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여행가이드 10] 긴자(銀座) 맛집

by 하임
Gemini_Generated_Image_m6fdl9m6fdl9m6fd.png <긴자 맛집 편의 팝아트> Gemini 제공

오사카(大阪)에 가면 타코야키(たこ焼き)와 오코노미야키(お好み焼き), 신세카이(新世界)의 쿠시카츠(串カツ)를 먹어야 오사카를 다녀왔다고 할 수 있다. 삿포로(札幌)라면 칭기즈칸(ジンギスカン)과 수프카레(スープカレー), 후쿠오카(福岡)라면 모츠나베(もつ鍋)와 멘타이코(明太子)가 그 도시의 음식 정체성을 이룬다. 일본의 도시들은 저마다 '이걸 먹어야 왔다고 할 수 있다'는 대표 음식이 선명하다.

그렇다면 도쿄(東京)는?

혹자는 '몬자야키(もんじゃ焼き)'를 꼽는다. 도쿄 서민 동네 시타마치(下町)의 구멍가게에서 아이들이 묽은 밀가루 반죽을 철판에 부어 글자(文字, 모지)를 쓰며 놀고 구워 먹던 '모지야키(文字焼き)'가 발음이 뭉개지며 몬자야키가 된 것이다. 애초에 철판 위 장난감 같은 간식에서 출발했으니 지금의 그 갯벌 진흙 같은 묽은 모양새가 될 수밖에 없었던 거다. 내가 사는 츠키시마(月島)의 몬자 스트리트를 중심으로 여전히 성업 중이고 서민적인 회식 자리로도 좋지만, "과연 이것이 세련된 도쿄를 대표하는 음식인가?"라는 합리적인 의문은 지워지지 않는다. 주위의 현지인들도 선뜻 동의하지 않는 분위기다.

-츠키시마 몬자 거리 https://maps.app.goo.gl/SK774VG87DELS2zd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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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음식 정체성이 모호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도쿄는 특정 지역 음식을 대표하는 도시가 아니라, 일본 전국과 세계의 모든 음식이 모여드는 집합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그 집합의 밀도가 가장 높은 곳이 바로 우리 동네 몬자 스트리트에서 2km 거리의 긴자(銀座)다. 거주민의 시선으로 꼽아본 긴자의 인상적인 가게들을 세 가지 테마로 나누어 소개한다.


[스시·우동] 가성비 스시의 축복과 야경 맛집 우동


긴자는 도쿄 미식의 정점답게 가격도 '천상계'다. 1인분에 수만 엔(한화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전설적인 하이엔드 스시집들이 긴자 골목에 숨어 있다. 솔직히 말하면, 나 역시 도쿄 생활 내내 "언젠가 특별한 날엔 저런 곳에 한 번 가 봐야지" 하고 벼르고 있었지만, 결국 한 번도 가 보지 못했다. 거주민 입장에서도 1인당 3만 엔이 훌쩍 넘어가는 스시는 선뜻 지갑을 열기엔 너무나 아득한 '그들이 사는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비싼 오마카세에 못 갔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 도쿄에서 가성비 훌륭한 스시집을 꼽으라면 단연 '미도리 스시(梅丘寿司の美登利) 긴자점'이 완벽한 대안이 되기 때문이다. 5천 엔 정도면 아주 신선하고 큼직한 스시를 배가 터질 정도로 먹을 수 있다. 맛과 가성비를 모두 잡은 곳이라 이곳은 늘 문전성시를 이룬다.

여기는 방문 전 웨이팅 전략이 필수다. 사전에 확정 예약을 하려면 풀페이(전액 선결제)를 해야 하는데, 다행히 외국에서도 온라인으로 예약이 가능하다. 예약 없이 온 관광객이라면 무조건 가게 앞 발권기에서 번호표부터 뽑아야 한다. 보통 오후 5시에 번호표를 뽑으면 저녁 6~7시는 되어야 들어갈 수 있다. 그러니 긴자에 도착하자마자 일단 번호표를 하나 뽑아 두고, 명품관이나 거리를 둘러보며 좀 놀다가 시간에 맞춰 돌아오는 것이 좋을 것이다.

