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도쿄 라이프

비기닝 2

by 하임

1. 첫눈에 반한 집, 그 명(明)과 암(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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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쿠다의 집은 스미다 강변의 공원을 끼고 있다. 주상 건물 밖으로 나가 1분 안에 강변 산책로에 도달한다. 처음 볼 때부터 벚꽃과 산책로, 스미다 강이 이어지는 정말 환상적인 입지였다. 게다가 주오대교, 쓰쿠다대교 같은 여러 다리들이 밤이면 저마다의 색깔을 드러내고, 강 위로 건물의 야경과 다리의 야경, 그리고 낮은 구름들이 어우러져 있으면 이게 정말 주택지인지 괌이나 동남아의 휴양지인지, 일상이 주는 압박감에서 순간 해방이 된다. 밤 산책을 할 때면 아사쿠사와 오다이바를 오가는 관광용 유람선에서 흥겹게 노는 사람들 노랫소리가 들릴 정도로 강과 산책로는 가깝다. 누가 봐도 참 이상적인 입지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좀 살아보면 현실은 다르다. 벚꽃길과 강을 보려고 잡은 입지가 서향이기 때문이다. 7월에는 오후 늦게까지 두 방과 거실에 해가 어두워질 때까지 남아 있다. 7, 8월에 37~38도 하는 날씨에는 커튼을 단단히 치고 에어컨을 쉬는 시간 없이 오후 내내 돌려야 한다. 게다가 벚꽃이 만개한 4월 중순 주말에는 집 바로 앞 공원에 하나미와 사케를 즐기는 사람들 피크닉 매트가 촘촘히 깔려 있고, 밤늦게까지 그 수다를 들어야만 한다. 다행히 일본어 수다를 이해할 정도의 독해 실력은 아니라서 대화 주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천만다행이다.

또 아침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바지선 같은 작업배들 소음 때문에, 선선한 가을에도 문을 열어놓고 잤다가는 아침 6시 전후에 눈을 뜰 수밖에 없다. 한겨울을 제외하면 평일이나 주말 할 것 없이 유람선 소음에 멍할 정도고, 토요일, 일요일 낮에는 떼 지어 다니는 제트스키 동호회 소음도 만만찮다. 그냥 창문을 닫고 바라보면 돌고래 떼들이 몰려다니는 것처럼 이쁘기도 한데, 창문을 열게 되면 ‘노이즈 캔슬링’이 해제되면서 현실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예전에 지하철 철로가 여럿 지나가는 곳 근처에 산 적이 있다. 서울 어느 곳이라도 대중교통으로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였다. 집 실내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던, 정말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라 토요일 밤에는 문을 열어 놓고 밤새 담배 피우며 컴퓨터 게임을 했던 기억도 나는 집이었다. 지상철 여럿과 KTX 등도 지나가는 곳이라 새벽 2시 넘어까지 규칙적인 소음에 골이 흔들리기도 했다.

세상일이 참,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고, 반대로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는 것 같다. 이 균형감이 있기에 다들 힘든 오늘 하루도 버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2. 첫 지진, 그리고 소문난 잔치


2024년 8월 초, 도쿄에 온 지 채 보름도 되지 않은 어느 금요일 저녁이었다. 퇴근 후 약간의 피로감이 몰려올 무렵, 일본폰과 한국폰 두 대가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지진입니다. 지진입니다.” 곧이어 집이 살짝 흔들리는 듯했고,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이 하얘졌다.

물론 이전에도 비슷한 경험은 있었다. 일본 출장 중 멋모르고 있다가 흔들림을 겪기도 했고, 2012년 9월 칠레 산티아고 공항에서는 바닥이 흔들리자마자 사람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가는 아수라장을 보기도 했다. 그때도 저는 서너 박자 늦게 “아, 공항 밖으로 나가야 하나?”라고 되뇌었다. 하지만 이번엔 집 안이었고, 참고할 만한 다른 사람들의 반응도 없었다.

저는 일단 가방을 집어 들고 여권과 지갑이 있는지 확인한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서둘러 건물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2024년 8월 9일 오후 7시 57분경, 도쿄에서 가까운 가나가와현 서부에서 규모 5.3의 지진이 발생한 그 순간, 핸드폰 재난 알림을 듣고 집 밖으로 뛰쳐나온 사람은 우리 동네에서 저 하나뿐이었다.

그로부터 약 1년 뒤인 2025년 7월을 앞두고, 한국 언론은 난리가 났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예언했다는 만화가가 ‘7월 5일 대지진설’을 주장했고, 때마침 가고시마현 도카라 열도에서 1,000회가 넘는 군발지진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지인들에게서 안부를 묻는 연락이 빗발쳤다.

물론 일본이 4개의 지각판이 만나는, 세계에서 가장 지진에 취약한 지역 중 하나라는 건 과학적 사실이다. 늘 대규모 지진의 가능성이 경고되는 곳이다. 그럼에도 한국 언론의 보도는 조금 과하게 느껴졌다. 만화가의 꿈을 근거로 대재앙의 가능성을 부풀리고, 도쿄에서 직선거리로 1,100km나 떨어진 곳의 지진을 관동 대지진의 전조로 해석했다. 거기에 ‘후지산이 100년 가까이 활동이 없었으니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다’는 전문가의 설명을 곁들여, 마치 일본이 곧 무너질 것처럼 연일 보도했다.

강한 이빨을 가진 사자의 얼굴에 강력한 펀치를 가진 호랑이의 몸을 붙이고, 머리카락은 뱀으로 된 메두사를 얹어 공포의 괴물을 만들어내는 듯했다. 그들은 각도를 조금씩 바꿔가며 비슷한 뉴스를 끊임없이 양산했다.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일본의 불행을 바라는 걸까? 아직도 대중에게 남은 반일 감정을 이용해, 남의 불행에 대한 공포심으로 클릭 장사를 하려는 걸까?’

다행히 우려했던 대재앙은 일어나지 않았고, 2025년 7월은 무사히 지나갔다. 다만 한 가지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다. 긴자 거리에서 한국, 홍콩, 중국인 관광객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이었다. 평소 긴자 미츠코시 백화점 엘리베이터를 타면 10명 중 8명은 한국어나 중국어를 썼는데, 그 무렵에는 서양인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덕분에 평소에는 엄두도 못 내던 캐피탈(Kapital) 긴자 매장도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난 1년간 계속 눈독만 들이던 캐피탈의 시그니처 모델 ‘센츄리 데님’을 마침내 손에 넣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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