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_8
나는 쉽게 사람을 못 떼낸다. 쌓이고 쌓이고 또 쌓여서 그제야 처내는 게 사람인연이다. 뭐, 결혼이다 뭐다 하면서 멀어진 인연이 있을 수도 있지만 끊어내려고 한 인연은 아니니까. 내가 끊어냈던 인연은 기억에 잘 나진 않는데 대학원 때 내 앞에서 “씨발”이라는 욕을 했던 사람이다. 솔직하고 맛있는 거 좋아하고, 화통했던 친구였는데 무슨 이유였던가 싫은 소리를 하기 싫어하기에 애써 참고 있었던 말을 했던 것 같다. 내가 그녀에게. 그랬더니 그녀가 화가 났던지 변명이든 반박이든 그런 말이 아닌 욕설을 내뱉었다. 이런 사람이었던가? 면상에서 욕을 받아버리니 당황스럽고 어이가 없었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내 딴에는 알아듣게 지금 일에 대해서 사과하라고 했었는데 그러고는 입을 닫아버렸다. 내 기준에서야 기분이 나쁘다지만 그녀도 뭔가 할 말은 있었겠지. 하지만 앞뒤 없이 욕설을 한건 분명 그녀의 잘못. 그녀의 인성이 거기까지임을 인지하고는 손절했었다. 같은 공간에서 등만 마주대고 앉았던 날이었는데 불편했지만 정말 아무 감정이 없을 만큼 인생에서 사라진 사람이다.
그리고 또 대학원 때인가, 나도 사실 잘 모른다. 나보다 일 년 아니 석사까지 합치면 연구실에서는 꽤 오래 머물렀던 사람인데 연구실 실세 정도 되려냐? 지금 생각해 보면 잘 지낼 수 있었던 사이였다면 어땠을까 싶지만. 애초에 그게 불가능했던 사람이었다. 연구실일이라는 게 따로 행정사원이 없다 보니 그녀가 모든 걸 다 관리하던 시절이었고, 교수님의 지대한 믿음을 받고 있다면 실세 아니겠나. 알고 보면 나한테는 웃으면서 아닌 척했지만 뒤에서는 그년이라고 한다는 둥, 비하한다는 둥, 온갖 욕은 다 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걸 아는 나도 그녀에게 뭔가 한방을 날리기 위해서 눈치만 보던 때였다. 내가 어설펐던 탓에 나의 한방은 물거품이 되었고, 오히려 역으로 공격당해서 내 방도 털리고, 사생활까지 뒤짐 당하고 그냥 그렇게 대학원에서 아웃. 지금 생각하면 내가 좀 더 강하게 나갔을 수도 있었는데. 왜 바보같이 당하고만 있었을까. 그리고 오히려 먹잇감을 던져줘 버린 형태라. 그나마 이 정도로 마무리한 게 다행이었다고 해야 하나. 내 커리어와도 관련 있었던 나름 중대한 일이었고 마음이 아닌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던 때라 내가 좀 더 야물지 못했던 것에 화가 날 뿐이다. 좁아터진 대학원에서 무슨 별일이 다 있냐 싶겠냐만은 대한민국의 대학원은 그냥 고름덩어리라고 생각하는지라. 고작 그 몇 명 중에서 머리가 되기 위해 온갖 유치한 일도 서슴지 않던 시절.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으려나.
그 이후에는 주로 내가 손절당하는 적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나름 외향적인 사람이라 먼저 다가가고 손 내밀고 말 한마디 더 거는 사람인데. 뭔가 트러블에 생겼을 때는 이런 성격이 오히려 질척거림으로 작용하고 만다. 그래서 조금 시간을 두고 풀어나가야 하는데 엉킨 실을 바로 풀겠다고 용쓰다가 실을 더 엉켜버리게 만드는 사람이 나이다. 회사에 취직하고서 좋아하는 사람도 많고, 뭐 내 눈엔 다 좋은 사람들 천지였지만. 회사사람과 친구라는 개념을 제대로 분리하지 못한 내 탓이 크기도 했다. 같이 여행을 다녀오다 아직도 이유 없이 그녀에게서는 손절당해 있다. 처음에는 엄청 미웠고, 나중에는 화가 났고, 시간이 좀 지나고 나니 무덤덤해졌다. 그 기간이 약 2년 정도 걸린 것 같다. 밉고 화가 났을 때는 정말 꼴도 보기 싫었는데. 내가 친하게 해 준 사람들과 떠들고 있을 때는 무슨 전 연인처럼 질투도 나고 그랬는데 이젠 그런 감정조차 없어졌다. 그냥 궁금할 뿐. 왜 나에게 그랬는지.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사귈 때, 우린 그 사람의 모든 걸 좋아할 수 없다. 사연 없는 사람이 없다고. 분명 그 사람의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맘에 안 드는 부분이 있어도. 오늘은 저 사람이 만나고 싶지 않아도 다소 참고 만나는 경향이 있다. 분명 좋은 모습이 있을 거니까. 그 사람이 그럴 이유가 있을 거니까. 애써 그렇게 생각하면서 붙들고 있는 관계가 있기도 하다. 그런데 그게 특이한 거라고 한다. 보통은 그 순간 수틀리면 그냥 손절이라고. 다가갈 에너지도 다시 그 관계를 이어 붙일 노력도 시간도 아까운 거라고. 사이를 풀어나가고 오해를 푸는 그 과정에 에너지를 소비하기보다는 그냥 실을 잘라버리는 걸 택한다고.
특히나 요즘의 트렌드라고 한다. 손절이라는 게. 좋아서 만날 때도 있지만. 마음에 안 들면 차단하고 잠수타면서 그냥 연락을 끊어버리는 것.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하지만. 그런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을 정도로 싫은 건가. 상대방에게서 도움을 받거나 함께 행복한 적은 없었던가 다시 되묻고 싶지만. 그렇게 손절한다고 한다. 손절이라는 말만 들어도 마음이 아픈데 참 사람들은 관계가 별게 아닌가 보다. 여전히 끊임없이 관계라는 것에 아파하는 내가 멍청할 만큼.