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도쿄 라이프

웰컴 하루미

by 하임

1.


올해는 벚꽃이 만개한 것도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서울 출장 다녀오니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던 4월 중순이었다. 하루미(晴海) 트리톤 스퀘어(トリトンスクエア)에 마침 빈 사무실이 나왔다는 소식에, 회사 동료 여럿과 함께 현장 답사에 나섰다.

함께 온 동료 중 하나가, 몇 년 전 바로 이 트리톤 스퀘어 근처에 집을 구하려 몇 주간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던 경험을 들려주었다. 무슨 이야기인가 했더니, 2019년 무렵 일본 최대 주택 단지인 ‘하루미 플래그’ 프로젝트가 막 시작됐을 때 이곳에 신혼집을 구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신축, 친환경, 스마트 계획도시. 주거지로는 더없이 탐나는 곳이었지만, 그녀는 결국 포기하고 남편 직장이 있는 지바(千葉) 쪽에 집을 샀다고 했다. 5,600호가 넘게 들어서는 이 지역에 전철은 오에도선(大江戸線) 가치도키역(勝どき駅) 하나뿐이니, 교통 문제가 장난이 아닐 거라 판단한 것이다.

긴자(銀座)까지 15분이면 가는 버스도 있었지만, 전철역과의 거리를 집의 가치로 여기는 도쿄(東京) 사람들 입장에선 투자 가치가 없는 곳이라 결론 내렸다고 한다. 그게 코로나 사태 전인 2019년의 일이다. 당시 20평대 아파트는 7~8천만 엔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평균 1억 4천만~1억 6천만 엔으로 두 배 넘게 뛰었고, 그녀가 눈여겨봤던 맨션은 2억 엔을 호가한다고 했다. 반면 그녀의 지바 집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부자들은 어차피 자가용 타고 다니더라고요.”

그녀의 씁쓸한 농담을 들으니, 오늘 우리의 답사도 마냥 순탄치만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스쳤다.

KakaoTalk_20251010_085648302.jpg <가치도키 역 쪽에서 본 트리톤 스퀘어>


하루미의 트리톤 스퀘어는 40층 3개 동과 19층 1개 동으로 구성된 연면적 189,000㎡의 대단지 오피스 건물로, 서울로 치면 강남 파이낸스 타워(Gangnam Finance Tower, 212,615㎡)보다 조금 작다. 그런데 내부는 흔한 오피스 빌딩과 격이 달랐다. 식당가를 넘어 우체국, 마트, 병원, 세탁소 등 주택가에서나 볼 법한 생활 편의 매장들이 즐비했고, 점심시간이 되자 10여 개의 도시락 가판대가 600~800엔 사이의 합리적인 가격표를 달고 일제히 들어섰다. 일단 환경은 합격점.

안내를 맡은 부동산과 건물 관리회사 직원들은 무척 친절했다. 최근 리모델링했다는 1층 로비의 뫼비우스 띠 모양 대형 LED 조형물과 한편에 자리한 스타벅스 매장을 특히 자랑했다. 일단 호감도 상승…. 이어서 무료로 이용 가능한 공용 회의실, 잘 꾸며진 5층의 공용 흡연실을 보여주며 연신 자랑을 이어갔다.

사무실 후보는 두 곳. 5층의 83평 코너 사무실과 25층의 복도 중간 사무실이었다. 5층은 창문이 두 면인 점은 좋았지만, 두 창이 둥근 곡면 유리로 이어져 있어 반듯한 사각형을 선호하는 우리에겐 맞지 않았다. 곧바로 25층으로 향했다.

문을 여는 순간, 느낌이 왔다. 복도 중간이라 한쪽 면만 통유리창인데도 반듯한 사각형 구조라 들어서는 순간 공간이 시원하게 보였다. 이전 아카사카(赤坂) 사무실은 사각형 두 개를 붙여놓은 기괴한 형태에다 낡은 건물 특유의 기둥들이 곳곳에 박혀 있어 전체를 한눈에 보기 어려웠다. 이곳이라면 공간 활용도가 훨씬 높을 터였다. 창가로 다가가자 정면의 반 이상은 앞 건물이 가리고 있었지만, 고개를 돌리니 저 멀리 오시아게(押上)의 스카이트리(スカイツリー)가 보이고 아래로는 반듯한 운하가 흘렀다. 아카사카 좁은 골목의 5층 뷰에 익숙하던 우리에겐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갑자기 소기업에 근무하다 대기업에 입사한 기분. 일단 유력 후보 등극.

KakaoTalk_20251010_085648302_01.jpg <사무실에서 내려다본 정경>

그다음은 가장 현실적인 문제, 교통을 검토했다. 아카사카의 편리함에 익숙한 직원들, 특히 도쿄 서쪽이나 사이타마(埼玉), 가나가와(神奈川)에 사는 직원들에게 하루미는 너무 동쪽이었다. 출퇴근 시간 증가는 근무 효율을 떨어뜨릴 수 있고, 회사 입장에선 교통비 부담도 커질 터였다. 게다가 가치도키역의 출퇴근 시간 혼잡은 보지 않아도 훤했다. 실제로 아침이면 역에 도착한 직장인들이 멈추지는 않지만 아주 조금씩 움직인다. 역을 빠져나오는 데만 7~8분이 걸리고, 트리톤 스퀘어로 이어지는 무빙워크를 타기 위해 또 한참을 줄 서야 한다. 교통은 명백한 마이너스였다.


