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도쿄 라이프

여행객과 거주자 사이, 하라주쿠의 생로병사

by 하임


아카사카(赤坂)로 출근하고 집 가까운 긴자(銀座)에서 장보고 머리를 깎고, 하라주쿠(原宿)나 시부야(渋谷)로 옷 사러 가고, 한식이 고플 땐 신오쿠보(新大久保)에 가다 보면, 도쿄(東京)에 사는 게 가끔은 여행의 연속처럼 느껴진다. 거주자라기보다 장기 체류를 하고 있다는 느낌으로 살아갈 때가 많다.


내가 사는 동네 자체가 나카노(中野)나 시모키타자와(下北沢) 등에서 느끼는 보통의 일본 사람들의 공간과는 조금 다른, 도쿄역에서 가까운 외국인 레지던스인 탓도 있다. 집 앞 마트나 미용실, 세탁소 비용이 긴자와 별다를 바 없다는 점도 그런 기분을 부추긴다. 가끔은 여행객처럼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어서 계속 걷다 보면 하루에 2만 5천 보를 넘기는 날들도 있었다. 요즘은 그런 ‘여행객 모드’를 자제하고, 필요한 일만 보고 서너 시간 내에 돌아오는 ‘거주자 모드’로 지내려 애쓰고 있다.


그럼에도 수십 번도 더 간 하라주쿠에서 계속 새로움을 느끼는 이유는, 넘쳐나는 사람들과 로드숍들의 끊임없는 변신 때문이다.


여행객 모드로 움직일 때 내가 반드시 들렀던 코스가 있다. 네즈미술관(根津美術館)에서 아오야마(青山) 거리를 지나 오모테산도, 하라주쿠 교차로를 거쳐 메이지 신궁(明治神宮)에 이르는 길이다. 메인 스트리트만 따라 걸어도 약 1.6km, 23분 정도 걸리는 길이다. 처음엔 안도 다다오(安藤忠雄)의 오모테산도 힐즈(表参道ヒルズ)가 한가운데 버티고 서 있고, PRADA, BOSS, 꼼데가르송(Comme des Garçons), APPLE, Polo 등 한눈에 봐도 감탄이 나오는 개성 넘치는 건물들이 전시된 미술관 같은 거리로 보였다. 큰길만 따라 걸으면 한 시간이면 충분했지만, 무언가 하나를 사야겠다는 마음을 먹는 순간부터 이곳은 하루로는 어림도 없는 지역이 된다. 방대한 골목 상권까지 다 보려면 일주일이 걸려도 모자란다. 이 지역은 “럭셔리와 스트리트 패션이 공존하는 일본 트렌드의 최전선”으로, 서로 다른 매력을 가지면서도 하나로 묶이는 스타일의 용광로 같은 곳이다.

KakaoTalk_20250925_134814989.jpg 하라주쿠 다케시타 거리


이곳에 늘 사람이 넘쳐나는 이유는 명확하다. 도쿄도 인구 1,450만 명에 치바(千葉), 사이타마(埼玉), 가나가와(神奈川) 등 수도권 인구까지 합치면 약 4,500만 명이 거주하는 세계 1위 광역권의 패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연간 2,400만 명이 넘는 외국인 관광객이 도쿄를 방문하면 반드시 들르는 곳 중 하나이기도 하다. 특히 주말이면 인파에 밀려다닐 정도다. 아무 생각 없이 놀러 갔다간 커피 한 잔 마시며 쉴 곳 찾기도 힘들고, 화장실 한번 가려고 해도 최소 15분은 대기해야 한다.


참고로 다니다 잠시 쉴 곳을 찾는다면, 하라주쿠 라코스테(Lacoste) 매장 2층의 커피숍을 이용하면 좋다. 매장 한편의 카페 공간인데 주말에도 대기 없이 이용할 수 있다. 또 화장실이 급하다면 하라주쿠 교차로에 최근 새로 문을 연 도큐 플라자(東急プラザ) 건물로 들어가면 된다. (교차로를 사이에 두고 두 곳의 도큐 플라자가 마주 보고 있는데, 새 건물 쪽이 다른 곳보다 좀 더 여유 있다.)


