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아카사카 2
1.
아카사카(赤坂)에서 탈출하기로 결심한 2026년 1월, 가장 먼저 한 고민은 '어디로 갈까'가 아니었다. 그보다 한 단계 앞서 '이 참에 사무실을 사버릴까?' 하는 대담한 생각부터 시작했다.
마침 한 한국계 부동산 업체로부터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니혼바시 하마초(日本橋浜町) 부근의 바닥면적 28평인 5층 건물을 약 10억 엔에 매입하라는 것이었다. 절반은 현금으로, 절반은 은행 대출로 충당하고 1~3층은 임대를 준다. 그리고 4,5층 56평을 우리가 사용하면, 현재 내는 임대료 절감액과 새로운 임대 수입으로 10년 안에 대출 원리금을 모두 상환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10년 뒤, 도쿄 시내의 반듯한 빌딩에 우리 회사 이름을 붙일 수 있다니!! 며칠간은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첫째, 현재 136평을 쓰는 우리 사무 공간을 절반 이하로 줄이는 것은 무리였다. 둘째, 지은 지 오래된 건물의 유지보수 비용은 예측 불가능한 변수였다. 결정적으로, 해당 지역은 이미 공실이 많은 낡은 동네라 새로운 임차인을 구하기 쉽지 않아 보였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나를 포함한 우리 직원 누구도 임대업이라는 복잡한 세계에 대해 아는 것이 전무하다는 사실이었다. 10억 엔짜리 프로젝트에 경험 없이 달려드는 것은 무모한 도박이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이건 패스."
그렇게 빌딩주의 꿈을 접고, 우리는 현실적인 이사의 원칙을 세우기 시작했다. 첫째, 사무 공간을 70~80평 규모로 줄이고 연 임대료를 기존 3천만 엔보다 무조건 낮출 것. 둘째, 서울의 2호선 격인 '오에도선 (大江戸線)' 라인 안쪽에 자리 잡을 것. 하지만 두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곳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기존 아카사카 사무실은 미나토구(港区)라는 비싼 동네에 있었지만, 낡은 건물이라 평당 1만 8천 엔 수준의 저렴한 임대료가 가능했다. 그러나 2025년 8월 기준, 도쿄 중심 비즈니스 지구(주오구(中央区), 치요다구(千代田区), 미나토구(港区) 등)의 평균 임대료는 평당 2만 1천 엔을 훌쩍 넘었고, 역세권의 좋은 건물은 평당 4~5만 엔을 호가했다.
물론 외곽으로 나가는 방법도 있었다. 코로나 이후 대면 회의가 줄어 굳이 비즈니스 지구에 머물 필요는 적어졌다. 하지만 회사의 입지는 직원들의 사기와 자부심에 큰 영향을 미치기에, 젊은이들의 거리인 키치죠지(吉祥寺)나 시모키타자와(下北沢)처럼 너무 멀리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일본 부동산 회사들을 통해 월 200만 엔 이하, 70~80평 규모의 매물들을 소개받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오래된 서점가와 비즈니스 타운이 공존하는 간다(神田) 지역, 게이오 대학을 중심으로 차분한 분위기의 미타(三田) 지역, 그리고 대사관이 많아 고급스럽고 국제적인 느낌의 아자부(麻布) 지역처럼 한 층 전체를 단독으로 쓸 수 있는 건물들을 둘러봤다. 우리 회사만 입주한다는 장점은 있었지만, 아카사카 사무실에서 느꼈던 '작고 협소한 회사'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오히려 우리 회사의 브랜드 가치를 깎아 먹는 것처럼 느껴졌다.
오래전 입사한 직원의 말이 떠올랐다. TBS 방송국 근처라는 말에 번듯한 건물을 상상하고 면접을 보러 왔다가, 조그맣고 낡은 건물에 크게 당황했다고 했다. 심지어 당시 사장님은 "지금 TBS 안에 사무실을 마련 중이고, 여긴 임시 사무실"이라는 임기응변으로 그를 입사시켰다고 했다. 나 역시 출장 시절, 1층의 낡은 약국 간판과 어두컴컴한 복도, 낡은 엘리베이터를 보며 음침하다고 생각했었다. 심지어 몇 건물 옆에는 '폭력단 단속'이라는 안내판이 항상 걸려 있어, '우리 사무실이 야미 킨(闇金, 사채업자) 사무실이라 해도 믿겠다'라고 농담할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아카사카 시절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한 층 단독 임대' 건물은 모두 제외하기로.
