럼, 역사가 깊은 도시들은 '척'하면 '척' 떠오르는 음식이 있습니다. 유독 도쿄만 그렇다 할 것이 없네요.
물론 몬자야키(もんじゃ焼き)가 도쿄의 명물이라고는 합니다. 도심은 아니지만, 츠키시마역 7번 출구로 나가면 약 4~500미터 남짓한 거리에 70~80개의 몬자야키 가게가 마주 보며 늘어선 '몬자 스트리트'가 있긴 합니다. 몬자야키는 지갑 얇은 직장인이나 젊은이들이 모여 저렴하게 한잔하기에 더없이 좋은 음식이지만, 화려한 도시 도쿄를 대표하기엔 조금 부족해 보입니다.
어쩌면 도쿄는 서울의 강남과 비슷한지도 몰라요. 전국의 맛있는 것이 모두 모여 최고 수준으로 경쟁하는 곳이기에, 무엇 하나가 유독 두드러진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은 아닐까요?
올해 2월, 히로시마로 당일 신칸센 출장을 갔었습니다. 히로시마 지역 방송사와 상호 협력 사업을 협의하기 위한 자리였죠. 아침 8시 신칸센을 타고 3시간을 달려 11시에 도착했어요. 현지 방송사에서 1시간 정도 회의를 마치고, 인근 중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식사와 함께 미팅을 이어 나갔습니다.
화기애애하게 대화가 오가던 중, 우연히 오코노미야키 이야기가 나왔어요. 저는 별생각 없이 "아, 그거 오사카 음식이잖아요?" 하고 웃으며 물었습니다.
순간, 저를 접대하던 히로시마 측 네 분의 표정이 '쎄'하게 굳어지더니 말이 뚝 끊겼어요.
다행히 동석했던 다섯 분 중 상대 측 대표님은 도쿄 분이라 별말씀이 없으셨지만, 이 비즈니스를 준비하던 저희 회사 직원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죠.
이윽고 그분들이 천천히 입을 열어, 오사카의 '간사이풍'과 '히로시마풍' 오코노미야키의 차이점을 설명해 주셨어요. 간사이풍은 밀가루 반죽에 잘게 썬 양배추와 계란, 기타 재료를 모두 '섞어서' 팬케이크처럼 굽는 방식이라고요.
이에 비해 히로시마풍은 재료를 섞지 않고, 얇게 편 밀가루 반죽 위에 양배추와 재료를 '층층이 쌓아' 숨을 죽인 뒤 통째로 뒤집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백미는 따로 옆에서 구운 소바나 우동면 위에, 얇게 부친 계란을 올리고, 그 위에 야채와 반죽을 '합체'시키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어요.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신칸센 안에서, 같이 갔던 직원이 말하더라고요. "히로시마 사람들은 오코노미야키 부심(자부심)이 정말 대단해서, 오사카를 원조라고 말했다간 관계 바로 망가집니다." 아니, 이건 미리 말해줬어야죠...
제가 보기엔 '겨우 섞어 굽기와 쌓아 굽기' 정도의 차이로밖에 안 보이는데도 말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지역에 따라 '원조'라는 것과 '유니크(unique)'하다는 것에 엄청난 가치를 둔다는 것을 새삼 느꼈어요. 일본의 문화를 이해하려면 역시 좀 더 살아봐야 할 것 같았습니다.
이날은 출장을 준비한 직원이 오후 2시 반 신칸센으로 복귀 일정을 짜는 바람에, 히로시마에 도착한 지 3시간 반 만에 중식당 런치 코스만 먹고 돌아와야 했어요. 돌아오는 길에 직원에게 타박을 좀 했죠. 왕복 6시간이나 걸렸는데, 이왕 온 거 평화의 공원이라도 잠시 둘러보거나, 그토록 자부심이 대단하다는 히로시마 오코노미야키라도 한 판 먹어봤으면 좋지 않았겠냐고요.
그렇게 반년이 지났지만, 저는 아직도 히로시마 오코노미야키를 먹어보지 못했습니다.
흠... 인생은 기회를 줄 때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 같습니다.
2. 야마네야 (山ね家)
도쿄를 '여행'할 때는 대표 음식이 아니더라도 라멘이나 우동은 기본이고, 다음으로 회전 스시를 공략하게 됩니다. 도쿄 시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게 '스시로' 같은 체인점이죠. 언뜻 저렴해 보이지만, 원하는 단품을 제대로 주문해 먹기 시작하면 1인당 5,000엔이 훌쩍 넘기 십상입니다.