이렇게 사람이 넘쳐나는 거리는 쉬지 않고 얼굴을 바꾼다. 번잡함 속에서도 마음에 들었던 한가한 가게를 오랜만에 다시 찾아가 보면, 어김없이 리모델링에 들어갔거나 이미 다른 가게로 바뀌어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아오야마나 오모테산도(表参道)를 차지하고 있는 명품 가게들은 거리가 주는 상징성과 브랜드의 자존심 때문인지 리모델링을 할지언정 아예 철수하는 경우는 없다. 늘 사람들로 넘쳐나는 루이비통(Louis Vuitton), 셀린느(Celine), 샤넬(Chanel) 매장 앞에는 어디서나 무심히 줄 서 있는 관광객들을 볼 수 있다. 반면, 늘 지나가도 사람이 없는 E사, B사, F사 같은 매장들도 있는데, 관광객 시절을 포함해 10년을 봐도 철수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것을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최근에는 아오야마에 젠틀몬스터(Gentle Monster) 매장이 성업 중인데, 우리나라 브랜드가 일본의 대표적인 패션 스트리트에서 밀리지 않는 모습에 약간의 자부심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대로변이 아닌 하라주쿠 안쪽으로 한 걸음만 들어가면 가게들의 치열한 생로병사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하라주쿠 다케시타도리(竹下通り)에는 몇 년 전만 해도 미니 피그를 만지면서 즐기는 카페가 한 곳이었는데, 요즘은 미어캣 카페 등과 함께 그 수가 더 늘었다. 예전에는 이 거리라면 크레이프나 일본식 츄러스를 꼭 맛봐야 했다면, 요즘 그 자리에는 한국식 무인 라면 가게나 회오리감자칩 등 한국 길거리 간식을 파는 가게가 생겨나 있다. 몇 년 전부터 인기를 끈 ‘루크스 랍스터(Luke's Lobster)’는 하라주쿠에 한 곳뿐이었는데, 이제는 서너 곳으로 늘어나 있다. 요즘 뉴욕의 맛차 인기를 대변하듯 캣 스트리트(Cat Street)의 ‘맛차 도쿄’는 줄 선 관광객의 절반가량이 서양인이다. 하라주쿠 안쪽 길에는 스투시(Stüssy), 슈프림(Supreme) 등의 대표적인 스트리트 패션 매장이나 풀카운트(Full Count) 같은 복각 데님의 대표 매장도 있다. 그중에서도 줄 세우기의 정점은 단연 슈프림이다. 신제품이 나오는 토요일에는 개장 전부터 100m는 족히 넘게 줄이 늘어서고, 주로 검은색 티셔츠를 입은 지나치게 시크한 가드들의 지시에 따라야만 입장이 가능하다. 최근에는 디스이즈네버댓(thisisneverthat)이나 디스커스(Discus Athletic) 같은 한국 패션 매장들도 문을 열고 있지만, 이들처럼 줄을 서서 들어가는 매장으로 성장할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단순히 가게만 바뀌는 것이 아니다. 그 안을 채우는 사람들도 변하고 있다. 한국 젊은 관광객에게 인기 많은 단톤(Danton) 매장은 직원의 절반 이상이 한국인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돈키호테(ドン・キホーテ)나 스키 약국(スギ薬局) 같은 드러그스토어에는 중국인 직원이 꼭 있었는데, 요즘은 주요 매장 곳곳에서 한국인 스태프들이 일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올해 일본을 찾는 한국 관광객이 1,000만 명으로 전체 외국인 관광객의 25%를 차지할 것이라는 통계를 피부로 느끼는 순간이다. 몇 주 전, 한국에서 온 지인들과 긴자에서 저녁을 먹는데 식사가 끝날 무렵 건장한 직원이 다가와 “저도 한국 사람입니다. 식사하실 때 일본 느낌 가지시라고 계속 일본말 썼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식사 내내 편하게 한국말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그의 행동을 온전한 선의로만 받아들여야 할지 약간의 고민이 남았다.


요즘 핫한 트렌드는 스포츠 의류다. 메이지진구마에(明治神宮前) 교차로에는 HOKA 매장이 떡하니 명소로 자리 잡았고, 캣 스트리트(Cat Street)에는 오픈런이 아니면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온 러닝(On Running)’ 가게도 위용을 뽐낸다. 다케시타도리(竹下通り)의 아식스(Asics) 매장도 사람으로 넘쳐 나지만, 불과 요 몇 달 사이에는 익숙했던 N사의 대형 스포츠 매장이 리모델링에 들어갔는데, 아마 공사가 끝나면 전혀 다른 상품을 파는 매장으로 변신해 있을 것 같다.


이곳은 한 시간의 대기도 마다하지 않는 거대한 소비의 욕망이 들끓는 공간이다. 그 욕망에 부응하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있기에, 그리고 부응하지 못하는 것은 가차 없이 도태시키기에, 이 거리는 스스로 거대한 인파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었다. 몇 번을 가도 지겹지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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