-긴자 미도리 스시 https://maps.app.goo.gl/trFuXPZBtKqU4dA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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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시 대신 뜨끈한 퓨전 요리가 당긴다면, 최근 이름이 바뀐 '긴자 노보(GinzaNovo, 구 도큐 플라자 긴자 / 東急プラザ銀座)' 10층에 자리한 '츠루동탄(つるとんたん)'도 괜찮은 선택지이다. 이곳은 세숫대야처럼 거대한 그릇에 담겨 나오는 우동으로 유명한 곳인데, 사실 이 귀여운 이름의 유래를 알면 식사가 더 즐거워진다. 우동 면을 호로록 빨아들이는 소리 '츠루츠루(つるつる)', 반죽을 탕탕 치는 소리 '돈돈(とんとん)', 그리고 면을 탁탁 써는 소리 '탄탄(たんたん)'을 합쳐서 만든 이름이다. 물론 한자로는 학처럼 우아하게 우동을 먹다는 뜻의 츠루동탄( 鶴飩啖)도 있지만 소리에서 온 유래가 훨씬 직관적이고 재미있다.

- 츠루동탄 긴자 https://maps.app.goo.gl/fdd36E27pYRiW78u6


명란 크림 우동이나 까르보나라 우동 같은 화려한 메뉴들도 맛있지만, 내가 이곳을 추천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야경'이다. 10층의 거대한 통유리창 너머로 화려한 긴자의 스키야바시(数寄屋橋) 교차로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서 여기만 볼 수 있는 비경이 있다. 창가석 쪽에서 보면 소니 전시관과 에르메스 빌딩이 보이는데 에르메스 빌딩 맨 위에 말탄 기사가 있다. 이 기마상은 에르메스 창업 15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진 것으로, 파리 본점과 뉴욕 매디슨점 등 세계 소수의 플래그십 매장 옥상에만 설치된 상징적인 조각이다. 10층 높이에 설치되어 있고 에르메스 건물 역시 정면이 소니 전시관 뒤에 살며시 있기 때문에 이 기마상은 눈에 띄기 쉽지 않은데, 여기 10층 우동집에서 제대로 볼 수 있다. "아는 사람만 안다"는 에르메스의 정신을 솥만큼이나 큰 우동을 들이키면서 즐길 수 있는 곳이 바로 츠루동탄 긴자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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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츠·카페] 오라지게 단맛과 줄 서는 찻집


도쿄가 서울과 확연히 차이 나는 점 중 하나는 스위츠(スイーツ, 디저트) 가게가 엄청나게 많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스위츠들과 차를 곁들이는 티 살롱을 한국의 커피숍처럼 일상적으로 활용한다.

그중 긴자에 있는 '시세이도 팔러(資生堂パーラー / Shiseido Parlour)' 3층 살롱은 화려한 비주얼의 극치를 달리는 곳이다. 과일 파르페가 평균 3,000엔 내외를 호가한다. 도쿄를 방문하는 지인들을 굳이 이곳으로 데리고 가는 이유는 명확하다. 맨 위에 올라간 제철 과일의 첫 느낌은 상큼하지만, 파르페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달기가 아주 '오라지게' 달다. 정말 미치도록 달다는 느낌 하나와, 사진을 찍어두면 SNS 프사로 기가 막히게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시세이도 팔러 긴자 본점 https://maps.app.goo.gl/KLnkVUKTPWZj3LXF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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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으로 따지자면 히가시 긴자(東銀座)에 본점이 있는 '분메이도(文明堂)' 카페도 빼놓을 수 없다. 카스텔라(カステラ) 전문점인 이곳의 빵 바닥에는 굵은 설탕 결정(자라메 당, ザラメ糖)이 깔려 있어, 씹을 때마다 오도독 씹히는 설탕이 마지막 순간에 단맛을 100으로 확 끌어올려 버린다. 분메이도는 공항에서 선물용으로 많이 사가는 후쿠사야의 카스테라와 함께 일본의 대표적인 카스테라 메이커이다. 카페는 가부키자(歌舞伎座) 바로 옆에 있어서, 가부키 공연을 보러 온 지긋한 연령대의 손님들이 주를 이룬다. 긴자를 걷다가 당이 떨어져 다리가 풀린 분들에게 이곳의 크림 카스텔라에 아이스커피 한 잔이 딱이다. 대표적인 간식 중의 하나인 카스테라 샌드위치는 입에 넣고 정말 두 번 오물거리면 벌써 배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 분메이도 히가시 긴자 https://maps.app.goo.gl/u7GUHKzcQEKTg8qg8

