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와 며느리. 그 치열한 전투에 '연 끊기'라는 휴전의 기간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시부모님이 먼저 제안을 해옵니다. '이렇게 계속 문제가 생기니 차라리 보지 않는 것이 좋겠다.' 혹은 '우리 때문에 너희들이 이혼위기까지 갔으니 우리가 물러나 주겠다. 너희 잘 살아라.'라는 표면상의 이유로. 하지만 그분들의 속마음은 대부분 이렇습니다.
- 괘씸한 며느리, 거기에 휘둘리는 멍청한 아들, 다 꼴 보기 싫어!
- 내기 이렇게 강수를 두면 애들이 숙이고 들어오겠지? 내가 윗사람이고 부모니까.
- 우리는 잘못한 게 없고 너무 억울해 그러니까 너희들이 잘못했다고 해. 어서 우리의 마음을 풀어주라고!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며느리의 마음은 어떨까요?
일단 처음에는 온갖 제사와 시가 모임에서 빠지게 되니 홀가분합니다. 더 이상은 시부모의 간섭도 잔소리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나만 나쁜 사람이 된 건가 싶어서 마음 한구석이 불편합니다. 심지어 며느리는 잘못한 게 없는데(오히려 당하기만 했는데) 죄책감마저 들기도 합니다.
그 후의 진행상황은 어떻게 될까요? 이 역시 대부분 비슷합니다. 연을 끊자고 말했던 시부모님이 먼저 다시 슬금슬금 연락을 해옵니다. 이때 가장 흔한 핑계는 아이들이에요. 아들에게 연락하여 아이들이 보고 싶다고. 그리고 아주 강력한 무기를 하나 더 들고 들어옵니다. 나이와 늙음을 내세우며 "우리는 이제 시간이 남지 않았다" , "요즘 몸이 좋지 않아서, 우리가 이제 살아봐야 얼마나 더 살겠느냐" 이런 식으로 아들에게 감정적으로 호소합니다.
여기에서 아들이 흔들리면 이 전쟁은 그들의 승리로 끝납니다. 하지만 아들이 완강하게 버틴다면 결국 시부모도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분들에게 며느리라는 존재는 크게 상관없지만 아들은 다르기 때문이죠. 계속 이렇게 가다가는 정말로 영원히 아들과 아이들을 (며느리는 제외)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명절이나 집안 행사 등에서 주변 지인들과 친인척들에게 말하기 곤란한 경우가 계속 생기기 때문에 결국 어느 정도 포기하고 타협점을 찾게 됩니다. 그래서 남편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물론 부모도 중요하지만 내가 만든 가정을 지키는 것이 먼저입니다. 부모에게 내 인생을 맞추고 내 아내까지 부모에게 맞추도록 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그것이 자식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 아닙니다. 효도는 그런 것이 아니니까 말이에요. 오히려 아내와 아이를 지키는 것이 나의 책임과 의무를 다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안쓰러운가요? 이 또한 누구나 겪는 어쩔 수 없는 인생사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모든 사람은 나이가 들어가며 늙고 병듭니다. 물론 나이 든 부모를 매몰차게 대하라는 것은 아니에요. 자식 된 도리로 내 부모에 대한 사랑과 감사의 마음으로 쇠약해져 가는 부모를 신경 쓰고 돌보아야 하겠지만, 내 가정이 파괴되면서까지 부모의 기대에만 맞춰 사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거죠. 또한 부모에게 자식이 결혼하고 손자가 생기는 시기는 생애주기로 분류하면 노년기에 해당합니다. 노년기의 과업은 결혼한 아들과 아들의 새 가정을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 직장생활을 끝내고 은퇴한 시기이기 때문에 시간적으로 여유가 많아집니다. 그러니 자연히 관심이 자식에게만 가고 때로는 지나친 애정으로 부작용이 생기는 경우가 많지만, 자식이 성인이 되어 독립하듯이 부모도 자식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부모 스스로도 은퇴 후의 삶에 적응하고 건강을 챙기며 자신의 남은 인생을 잘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저 평범했던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시부모와 며느리로 엮이니 모두가 이 난리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한 번뿐인 결혼생활을 나와 나의 배우자가 아닌 제3자, 시부모님으로 인해 시작부터 망치게 되니 며느리들은 너무 억울하다고 외칩니다. 결혼생활을 하며 두 남녀가 가장 행복해야 할 신혼. 이 중요한 시기가 시부모로 인해 온갖 다툼과 상처로 얼룩지니, 많은 며느리들은 시부모가 무척이나 원망스럽고 자신의 결혼생활 전부가 통째로 불행하게 느껴진다고까지 말합니다. 그렇다면 정말 이 전투의 끝은 없는 것일까요?
누군가의 아내이자 며느리라는 역할도 처음, 누군가의 시부모라는 역할도 처음, 그동안은 아들이라는 역할 뿐이었는데 갑자기 누군가의 남편이라는 역할을 하나 더 부여받아 양쪽을 조율해야 하는 입장도 처음. 모두가 처음입니다. 그러니 서로 처음에는 미숙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보듬어가며 한 해, 두 해, 세월이 쌓인다면 정말 평화가 찾아오고 '가족'이 되어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