방향을 틀어, 대형 오피스 빌딩의 일부를 임차하는 쪽으로 알아봤다. 처음 제안받은 곳은 '토라 몬(虎ノ門) 트윈 빌딩'이었다. 입지는 시내 한복판에 역도 가까워 완벽했지만, 공간에 문제가 있었다. 한쪽 창문은 바로 앞 건물 사무실과 마주 보고 있었고, 다른 쪽 통창으로는 종합병원이 보여 어딘가 답답했다. 보자마자 마음에 들어 덜컥 결정할 뻔했지만, 입주 가능일이 무려 1년 뒤인 내년 3월이라는 말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벽면 공사에 필요한 자재 확보가 어렵다는 이유였다.)
다음에 추천받은 곳이 하루미(晴海) 지역의 '트리톤 스퀘어'였다. 2020년 도쿄 올림픽 선수촌이 있던 곳으로, 분양 당시보다 가격이 두 배로 올랐다는 전설이 있을 만큼 지금은 고급 주거지로 주목받는 동네지만, 도쿄만과 가까워 세타가야(世田谷)나 가나가와(神奈川), 사이타마(埼玉) 등에 사는 일부 직원들의 통근 시간이 40분 이상 늘어난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현장을 방문한 순간, 망설임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반듯한 직사각형 공간, 시야를 가리지 않는 통창 너머로는 오시아게(押上)의 스카이트리까지 보였다. 40층짜리 건물 세 동으로 이루어진 단지 안에는 우체국, 병원, 마트, 푸드코트 등 모든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현재 비어 있어 언제든 입주가 가능하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10곳이 넘는 사무실을 둘러본 긴 여정의 종착지로, 우리는 마침내 이곳을 선택했다.
2.
갈 곳이 정해지자, 4월 중순부터 우리는 체계적인 이사 준비에 돌입했다. 해야 할 일은 크게 ‘나가기’와 ‘들어오기’, 두 가지였다. 말은 간단했지만, 그 속에는 기존 건물주와의 협상, 새 사무실 계약, 인테리어 공사, 원상복구라는 거대한 산들이 버티고 있었다.
이 거대한 프로젝트를 위해 우리는 ‘사무실 이전 위원회’를 꾸렸다. 아무래도 도쿄 현지의 일인 만큼, 일본인인 사 부장님(성씨가 사사키(佐々木)라 우리에겐 ‘사 부장님’으로 통한다)이 위원장을 맡았다. 여기에 회계, 기술, 폐기물 담당자까지 총 4명. 20명 남짓한 회사에서 직원의 4분의 1이 이사에 매달리게 된 것이다.
이사 준비는 매주 새로운 문제와의 싸움이었다. 일본의 임대차 법규나 공사 비용에 대한 상식이 전무했던 나는 계속되는 판단의 기로에서 길을 잃기 일쑤였다. 마케팅 전문가인 사 부장님 역시, 방송 시설 이전이라는 특수 과제까지 떠안은 채 본인 업무에 더해 6개월 내내 야근을 밥 먹듯 했다. 어느 여름날, 미안한 마음에 물었다. “계속 늦게 들어가셔서 사모님이 화내지 않으세요?” 그는 덤덤하게 답했다. “예전엔 일본 전역으로 출장을 다녀 집에 거의 못 들어갔는데, 요즘은 매일 들어가니 괜찮다고 합니다.” 그 답을 듣고 나니, 고맙기보다 미안해서 얼굴을 마주하기가 힘들었다.