IMG_5977.HEIC <분메이도> 카스테라 샌드위치

그 외에 긴자의 콧대 높은 전통 화과자점으로는 긴자 4초 메 교차로의 '와코(和光 / WAKO) 아넥스 티 살롱'이 있다. 점잖은 노신사와 귀부인들이 주 고객층이고, 종업원들은 정갈한 메이드 복장을 하고 있다.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서 가볍게 가기엔 진입장벽이 다소 높다. 대신 길거리 간식을 원한다면, 고구마에 진심인 일본이라 긴자에도 고구마 간식 가게가 있다. 채 썬 고구마를 튀긴 '이모켄피(芋けんぴ)'를 파는 '긴자 이모야마(銀座 芋山)'나 고구마를 항아리에 푹 쪄내 좀 끈적한 '긴자 츠보야키이모(銀座つぼやきいも)'가 있는데 난 간장 베이스의 이모켄피가 입에 더 맞았다.

- 긴자 이모야마 https://maps.app.goo.gl/7SWE433ayyiBiWHg6

- 긴자 츠보야키 이모 https://maps.app.goo.gl/Wk3sHxvA9YZmtEvp6


커피에 진심이라면 긴자에는 세 곳을 알아두면 좋다.

'카페 파울리스타(カフェーパウリスタ)' 는 1911년 브라질 이민사업에 관여했던 창업자가 상파울루 주정부로부터 원두를 무상 제공받아 문을 연 곳으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같은 메이지·다이쇼 시대 문인들의 아지트였다. 존 레논 부부가 3일 연속 방문해 사인을 남긴 컵이 지금도 가게의 보물이다. '도리코로루 긴자 본점(トリコロール 本店)'은 1936년 창업으로, 붉은 벽돌 외관에 무거운 목제 회전문을 밀고 들어서면 앤티크 가구와 샹들리에가 맞이하는 유럽풍 공간이다. 주문 즉시 원두를 갈아 넬 드립으로 내리는 커피와, 높은 위치에서 커피와 우유를 동시에 따르는 카페오레 퍼포먼스가 이 집의 볼거리다. 붉은 융단이 깔린 계단에 줄을 세우는 웨이팅 방식도 독특하다.

-카페 파울리스타 https://maps.app.goo.gl/EqZMsERjxX4Vk5Sn9

-카페 도리코로루 https://maps.app.goo.gl/8dNFQYiJ8jSZLHr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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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도리코로루>

그런데 요즘 관광객들에게 가장 핫한 곳은 긴자 구석에 있는 '본겐 커피(盆源珈琲 / BONGEN COFFEE)' 다. 분재, 미장 벽, 야키스기 목재, 격자 천장으로 꾸민 순일본식 자가 로스팅 커피 스탠드로, 에스프레소 머신이 아니라 분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공간 구성이 SNS를 타면서 라테 한 잔에 40분 이상 줄을 서야 하는 곳이 됐다. 근처 소금빵의 메카 '팡 메종(パン・メゾン)'과 동선을 묶어 번호표를 뽑고 오면 완벽하다.

- 본겐커피 긴자 https://maps.app.goo.gl/sKnLtpWohx61KSs8A


[라멘·야키니쿠·한식] 그래도 먹어야지 할 때


가끔 긴자에서 라멘(ラーメン)이 당길 때면 긴자 식스 바로 뒤편의 골목으로 향한다. 좁은 골목에 개성 강한 라멘 3형제가 옹기종기 모여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진한 돈코츠(豚骨) 베이스의 '규슈 장가라(九州じゃんがら)'다. 국물이 묵직하고 고명이 푸짐하다. 두 번째는 그 바로 옆에 딱 붙어 있는 '도쿄 아부라구미 총 본점(東京油組総本店)'이다. 국물 없이 특제 간장 소스와 고추기름을 둘러 비벼 먹는 '아부라소바(油そば)' 전문점이다. 세 번째는 대합으로 국물을 낸 깔끔한 쇼유(醤油, 간장) 라멘집 '무기토 올리브(むぎと オリーブ)'다. 다찌석이 대부분이라 40분 이상 대기는 기본이다. 가끔 아부라소바가 생각나서 한참을 기다려 비벼 먹고 나면, 강렬하고 짠맛 때문에 물을 들이켜며 후회하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줄을 서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 큐수장가라 긴자 https://maps.app.goo.gl/MfxPbB3Phik6DPd88

