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여행가이드 12] 나카메구로, 벚꽃과 스타벅스

by 하임
Gemini_Generated_Image_l3psk9l3psk9l3ps.png <나카메구로의 벚꽃놀이 팝 아트> Gemini 제공

벚꽃의 낭만과 현실, 그 아찔한 간극


나카메구로(中目黒)는 벚꽃의 명소다. 4월이 되면 메구로가와(目黒川)를 따라 화려한 벚꽃들이 피어나고, 밤이 되면 가로등 불빛에 비친 벚꽃이 흐르는 물 위로 투사된다. 달 밝은 밤, 물과 벚꽃이 어우러진 화려한 봄날의 영상이 영원히 마음에 남을 것이다…라고 생각한다면, 필시 벚꽃 만개한 나카메구로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낮이고 밤이고 수십 미터 간격으로 안전 유도원이 자리 잡고 있다. 그들은 끊임없이 확성기로 "타치도마라나이데 쿠다사이(立ち止まらないでください, 멈추지 마세요)!", "사신 사츠에이와 고엔료 쿠다사이(写真撮影はご遠慮ください, 사진 촬영은 삼가 주세요)!"라며 쉴 새 없이 안내 방송을 쏟아낸다.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 없이 걷다 보면 스트레스 지수가 10 레벨에서 내려올 줄 모른다. 인파에 밀려가다 보면 행여 남에게 폐를 끼칠까 앞만 보고 걷게 되고, 도처에 오픈한 가게를 들락거리는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으려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정작 벚꽃은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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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구로 가와의 만개한 벚꽃과 사람들

게다가 벚꽃이 가득하고 물이 예쁘게 흘러가는 배경으로 사진이라도 한 장 건질 요량이면, 엄청난 고도의 눈치 게임을 펼쳐야 한다. 현지인은 물론 한국, 중국 등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이 모여들기 때문에 말은 통하지 않지만, 사진 명당을 차지하기 위한 무언의 눈치 게임은 가히 예술의 경지에 이른다. 간혹 한 자리를 장시간 차지하고 세밀한 연출을 하거나, 심지어 영상 통화를 켜서 수천 킬로미터 밖의 지인에게 벚꽃을 생중계하는 '상상 초월'의 빌런들도 존재하지만, 다행히 대부분은 5초 안에 정성껏 한 컷을 찍고 쿨하게 자리를 비켜준다.


전 세계 6곳뿐인 커피 신전,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벚꽃 구경을 마친(혹은 포기한) 사람들의 발걸음은 대부분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도쿄(STARBUCKS RESERVE ROASTERY TOKYO)'로 향한다. 총 4층 규모에 면적만 약 900평에 달하는 이 거대한 매장은 그야말로 커피 덕후들의 성지다. 이런 거대한 로스터리 시설을 갖춘 매장은 시애틀, 상하이, 밀라노, 뉴욕, 시카고, 그리고 도쿄까지 전 세계에 딱 6곳밖에 없다.

-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도쿄 https://maps.app.goo.gl/FUEscjb5VCHkaEjm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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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부터 만만치 않다. 매장이 이렇게 넓으니 그냥 가면 바로 들어갈 수 있을까 싶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입구 옆에 마련된 접수처에서 QR 코드를 찍고 웨이팅을 등록해야 한다. 입장이 가능한 시간이 되면 알림이 오는 시스템이다. 기본 60분 대기는 예사고, 벚꽃이 만발하는 시즌에는 120분 대기도 감지덕지다. 특히 벚꽃 핀 나카메구로 강변이 정면으로 내려다보이는 3층 테라스석은 하늘의 별 따기다.

매장 안은 거대한 로스터리 기계와 수많은 빵, 음료로 가득하다. 1층은 리저브 커피와 베이커리(프린치)를 다루고, 2층은 일본 전통 차와 수십 가지의 티바나(Teavana) 음료가 중심이며, 3층은 콜드브루와 칵테일 바가 있다. 층마다, 코너마다 계산하는 곳도 따로 있다. 빵 종류도 많고, 음료수 종류도 많고, 무엇보다 사람이 정말 많다.