수많은 난관 중에서도 우리를 가장 괴롭힌 것은 ‘나가기’의 과정, 그중에서도 단연 ‘원상복구’ 비용 문제였다. 기존 계약서에는 ‘임대인이 지정하는 회사로 원상복구를 진행한다’는, 일본에서는 보편적이지만 임차인에게는 무척 불리하게 느껴지는 조항이 있었다. 건물주는 일본의 대표 건설사인 K건설을 지정했고, 얼마 뒤 그들에게서 날아온 견적서는 우리의 눈을 의심하게 했다. 5,700만 엔. 우리 돈으로 5억 7천만 원이었다. 새로 들어갈 하루미(晴海) 사무실의 인테리어, 가구 제작, 배선 공사를 모두 합친 비용이 3,500만 엔 내외인데, 그야말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었다.
여기서부터 비용을 줄이기 위한 기나긴 몸부림이 시작됐다. 먼저 사 부장님은 ‘분할 발주’ 전략을 세웠다. 건물주와의 오랜 협상 끝에, 공사를 3단계로 나누어 각기 다른 업체에 맡기는 데 성공했다. 공조 및 환기 관련 원상복구는 M 공업, 단순 철거는 전문 철거 실행 업체 T사, 그리고 핵심 구조물 철거만 K건설에게 맡기는 전략이었다. 이것 만으로도 약 400만 엔을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했다. 한여름 내내 고심하던 사 부장님은 8월 말쯤 흥미로운 정보를 알아왔다. 건설 견적을 검토하고 대신 협상해 준 뒤, 감액된 금액의 일부를 수수료로 받는 ‘건설 컨설턴트’의 존재였다. 우리는 수소문 끝에 한 컨설팅 회사와 ‘감액분의 30%’를 주는 조건으로 계약하고 K건설과의 협상을 맡겼다. 우여곡절 끝에 900만 엔을 추가로 삭감했다. 수수료를 제하고도 630만 엔을 아낀, 고마운 결과였다.
다음으로 속을 썩인 것은 방송 장비 이전 비용이었다. 회사의 핵심 데이터가 담긴 NAS(Network Attached Storage) 등 제작 장비의 이전을 위해, 해당 장비를 판매했던 M사를 장비 이사 업체로 선정했었다. M사가 제시한 처음 견적은 450만 엔이었다. 견적서의 내용은 일부 설계 비용을 제외하면 대부분 인건비로 채워져 있었다. 기술에 대한 이해가 없는 나로서는 실제 작업 시간을 알 수 없었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오히려 협상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마침 해당 장비는 내가 근무하기 전에 도입된 것이라 관련 서류를 찾아보았다. ‘제품 설치 및 각 단말기 연결 비용: 180만 엔’. 서류에는 그렇게 명시되어 있었다. 나는 몇 달에 걸친 협상 내내 다른 이유는 설명하지 않고, 그저 서류에 적힌 180만 엔만 고집했다. 결과적으로 이전 비용은 180만 엔이 되었다.
공간을 40% 정도 줄여서 가는 입장이라, 20년 묵은 짐들을 버리는 것도 큰일이었다. 이사를 위해 짐을 정리하다 보니 그동안 숨겨져 있던 폐기물들이 끝도 없이 나왔다. 압권은 2층 계단 아래, 직원들 아무도 그 존재를 몰랐던 숨겨진 공간이었다. 그곳에서는 10년은 족히 묵었을 쓰레기 더미가 거의 화석처럼 쟁여 있었다. 그동안 저것들이 뿜어낸 곰팡이 포자가 우리 몸을 얼마나 들락날락했을까 생각하니 아찔했다. 보존 연한이 지난 서류들은 회사 근처 컨테이너 창고를 빌렸고(월 5만 엔), 나머지 자산들은 대장을 일일이 대조하며 버릴 것과 가져갈 것을 정했다. 폐기물 처리 비용으로 100만 엔이 나왔는데, 일부 비품이 재활용 가치를 인정받아 비용을 상당히 절감한 편이었다.
이렇게 ‘나가기’를 위한 기나긴 과정은 일단락됐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사 나간 뒤 두 달간 진행될 원상복구 공사는, 발주처인 우리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라 부디 아무 문제 없이 공사가 끝나 건물주에게서 연락 오는 일이 없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까지는 천천히 걱정하기로 했다.
이 모든 ‘나가기’의 몸부림이 진행되는 동안, 저편에서는 ‘들어가기’ 위한 또 다른 과정이 한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