-도쿄 아부라구미 총본점 https://maps.app.goo.gl/2MHo5z7NFPkKo4xN7

-무기토 올리브 https://maps.app.goo.gl/hXU6W7umTSPu9kYS7


살짝 고급진 식사나 대접이 필요할 때는 '야키니쿠 우시고로(焼肉 うしごろ / Yakiniku USHIGORO)'를 찾는다. 프리미엄 야키니쿠(焼肉) 체인인데, 육회가 나오고 마지막엔 냉면까지 나와서 한국과 일본의 식문화가 절묘하게 짬뽕된 느낌을 준다. 전담 직원이 와규(和牛) 고기를 직접 구워 각자의 접시에 한 점씩 공평하게 올려주기 때문에, 회식 후 "먹은 양이 다른데 왜 더치페이를 똑같이 해야 하나?" 같은 딜레마에 빠질 일이 없다.

IMG_2047.HEIC <우시고로>의 대표 메뉴 와규와 캐비어 타르타르

일본 특유의 간장 베이스 음식에 물리거나 향수병이 올 때는 한식을 찾는다. 미츠코시 백화점(三越百貨店) 11층에 있는 한식당 '미나리(美菜莉)'는 깔끔한 반상 형태로 나와 '우리 식으로 밥 한 끼 제대로 먹었다'는 포만감을 준다.

하지만 사실 좀 비싸긴 해도, 거주민으로서 향수병이 도질 때면 정말 간절하게 생각나는 곳이 있다. 바로 '오주리'라는 한식 호르몬(ホルモン, 곱창·대창) 구이 전문점이다. 처음에 '오주리'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는 웬 주얼리 같은 보석 이름인가 싶었다. 그런데 막상 가서 간판의 한자를 보니, 서울의 그 '왕십리(王十里)'를 일본어 발음으로 읽은 것이었다. '아하, 왕십리랑 대창, 막창구이의 조합이라니!' 근본부터가 너무나 완벽하게 어울렸다.

- 오주리 https://maps.app.goo.gl/egBszSXG6x86UCY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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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식이라 간장 베이스 소스가 약간 달짝지근하긴 하지만, 한국의 '오발탄' 같은 유명 곱창집에서 먹던 바로 그 숯불 대창구이 맛과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졌다. 이 집은 최근에야 알게 되었는데, 한 달 전에 예약해야 겨우 자리가 날까 말까 할 정도로 예약 난이도가 극악이다. 짧은 일정의 여행객이라면 굳이 이 귀한 시간을 내어 먹기 힘들 테니 한국에 돌아가서 드시라고 권하고 싶다. 하지만 타국에서 생활하는 거주민에게는 도쿄 생활 마지막 즈음에야 제대로 만난 귀한 식당이었다. 물론 고향에 돌아가면 널리고 널린 게 이 맛이니, 곧 이 애틋한 감동도 잊어버리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술이 맛있는 회식 장소로는 산토리(Suntory) 그룹에서 운영하는 '다이내믹 키친 앤 바 히비키(ダイナミックキッチン&バー 響 / Dynamic Kitchen & Bar Hibiki)'가 훌륭하다. 프리미엄 산토리 위스키 하이볼과 제철 안주의 퀄리티가 아주 높다.

- 다이내믹 키친 앤 바 히비키 https://maps.app.goo.gl/Rsw2ES9iBGieSki7A


진행형의 도시, 긴자


긴자는 일본을 대표하는 거대한 상업 지역이다. 주오도리(中央通り)를 걷다 보면 1663년 창업의 '큐쿄도(鳩居堂)'나 1869년에 단팥빵을 처음 만들어 팔기 시작한 '기무라야(木村屋)' 같은 전설적인 노포들이 여전히 성업 중이고, 그 바로 옆에는 2017년에 문을 연 '긴자 식스(GINZA SIX)'가 오늘의 긴자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런데 돌아보면, 내가 긴자에서 가장 오래 기억할 장면은 그 화려한 주오도리의 풍경이 아닐지도 모른다. 도쿄 생활 마지막 즈음에야 겨우 찾아낸 왕십리 대창 구이 한 점, 그리고 '고향에 돌아가면 이 감동도 잊어버리겠지'라고 생각하며 숯불 앞에 앉아 있던 그 밤이다. 맛있는 음식은 긴자 어디서나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음식이 어떤 감정과 맞닿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한 끼가 아니라 그 도시를 기억하는 방식이 된다.

그래서 긴자는 나에게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다 먹지 못했고, 다 알지 못했고, 아직 가 보지 못한 골목이 남아 있으니까. (다음 편은 키치죠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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