우리는 왜 모이는가


예전에 베이징 신년 행사에 천안문 광장에 엄청난 인파가 모인다는 이야기를 듣고 중국 지인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아니, 천안문 광장은 그냥 텅 빈 광장인데, 대체 뭘 보려고 그렇게 모이는 겁니까?" 지인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아마 주위에 모인 사람들을 보려고 모인 게 아닐까요?"

한국도 마찬가지다. 12월 31일 자정이 되면 보신각 주변에 수많은 사람이 모인다. 예전처럼 성대한 TV 쇼를 하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여전히 카운트다운을 하러 추위를 뚫고 나간다. 나이 한 살 더 먹는 게 그렇게 모여서 축하할 일인가? 아니면 사람들이 뿜어내는 기운을 받으면 새해 소망이 이루어진다는 확신이라도 있는 걸까? 수만 명이 모여서 비슷한 소원을 빌면, 그중 100명 정도는 확률적으로 성취가 가능하기 때문일까? 밑도 끝도 없는 상상을 해 보지만, 아무것도 없는 그 추운 길거리에 종 치기 전부터 치고 난 후까지 굳이 모여 있는 심리는 아직도 의문이다. 나의 공감 능력이 부족한 탓이려니 한다. (사실 나 역시 몇 번은 그 무리 속에 있었던 것 같지만.)

이곳 스타벅스도 비슷하다. 다들 스타벅스 덕후일까? 굳이 그런 것도 아닐 텐데, 빵 하나, 커피 한 잔 사려고 그 오랜 시간을 기다린다. 가격이 저렴한 것도 아니고, 평생 잊지 못할 천상의 맛도 아니다. 사실 빵이 다 거기서 거기 아닌가. 게다가 간신히 입장해도 자리 잡는 건 전쟁이다. 대형 로스터리 기계를 배경으로 인증샷 한 컷만 찍고 나가면 그만일 텐데, 왜 다들 여기서 이 고생을 사서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 이것이 나카메구로가 내게 던진 수수께끼다. 물론 내가 무슨 말을 한들, 나카메구로의 스타벅스는 앞으로도 굳건히 사람들로 북적일 것이다.


어디가 집이고 어디가 가게인지


사실 나카메구로를 상징하는 투톱이 벚꽃과 스타벅스이긴 하지만, 사람들이 이곳을 끊임없이 찾는 진짜 이유는 강변과 골목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매력적인 숍들 때문이다. 그런데 이 가게들이 다 시부야나 하라주쿠의 가게들처럼 처음부터 가게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처음은 주택으로 시작해서 큰 길가부터 하나씩 가게로 바뀌어 가고 있다. 편집샵으로는 'Coverchord'나 '1 LDK' 등이 사람이 많이 들르는 곳이다.

개별 브랜드로는 '비즈빔 제너럴 스토어(VISVIM GENERAL STORE)'가 메구로 강변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다. 독창성과 스타일에서도 갑이지만, 가격에서도 넘사벽인 그 브랜드가 여기에 있다. 처음 왔을 때는 언뜻 지나치면서 이 동네에 이 브랜드가 이렇게 무심히 자리 잡고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

주택 세 채를 이어 만든 공간은, 서로 다른 소재를 잇대어 만드는 비즈빔의 작품 방식과 묘하게 닮아 있다. 아메리칸 캐주얼과 일본 전통 미학을 결합한 이 브랜드의 디자인이 주는 자유로움에 빠져들다가도, 가격표를 보는 순간 극복하기 힘든 현실의 벽을 느낀다. 아직 단 한 점도 사지 못한 이유다. 10만 엔 남짓한 백팩을 살지 말지 1년째 고민 중인 것이 그 증거다. 그럼에도 이 매장이 매력적인 이유는 공간 자체에 있다. 1970년대에 지어진 일본 전통 가옥을 리모델링해 정갈한 일본식 정원까지 품고 있는데, 단순한 옷가게를 넘어 마치 '비즈빔 미술관'을 관람하는 듯한 묵직한 감동을 준다.

