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도쿄 라이프

자동차 대신 스이카

by 하임

1.

일본(日本)에 오면서 한 가지 결심한 게 있다. 바로 ‘이곳에서는 운전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운전석 위치가 한국과 반대라서가 아니다. 후쿠오카(福岡) 여행에서 이미 여러 번 렌터카를 몰아봤기에 그 어색함은 익숙했다. 운전 방향이 다른 거야 앞차만 잘 쫓아가면 큰 문제없지만, 방향 지시등을 켜려 하면 와이퍼가 움직이고, 와이퍼를 작동시키려 하면 방향 지시등이 켜지는, 오랜 습관이 만든 오작동으로 처음 30분간은 진땀을 빼야 했다. 또 ETC(하이패스) 카드가 없을 경우 톨게이트 앞에서 부스의 어느 쪽에 붙여야 할지 갑자기 멍해질 때가 있다. 결국 차 문을 열고 내려서 요금을 냈던 초보로의 회귀도 경험했지만, 운전 자체는 문제없었다.

도쿄(東京)는 길이 번잡한 슈퍼 대도시지만, 오히려 나가사키(長崎)의 구불구불한 골목이나 후쿠오카(福岡)의 헷갈리는 고가도로보다는 운전하기 어렵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럼에도 운전대를 잡지 않기로 한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짧은 시간 내에 현지에 적응하려면 출퇴근부터 현지인답게 해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걷기라도 해야 서울에서 주 3일은 밤에 자전거를 타던 운동량을 채울 수 있지 않겠냐는 계산도 있었다. 그래서 집을 구할 때부터 주차장은 아예 신청하지 않았다. 만약 서울처럼 승용차로 출퇴근하려 했다면 자동차 리스나 중고차 구입 비용은 물론, 아파트 주차장 임대료로 월 3만 엔(円), 회사 근처 주차비로 월 5~6만 엔(円)이 추가로 들었을 것이다. 생각 하나 바꿨을 뿐인데 많은 것이 절약되었다.


2.

나의 하루는 10분 남짓한 걸음으로 시작된다. 집에서 나와 역까지 걷는 길이다. 츠키시마역(月島駅)에서 유라쿠초선(有楽町線)을 타고 세 정거장을 지나 유라쿠초역(有楽町駅)에 내린다. 그곳에서 7~8분을 걸어 치요다선(千代田線)으로 환승하고, 다시 세 정거장을 가면 회사 근처인 아카사카역(赤坂駅)에 도착한다. 역에서 회사까지는 또 5분 거리. 매일 반복되는 여정이지만, 열차 안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옷차림과 가방, 표정을 관찰하는 일은 여전히 흥미롭다.

서울에서 자가용으로 출퇴근할 때는 나의 공간과 세상 사이에 늘 좁힐 수 없는 거리감이 존재했다. 벚꽃이 만발한 봄날을 제외하고는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했던 기억이 거의 없다. 내 차 속의 나와 차 밖의 사람들 사이에는 무관심이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매일 아침저녁 수많은 사람과 부대끼며 출퇴근한다. 나 역시 그들 무리의 하나이고, 어느 순간 그들의 출퇴근 모습에 젖어들고 있다. 처음에는 '무엇이 다른가'를 관찰했지만, 이제는 그저 수많은 인파 속 한 명으로 녹아들어 스마트폰 콘텐츠에 집중하며 내가 내릴 역을 기다린다. 다만 습관처럼 주변 사람들의 신발이나 가방을 언뜻언뜻 살피게 될 뿐이다.


3.

도쿄(東京)의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교통카드는 필수다. 물론 역마다 티켓 발매기가 있지만, 매번 표를 사다 보면 손에 동전 냄새가 밸 정도로 잔돈이 쌓인다. 게다가 도쿄(東京)는 JR, 도에이(都営), 사철(私鉄) 등 운영 주체가 다른 노선이 얽혀 있어 환승이 안 되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인 교통카드는 JR의 ‘스이카(スイカ, Suica)’와 도에이(都営) 계열의 ‘파스모(パスモ, Pasmo)’다. 이 카드 한 장이면 전철, 버스, 택시는 물론 편의점이나 식당, 심지어 자판기와 코인라커까지 이용할 수 있어 일본 생활의 자잘한 불편함을 상당 부분 해소해 준다.