그 외에도 1인당 7,000엔에서 12,000엔 사이를 각오해야 하는 스키야키, 야키니쿠, 샤브샤브, 고급 스시, 히츠마부시, 우나기 등은 "그래도 여행 왔으니 입이라도 대어 봐야 한다"는 '여행용 음식'들입니다.
(외국에서 밥을 먹다 보면 당황스럽진 않아도 조금씩 불편한 점들이 있죠. 뉴욕 출장 때는 식당에서 팁을 줘야 하는 게 너무 불편했고, 파리에서는 종업원이 올 때까지 눈도 마주치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는 에티켓이 불편했습니다. 도쿄에서는 특별히 불편한 건 없지만, 메뉴판 가격이 대부분 '세전(税抜)'이라 나중에 소비세 10%를 더 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음식이 전반적으로 짜고 날씨가 고온 다습해 나마 비루(생맥주)나 하이볼, 탄산음료 등을 기본으로 시키다 보니 예상보다 식대가 30~40%는 더 나온다는 게 현실입니다.)
그런데 여행이 아니라, 주 5일 아카사카로 출근하는 '직장인'은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까요?
직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는 경우도 있지만, 혼자 점심을 해결해야 하는 '혼밥'의 순간도 왕왕 찾아옵니다. 이땐 참 당황스럽죠. 작년 여름 아카사카로 처음 출근했을 때, 저는 혼밥 기회가 오면 주로 롯폰기 미드타운으로 갔습니다.
꿈에 그리던 '여유로운 외국 생활'에 대한 로망이랄까요. 거리의 테이블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며 멍하니 사람들을 바라보는, 파리에서 경험했던 한낮의 여유를 즐기고 싶어 롯폰기까지 가곤 했습니다. '히라타 목장(平田牧場)'에 가서 돈카츠도 먹고, 새로 생긴 한식당 '수라간(水剌間)'에서 2,000엔짜리 육개장면도 먹어보고, 프랜차이즈 샐러드 바에서 풀떼기로 한 끼를 때우기도 했죠.
하지만 롯폰기 혼밥 투어는 히노키초 공원을 지나 미드타운에 들어서는 그 10분간만 여유로울 뿐, 지하 푸드코트에 들어서면 여느 식당가처럼 정신없고 산만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롯폰기 미드타운이 슬슬 지겨워질 때쯤, 점심 혼밥 구역을 아카사카역 근처로 옮겼습니다. 처음 시도한 곳은 '간소아부라도(元祖油堂) 아카사카점'이라는 아부라소바(油そば) 집이었습니다. 카운터석으로만 이루어진 가게는, 키오스크에서 식권을 뽑고 줄을 서서 자리가 나면 앉는 시스템입니다. 5분 내로 주문한 라멘이 나오고, 줄 서는 시간을 빼면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먹고 나오기까지 15분이면 충분합니다. 한 끼를 '즐긴다'기보다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마치 주유소 같은 식당이었죠.
이곳 말고도 맞은편 베트남 식당이나 대만 우육면 식당들도 창가석이나 카운터석이 있어 혼밥하기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점심 메뉴들을 쭉 나열하다 보니, 여기가 도쿄인지 서울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습니다. 가게 이름만 지우면, 서울 여의도 IFC몰이나 영등포 타임스퀘어 식당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메뉴들이니까요. 모든 게 다 있는 대신, 특색은 없는. 딱 '오나지(同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던 중, 회사 뒤편 언덕길에서 소박한 일본 밥집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야마네야(山ね家)'라는 작은 식당입니다. 영화 <카모메 식당>이 살짝 떠오르는 곳입니다. 그릇 하나하나를 정성껏 다루고, 밥을 푸고는 꼭 저울에 재어 정량을 맞추는 곳. 밥과 국, 메인 요리 하나에 작은 반찬 두 가지. 화려하지도 자극적이지도 않은, 그야말로 소박한 '집밥' 점심을 파는 식당입니다. 메인 디쉬로는 고등어조림, 고등어구이, 가라아게(닭튀김), 그리고 카키후라이(カキフライ, 굴 튀김) 등이 있습니다.
입구 키오스크에서 주문을 하고 있으면, 밝은 얼굴의 오카미(女将, 여주인)가 하이톤으로 반겨줍니다. "이츠모 아리가토 고자이마스!" (늘 감사합니다!) 어느새 저는 이 집의 '조렌(常連, 단골)'상이 되어 있습니다.
가끔 이것저것 다 귀찮아서 간단히 햄버거로 때울까 싶다가도, 그것도 좀 걸어가야 해서 귀찮고, 편의점에서 빵이나 하나로 해결할까 하다가도... '몸 건강도 그렇고, 마음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억지로라도 들러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할 때면, '야마네야'가 사무실 창밖으로 보입니다.
'그래, 오늘은 저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