강변에서 떨어져 큰길 건너편에 있지만 흥미로운 곳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트래블러스 팩토리(TRAVELER'S FACTORY)' 나카메구로 본점이다. 오래된 공장을 개조해 만든 몇 평 되지 않는 아담한 매장인데, 전 세계에서 온 다이어리 덕후들이 입장을 위해 줄을 서는 기현상이 벌어진다. 여기는 줄을 서고 있는 바로 옆에 마당을 같이 쓰고 있는 신축 주택이 두 채 있는데 줄을 서고 있는 와중에 주인 할머니가 집 현관 쪽으로 쓱 들어가셨다. 남의 집 앞에서 민폐를 끼치는 거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들었는데 트래블러스 팩토리의 스탭이 나와서 자기 건물 쪽으로 계속 붙어달라고 요청한다. 이곳은 지나가다가 매장이 참 예뻐서 슬쩍 봤다가, 사람들이 줄을 서 있길래 나도 모르게 휩쓸려 30분을 기다렸다. 빈티지한 가죽 커버, 황동 소품, 수많은 오리지널 엽서와 스탬프들을 구경하다 보니 기다린 시간이 아까워 스티커와 노트, 텀블러를 집어 들고 말았다.

- Coverchord Nakameguro https://maps.app.goo.gl/nuJ78M9m5mFVadw77

- 비즈빔 https://maps.app.goo.gl/PLeyDoXDQ8QDNW6j6

- 트래벌러스 팩토리 https://maps.app.goo.gl/1Tg62yZfGadjtRvk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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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블러스 팩토리? 본점과 <Coverchord Nakameguro>


퓨전 교자와 꼬여버린 마음


스타벅스는 이미 여러 번 가서 빵과 커피로 아침 겸 점심을 때운 적이 있어서, 이번에는 AI가 제안한 식당을 타베로그(食べログ)에서 예약해 두었다. 12시에 영업을 시작하는 '키탄 교자(KITTAN GYOZA)'라는 곳인데, 교자를 현대적이고 감각적으로 해석한 퓨전 가게다.

일본에서 교자는 보통 밥과 함께 먹는 든든한 반찬이자 메인 디시로 통한다. 예약해 둔 코스를 받아보니 샐러드, 미역국, 닭가슴살을 곁들인 전채 요리에, 반숙 계란과 새우, 돼지고기를 품은 만두 10개가 나왔다. 만두에 대한 참으로 깊이 있는 해석이긴 한데, 뼛속까지 한국인인 내게는 퓨전 만두를 굳이 밥, 미역국, 반숙 계란과 조합해 먹는 이 복잡함이 낯설고 버거웠다. 내 입맛에는 그저 하라주쿠 '교자로(原宿餃子楼)'에서 콜라 한 잔에 물만두와 군만두를 간식처럼 직관적으로 털어 넣는 단순함이 훨씬 잘 맞는다.

-키탄 교자 https://maps.app.goo.gl/dCJP5nAhrkZHLSn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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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자로서 산책을 나선 날이든, 여행을 온 날이든, 가끔 이렇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풀리지 않는 날이 있다. 오늘 나카메구로 산책이 딱 그랬다.

벚꽃이 막 피기 시작한 한적한 날에 왔다면 어땠을까? 아마 나의 행운 지수가 급상승했다고 느끼며, 걷는 골목골목은 물론 스타벅스 옆 메가 돈키호테마저도 세상 특별한 장소로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그저 내 마음이 조금 꼬였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년 4월이 오면 또다시 수많은 사람이 나카메구로를 찾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인파에 떠밀려 짜증 났던 순간들은 거짓말처럼 휘발되고, 벚꽃 아래서 건진 '인생 컷' 한 장과 함께 그저 좋았던 봄날로 기억될 것이다. 그 치열한 인파 속에서 용케 자리를 잡고 커피 한 잔과 달콤한 케이크 하나로 오후의 피로를 날려버렸던 그 소소한 성취감만 남을 것이다.

결국 그런 게 여행 아니겠는가. (다음은 신주쿠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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