과거 갤럭시 폰을 쓸 때는 일본 교통카드를 모바일로 쓸 수 없어 출장 때마다 불편했는데, 지금은 아이폰을 쓰면서 모바일 스이카(モバイルSuica)를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반도체(IC칩) 부족으로 실물 카드 신규 발급이 중단되면서 아이폰 유저가 아니라면 교통카드를 구하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외국인 관광객에 한해 도쿄역(東京駅) 등지에서 한정적으로 발급하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공항 자판기에서 벚꽃 문양이 그려진 빨간색 ‘웰컴 스이카(Welcome Suica)’를 본 적이 있다면 특히 조심해야 한다. 이 카드의 유효기간은 고작 28일이다. 예전에 출장 때 두어 번 이 카드를 사두고 다음을 기약했다가, 남은 금액을 고스란히 날리는 불운을 겪었다. 무려 2만 엔(円)에 달하는 돈이었다. 자세히 알아보지 않은 게으름에 대한 비싼 수업료였다. 혹시라도 단기 여행으로 이 카드를 사용했다면, 남은 잔액은 귀국 전에 반드시 편의점 등에서 탈탈 털어 쓰시길 권한다.


4.

도쿄(東京) 시내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이동하는 데는 지하철이 단연 최고다. 하지만 우리 집 앞에 버스 노선 두 개가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도쿄(東京)의 지하철역은 환승 구간이 길고 계단도 많아 상당한 체력을 요구하는 반면, 버스는 그저 타고 내리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 버스는 완전히 멈춘 후에 자리에서 이동하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어, 서울처럼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재미있는 점은 지역마다 버스 타는 법이 다르다는 것이다. 도쿄(東京)는 앞문으로 타며 요금을 내고 뒷문으로 내리지만, 교토(京都)는 뒷문으로 타고 내릴 때 앞문에서 요금을 낸다. 시외버스처럼 구간이 긴 닛코(日光)에서는 탈 때와 내릴 때 모두 단말기에 카드를 찍어 이동 거리에 따라 요금을 정산하기도 한다.

KakaoTalk_20250924_132830715.jpg 미나토구 100엔 순환버스

우리 집 앞에는 東16번 버스와 구청 순환 버스가 다닌다. 東16번 버스를 타면 여섯 정거장 만에 도쿄역(東京駅)에, 길 건너에서 타면 여섯 정거장 만에 쇼핑몰인 라라포트 도요스(ららぽーと豊洲)에 닿을 수 있다. 100엔을 내는 주오구 지역을 도는 서울의 마을버스 같은 구청 순환버스도 있지만 내 생활 동선과 달라서 2번 정도 탄 것이 전부다.


5.

물론 가끔 택시를 이용할 때도 있다. 회사에서 집까지 약 6.5km 거리에 택시비는 2,800엔(円) 내외. 한국 택시비라면 만 원이 채 안 될 거리지만, 일본에서는 그 두 배가 훌쩍 넘는다. 엔화(円貨)는 원화(ウォン貨)에서 '0' 하나를 뗀 것과 비슷해, 나도 모르게 요금이 싸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한번은 몸이 좋지 않아 4일 연속 택시로 출근한 적이 있었는데, 주말에 정산해 보니 ‘휴먼메이드(HUMAN MADE) 반팔 티셔츠 한 장 값’이 사라져 있었다.

결국 나의 도쿄(東京) 생활은 90%의 전철과 필요에 따른 버스, 그리고 아주 가끔의 택시로 채워진다. 비싼 주차비 탓에 평일에 자가용으로 출근하는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가 거래하는 대기업의 임원(전무급)들조차 백팩을 메고 지하철로 출근하고, 접대를 마친 저녁에는 택시를 타고 퇴근한다. 회사 임원급이면 출근하면 회사의 주차장에 자기 주차 공간이 있고, 좀 더 높이 올라가면 회사 차량에 기사까지 제공되는 서울의 대기업 문화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운전석이라는 나만의 세계에서 내려와 군중의 일원이 되는 것. 그것은 수십 년 만에 다시 느껴보는 신입사원의 적응에 어렵지 않은 평범한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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