그런데 결국, 우리는 트리톤 스퀘어로의 이전을 결정했다. 함께 검토하던 토라 몬(虎ノ門)의 빌딩이 건축 자재 문제로 우리 스케줄과 맞지 않은 탓도 있지만, 우리가 원하던 83평 크기의 사무실을 아카사카에서 내던 월세보다 낮은 가격에 구할 수 있다는 점이 결정적이었다. 근무 환경까지 따지자면 여기가 최적이었다. 물론 더 찾아보면 더 좋은 곳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3개월간 부동산 회사와 뛰어다닌 결과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타이밍은 굿 초이스였다. 4월 협상 당시만 해도 건물에 빈 사무실이 제법 있어 6개월 임대료 면제라는 보너스 조건까지 받았는데, 불과 넉 달 뒤인 8월에는 그 많던 빈 사무실이 모두 채워져 임대료가 크게 올랐고 보너스 조항도 사라졌다고 한다.


2.


사무실 이전의 첫 번째 관문은 공사 업체 선정이었다. 트리톤 스퀘어(トリトンスクエア) 공사 경험이 있는 업체 여러 곳에 연락해 견적을 받았다. 일본의 오피스 이전 공사는 조금 독특한데,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인테리어, 칸막이 등 우리가 원하는 디자인을 구현하는 것은 C공사로, 우리가 직접 업체를 선정해 발주할 수 있다. 하지만 배선이나 공조시설처럼 건물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은 B공사라 하여, 반드시 건물 관리회사가 지정한 업체를 통해 진행해야 한다.

우리는 가장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한 B사를 C공사 업체로 선정하고, 여러 번의 수정을 거쳐 공간 배치안을 확정했다. 비용 절감을 위해 제작은 회의실 테이블과 서류 보관함 정도로 최소화하고, 쓰던 책상들은 대부분 그대로 가져오기로 했다. 공사는 오봉(お盆) 연휴가 끝난 8월 16일부터 시작되어,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난관은 '파티션'에서 터져 나왔다. 나는 탁 트인 개방감을 위해 기존에 쓰던 낡은 파티션을 모두 폐기하고 싶었다. 같은 빌딩의 다른 사무실들처럼 세련된 카페 같은 분위기를 원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직원들이 파티션 유지를 강력히 원했다.

물론 요즘은 자율 좌석제를 도입하거나, 회의가 있을 때만 출근하는 회사도 많다고 들었다. 어느 쪽이 더 효율적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결국 직원들의 손을 들어주기로 했다. 어차피 모두의 회사이니, 많은 사람의 바람 쪽으로 기우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한 발 물러선 것이다.

그렇게 전체적인 벽과 바닥 톤에 어울리지 않는 120cm 높이의 낡은 파티션들이 새 사무실 중앙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사람보다 파티션이 먼저 보인다. '신삥'인 벽과 카펫 색깔과도 전혀 맞지 않는 녀석들이…. 마치 몇 년 전 스타벅스를 점령한 50대 아저씨들 같다. 20, 30대의 공간으로 여겨지던 그곳에 이질감을 팍 던져주던 그 모습. 그런데 지금은 그 풍경도 익숙해졌다. 그래, 같이 늙어가다 보면 익숙해지겠지. 그렇게 어색한 동거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인테리어 문제가 일단락되자, 이번에는 이사 날짜가 새로운 문제로 떠올랐다. 나는 중요한 일을 앞두고 '손 없는 날'을 따지는 편이다. 나이가 드니 젊었을 때보다 이런 것에 더 기대게 된다. 좋은 일만 있으리란 보장이 없는 세상인데, 굳이 좋지 않다는 날에 시작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일종의 의존증이 생긴 것 같다. 지인에게 부탁해서 날을 받았다. 덤으로 늘 남쪽이나 동쪽으로 창이 나야 좋다는 말이 기억나서 우리 새 사무실 창문 방향이 북서쪽인 게 마음에 걸려 물었더니, "하루미는 인공섬이라 배와 같아서 땅처럼 방향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명쾌한 답이 돌아왔다. 안심이 되었다. 역시 나는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들으면 편해진다.

하지만 관리회사는 길일로 받아 둔 그 평일에 "이사 불가"를 알려왔다. 평일에 이사하면 다른 사무실에 메이와쿠(迷惑), 즉 폐를 끼치니 주말에 이사하라는 거였다. 고심 끝에, 이사는 그전 주말에 미리 하고 정식 오픈만 길일에 맞추기로 했다. 그 사이 직원들은 재택근무를 하도록 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우리가 간과한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우리는 '방송으로 먹고사는 회사'라는 점이다. 일반 사무실보다 이전이 훨씬 복잡했다. 단순한 인터넷 선 연결은 기본이고, 한국 본사와 연결되는 전용 라인, 우리가 제작한 콘텐츠를 케이블 방송사나 위성 회사로 보내는 송출 라인까지 점검해야 했다. 이 작업에만 며칠이 꼬박 걸렸다. 어차피 짐을 옮긴 당일 오픈은 불가능한 일이었던 셈이다.

다행히 모든 것은 순조로웠고, 드디어 정식 사무실 오픈 D-1일이다. 아카사카(赤坂) 사무실에서 나오는 과정이 너무나 힘들었기에, 들어오는 과정마저 힘들었다면 몇 번이고 포기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훨씬 수월했던 입주 덕분에 떠날 때의 어려움은 눈 녹듯 사라졌다.

이제 회사가 새 터에서 좋은 기운을 받아 힘차게 나아가길 바랄 뿐이다. 배 터에 올라탔으니 뭐라도 이루어야지!! 반젤리스의 <1492: Conquest of Paradise>라도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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